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5.16 15:04
나무에 가득 자라난 버섯의 모습이다. 지하철 1호선 지제(芝制)역의 앞 글자는 잔디, 난초 등의 새김에 버섯이라는 뜻을 함께 담고 있다.

잔디와 비슷한 떼가 잘 자라는 곳이었던가 보다. 떼가 무성하게 잘 자라 이곳의 원래 이름이 지제울로 불렸다고 한다. 떼를 가리키는 한자 지(芝)가 그렇게 작용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다음 글자 제(制)는 왜 그곳에 들어갔는지가 불분명하다. 두 글자 芝(지)와 制(제)가 의미로는 잘 들어맞지 않는 경우다. 그냥 우리말 발음대로 불렀던 명칭에 한자 制(제)를 추가했을지도 모른다는 추정만이 가능할 뿐이다.

앞 글자 芝(지)는 풀임에 분명하다. 경기도 일원에서 이 글자가 붙은 지명이 제법 보인다. 그런 경우는 대개 떼 또는 잔디와 같은 풀을 가리켰을 수 있다. 사전적인 정의로 볼 때는 그냥 풀로만 볼 수 없고, 향기 나는 풀 정도로 읽히는 경우가 많다. 특히 난초(蘭草)와 함께 붙어서 지란(芝蘭)으로 표기할 때가 많다.

芝蘭(지란)이라고 할 때의 풀은 모두 향기가 나는 그런 식생(植生)이었던 모양이다. 芝草(지초)와 蘭草(난초)처럼 은은한 향기를 품은 식물, 나아가 그렇게 격식이 있고 우아한 친구와 친구 사이를 나타내는 말이다. 이를 성어로는 ‘지란지교(芝蘭之交)’라고 적는다. ‘지란지실(芝蘭之室)’로 적으면, ‘우아한 향기가 풍기는 방’이다. 환경이 좋은 곳, 또는 덕이 있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芝(지)는 아울러 버섯을 가리킨다. 장수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버섯을 우리는 영지(靈芝)라고 적으니, 그 말뜻은 곧 ‘영험한 버섯’이리라. 해독 작용이 있고, 염증을 가라앉히며, 아울러 항암(抗癌) 성분이 있다고 알려진 운지(雲芝)라는 버섯도 있다고 한다. 말발굽처럼 생긴 버섯으로 육질이 흰색을 띠고 있는 것은 백지(白芝) 또는 옥지(玉芝)라고 적는다.

‘지초무근(芝草無根)’이라는 성어가 있는데, 쓰임새는 많지 않으나 ‘버섯은 뿌리가 없다’라는 풀이가 가능하다. 그러나 속뜻은 ‘남으로부터 도움을 받지 않고 성공한 사람’을 일컫는다고 한다. 뿌리로부터 오는 자양분의 도움 없이 스스로 자라나 모양을 이룬 경우다. 이를 테면 ‘자수성가(自手成家)’와 같은 뜻의 성어다.

여느 풀이 그렇듯이 그 뿌리는 튼실하게 자라지 않는다. 그러나 풀은 생태계의 밑바닥을 이루고 있는 중요한 자원이다. 그들이 잘 자라야 다른 식생도 잘 자란다. 아울러 그를 바탕으로 동물도 잘 살아간다. 고마운 자원이다. 그런 풀에 향기까지 보태진다면 그야말로 고귀한 존재다. 향내와 함께 우아한 자태까지 뽐내는 芝蘭(지란)을 우리가 아끼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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