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벼리기자
  • 입력 2016.05.19 13:18
지난 9일 부산시와 부산국제영화제측은 “부산국제영화제를 둘러싼 갈등사태를 봉합하고 이번 21회 영화제를 성공적으로 개최하기로 합의했다”는 내용의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이로써 영화계를 뜨겁게 달궜던 부산국제영화제 사태가 마무리 국면에 접어든 것처럼 보였다.

◆ 터지기 직전 봉합된 갈등…그러나

하지만 합의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면 이번 공동성명은 ‘언 발에 오줌누기’식 대처에 불과하다. 비유컨대 이번 합의는 눈앞에 있는 지뢰를 조금 더 멀리 옮겨 심은 것과 같다. 심지어 폭발력은 더 세졌다.

앞서 부산국제영화제 논란의 기폭제가 된 것은 “영화제의 독립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관을 개정해야 한다”는 영화제측과 이를 거부하는 부산시 사이의 의견차였다.

따라서 이번 합의에서는 정관개정 문제가 핵심이었다. 양쪽은 영화제측이 요구하는 ‘독립성’과 부산시가 주장하는 ‘책임성’을 모두 추구하는 방향으로 정관개정이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영화제의 독립성을 해칠 만한 요소들이 농후했다.

일단 영화제측이 얻어낸 것은 정관 중 ‘조직위원장은 부산시장이 당연직으로 맡는다는 조항’을 삭제하기로 한 부분이다. 부산시와 영화제측은 그 대신 ‘올해에 한해 조직위원장은 부칙에서 부산시장과 부산영화제 집행위원장이 공동 위촉’하는 안을 담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이번 영화제 조직위원장으로 김동호 명예집행위원장이 위촉됐다.

이는 영화제 정치개입 논란의 중심인물이 물러나고 부산국제영화제 초기 집행위원장이자 영화인이 들어선다는 점에서 영화제의 독립성을 강화했다고 평가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한시적이고 ‘합의’ 위촉이라는 점에서 한계 또한 명백하다.

서병수(오른쪽) 부산시장과 강수연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이 9일 오전 부산시청에서 만나 부산국제영화제 관련 공동성명을 낸 뒤 악수를 나누고 있다.

뿐만 아니라 또 다른 개정안의 내용을 고려하면 이번 조직위원장 교체가 단순히 부산시의 면피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부산시는 ‘임원 선출시 지역 참여성과 전문성을 제고’, ‘집행위원장에 집중된 권한을 재조정’, ‘자문위원의 의결권 제한’, ‘법인 사무와 재산 상황에 관한 검사·감독 규정 명문화’ 등의 내용을 정관개정안에 포함했다.

얼핏 책임감 향상을 위한 조치로 보이지만, 앞서 부산시가 영화제측을 압박할 때도 우회적인 수단을 이용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오히려 이번 개정으로 부산시는 영화제를 통제할 합리적인 수단을 쥐게 됐다. 특히 보통 영화인으로 구성되는 자문의원의 의결권을 제한한다는 부분에서는 그 의도가 명백하다.

벌써부터 영화계에서는 “강수연 집행위원장의 무능” 등 이번 합의 결과를 성토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부산시와 영화계의 갈등이 영화계 내부의 싸움으로 번지고 있는 셈이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이번 합의를 부산시의 “완전한 승리”로 평하기도 한다. 부산시 입장에서는 부산국제영화제의 파행을 면했을 뿐만 아니라 영화계를 분열시키는 것까지 성공해 일타이피라는 것이다.

(왼쪽부터) 클로드 베리, 클로드 를르슈, 프랑수아 트뤼포 등 영화인들의 행동으로 1968년 21회 칸영화제는 개막 1주일 만에 전면중단됐다. <사진제공=칸영화제>

◆ 1996년의 부산뿐만 아니라 1968년의 칸도 기억하자

이번 합의를 이끈 영화제 관계자들의 입장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에게는 무엇보다 이번 영화제의 개최가 가장 중요했을 것이다. 1996년 1회를 시작으로 명실상부 ‘아시아 최고의 영화제’ 자리에 오르기까지 20년간 쏟아온 노력과 희생에도 공감한다.

하지만 그들이 기억해야 할 또 다른 시간이 있다.

1968년 2월 프랑스. 당시 문화부장관이었던 앙드레 말로는 프랑스 영화계의 주축 앙리 랑글루아를 영화자료관쯤인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책임자에서 경질했다. 그의 문화적 영향력을 견제하기 위한 조처였다.

영화인들은 바로 들고 일어섰다. 프랑수아 트뤼포, 클로드 를루슈, 로만 폴란스키, 장 뤽 고다르 등 프랑스의 젊은 영화인들뿐만 아니라 찰리 채플린이나 존 포드 등 해외 감독들도 이에 동참했다.

결국 70일 만에 정부는 랑글루아를 복직시켰다. 하지만 영화인들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정치로부터 영화의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한 행동이 필요하다고 느낀 것이다. 그러다 5월, 프랑스에서는 ‘68혁명’이 발발과 함께 5월 10일 제21회 칸국제영화제가 개막했다.

영화제가 무엇보다 소중했을 영화인들은, 그러나 영화제 행사장에 찾아가 영화를 중단시키라고 요구했다. 지금 당장의 영화제 진행보다 더 무거운 과업이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후 심사위원들도 스스로 물러나고, 감독들도 출품작을 거둬드렸다. 결국 영화제는 일주일 만에 중단되기에 이른다. 영화제 사상 초유의 사건이었다.

이후 “칸영화제는 죽었다”는 등 영화인들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일었다. 하지만 영화제 전면 중단이라는 극단적 위기 1년 뒤 돌아온 칸영화제는 오히려 한층 단단해졌다.

특히 ‘감독주간’ 부문이 새로 들어섰다. 이로써 기존 영화제 상영작 선정 과정에서 드러났던 관료주의적 경직성을 탈피하고 보다 상영작을 자유롭게 상영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 감독주간을 창설한 피에르-앙리 들뢰는 “영화 선정을 더 자유롭게 하고, 심사위원도 상도 없지만 오직 영화 팬들을 위해 마련했다”고 말했다.

우연히도 68년 열린 칸국제영화제가 21회차였고,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또한 21회를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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