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5.14 10:30
안에서 바깥을 향해 바라본 우물의 모습이다. 그 속에 앉아 세상을 다 봤노라고 우기면 우물 바닥의 개구리, 즉 정저지와(井底之蛙)의 경우에 닿고 만다.

조선시대에는 양성현(陽城縣)에 속했다가 1914년 일제강점기 때 행정구역 개편으로 평택에 처음 들면서 이름이 생겼다. 원래는 서두물, 또는 서둔물이라 불렸다고 한다. 양성현 서쪽에 자리를 잡은 마을이면서 이곳에 물맛이 뛰어난 우물이 세 개 있었기 때문이란다. 그런 좋은 우리말은 어느덧 쓰임새가 없어지고 서쪽의 우물 마을이라는 뜻의 서정리(西井里)로 정착했다.

한때는 송탄에 속했다가, 이곳 일대가 평택으로 묶이면서 다시 평택의 품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행정구역 개편이라는 게 변화하는 지역의 사정과 인구 이동에 따라 늘 있는 것이니 뭐라 할 수는 없는 법이다. 다시 평택시에 속하면서 동(洞)이름을 달아 이제는 서정동(西井洞)으로 불리지만, 국철 1호선을 만들 때 현재의 역명으로 자리 잡았다.

여기서 등장하는 세 글자 西井里(서정리)는 앞에서 다 풀었다. 西(서)는 화서(華西)역을 지날 때, 井(정)은 시청(市廳)과 금정(衿井)역을 지날 때 이미 설명을 마쳤다. 里(리)도 가리봉(加里峰)역을 지나면서 설명했다. 그러니 딱히 어떤 한 글자를 끄집어내서 풀어갈 여지가 만만치 않다.

그래도 멈출 수는 없다. 우리의 여행 목적이 한자(漢字) 알아가기라서 그렇다. 덧붙여야 할 글자를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井(정)이라는 글자에 멈추고, 이어 천정(天井)이라는 말이 문득 떠오른다. 집의 윗부분을 가리킬 때 이 단어가 한때 쓰였다. 지금은 이 단어를 쓰지 않는다. 이제는 천장(天障)으로 바꿔 부른다.

그러면서도 ‘천정부지(天井不知)’라는 성어를 아직 사용한다. 무엇인가 멈춤 없이 오르는 경우를 가리킨다. 특히 물가가 마구 오를 때 “천정부지로 솟구친다”는 식의 표현을 썼다. 원래는 일본식 성어 구성이라고 한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우리도 어느덧 이 말을 받아썼던 것이리라. 아무튼 이 天井(천정)은 오늘날 우리가 바꿔 부르는 天障(천장)과 동의어다.

天井(천정)은 글자대로 풀자면 ‘하늘의 우물’이다. 그렇다고 곧이곧대로 ‘하늘에 난 우물’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 이 말의 어원은 잘 뒤져 봐야 하겠으나 하늘에서 내리는 빗물, 그를 받아들이는 곳 정도로 생각하면 좋다. 중국 남부에 발달한 민가(民家)에는 아직 이런 天井(천정)의 형태가 보인다.

우리 식으로 보면 아주 작은 형태의 ‘ㅁ’자(字) 한옥(韓屋)을 떠올리면 좋다. 작은 형태의 ‘ㅁ’자 한옥이면 빽빽한 구조다. 동서남북 네 면의 건축이 조밀하게 모여 있고, 그 가운데 윗부분은 ‘ㅁ’자 구멍이 생긴다. 중국 남부 사람들은 하늘을 향해 뻥 뚫려 있는 이곳을 원래 天井(천정)이라고 했다. 하늘에서 비가 내릴 때 이곳을 향해 물이 쏟아지지 않는가. 그러니 ‘우물’이라는 뜻을 달았을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天井(천정)이 결국은 집 건축의 윗부분을 구성하는 면(面)의 의미로 발전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빗물을 받아들이는 입구라는 의미는 일찌감치 퇴색했을 테니 ‘윗부분 가리개’라는 뜻의 天障(천장)이 더 적합한 선택이라고 보인다.

물이 나오는 곳이 우물이다. 그러나 이 우물은 인공을 가미한 장치다. 사람들이 땅 등을 파서 만든, 물 나오는 곳이다. 그에 비해 샘은 자연스럽게 물을 얻을 수 있는 곳이다. 방언의 형태로 볼 때 우물은 움물, 운물, 웅굴 등으로도 여러 지역에 분포했다고 한다. 샘도 새미, 새암, 시암, 새미물 등 다양한 명칭이 있었다고 한다. 우물은 한자로 井(정), 샘은 泉(천)으로 적는다.

흙을 간단하게 파서 물이 고이도록 만든 게 토정(土井), 그런 곳에 돌을 깔아 물을 머물도록 만든 장치를 석정(石井)이라고 부른다. 자분정(自噴井)도 있다. 스스로(自) 뿜는(噴) 우물(井)이라는 얘기다. 보통은 땅의 압력인 지압(地壓) 때문에 지표면 밖으로 솟는 우물을 가리킨다. 이는 다른 말로 찬정(鑽井)인데, 뚫고 나온(鑽) 우물(井)이라는 점에서 그런 이름을 붙였으리라 보인다.

뚫는다는 뜻의 한자 착(鑿)을 붙여 착정(鑿井)이라고 하는 게 있는데, 일반적 뜻풀이로는 ‘우물을 뚫다’다. 그러나 토목용어에서는 지표면으로부터 30m 이상 뚫어 쇠로 만든 강관(鋼管)을 사용해 만든 우물을 가리킨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는 법이다. 그런 경우를 ‘임갈굴정(臨渴掘井)’이라고 한다. 목마를 때(渴) 이르러서야(臨) 우물(井)을 판다(掘)는 구성이다.

밭 갈 때에야 비로소 우물을 파는 경우도 있다. 임경굴정(臨耕掘井)이라고 적는다. 목마를 때, 또는 밭 갈아야 할 때 이르러서야 우물을 파는 사람은 준비성이 부족한 사람이다. 당장 급해서야 움직이니 말이다. 따라서 臨渴掘井(임갈굴정)이나 臨耕掘井(임경굴정) 모두 평소엔 게으르게 있다가 일이 닥쳐서야 겨우 움직이는 사람을 일컫는다.

대롱 모양의 긴 관(管) 모습의 우물이 일반적이다. 그런 우물을 흔히 관정(管井)이라고 적는다. 그런 우물에서 원유(原油)가 솟아 나오면 그것은 유정(油井)이다. 한반도와 주변 해역에 그런 油井(유정)이 많이 나와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아직은 없다. 석탄이나 금·은 등을 캐기 위해 만든 광산의 구덩이는 광정(鑛井)이다. 그러나 피해야 할 구덩이가 있다. 남을 빠뜨리게 파놓은 구덩이, 즉 함정(陷井)이다. 또는 陷穽(함정)으로도 적는다.

정연(井然)이라는 말 우리가 자주 쓴다. 짜임새와 조리가 있어 흔들리지 않는 모습이다. 그 정연이 왜 井然(정연)일까. 이는 시청역에서 이미 설명한 정전제(井田制)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땅을 ‘井(정)’ 형태의 아홉 구역으로 나눠 갖도록 해 세금 등을 고루 내는 옛 주(周)나라 시대 토지제도 말이다. 그렇게 골고루 정리를 잘한 모습의 땅을 가리키면서 이 井然(정연)이라는 말이 나왔다고 보인다.

井(정)이라는 글자, 따지고 보면 할 말이 많은 대상이다. 생명의 원천인 물을 사람에게 나눠주는 고마운 곳이라서 그렇다. 아울러 생활에 필요한 여러 물자도 이 우물을 파고 뚫는 천착(穿鑿)의 과정에서 나온다. 내 스스로는 어떤 우물을 지니고 있을까, 내 실력의 원천을 확보하기 위해 우리는 그 우물을 잘 파고 있는 것일까. 늘 생각해야 할 대목이다.

저작권자 © 뉴스웍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