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5.17 10:33
사람이 발길과 손길이 닿지 않는 벌판을 일컫는 한자가 野(야)다. '문명의 바깥'이라는 새김도 있다.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상태다. 그로부터 파생한 단어 중 하나가 야비(野鄙)다.

요즘 자주 쓰는 말이 ‘야동’이다. 야한 동영상이라는 뜻의 새 조어(造語)로, 한자로 적으면 ‘야동(野動)’이겠다. 우리는 “야(野)하다”는 말을 많이 쓰는데, 부정적 어감이 퍽 많은 이 글자의 원래 유래는 꼭 그렇지만 않다. 공자(孔子)는 <논어(論語)>에서 사람의 품격을 따지며 문질(文質)의 두 글자를 병렬했다.

앞의 文(문)은 겉으로 드러나는 무늬라고 보면 좋다. 뒤의 質(질)은 안으로 감춰져 있는 바탕으로 옮길 수 있다. 수양과 학습 등을 통해 사람이 쌓는 외형적 품격이 文(문)이요, 그를 뿜어내는 뿌리 또는 근저가 곧 質(질)이다. 둘이 조화를 이루지 못해 文(문)이 質(질)을 과도하게 압도하면 꾸밈이 지나친 상태, 즉 공자의 표현으로는 史(사)다. 그와 반대로 質(질)이 文(문)을 넘어서면 그게 바로 野(야)라고 했다.

문맥으로 보면 野(야)는 학습 등으로 외양을 제대로 꾸미지 않아 바탕이 그냥 드러나는 상태를 가리킨다. 순수하며 천연덕스러운 모습이 좋을 때도 있지만, 문화적으로 다듬어지지 않아 어딘가 부족해 보이는 경우다. 공자는 이 둘이 조화를 이뤄야(文質彬彬) 군자(君子)라 할 수 있다고 봤다.

우리 한자 자전의 우선 새김으로 보면 이 野(야)는 ‘들판’이다. 그러나 한자 초기의 쓰임에서 볼 때는 일정한 지역을 가리켰다. 공자에 비해 연대가 더 거슬러 올라가는 주(周)나라 때의 구역 지칭이다. 왕도(王都)를 중심으로 100리(里) 바깥을 郊(교)라고 했고, 그로부터 200리를 더 나가면 그곳이 바로 野(야)다.

우리가 “사람 참 야비하네…”라고 끌탕 칠 때의 야비(野鄙)라는 단어는 사실 이와 관련이 있다. 野(야)와 鄙(비)는 거의 같은 구역, 또는 鄙(비)가 野(야)에 비해 왕도로부터 훨씬 더 떨어져 있는 곳을 가리켰다고 본다. 왕도를 문명이 깃든 곳으로 간주하고, 그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을 비(非)문명의 지역으로 보려는 차별적 시선이 읽힌다.

그래서 문명과 동떨어진 곳, 또는 그 지역의 사람을 야만(野蠻)이라 했다. 정치가 벌어지는 중심을 朝(조)라고 표현하면서 그로부터 떨어져 있는 곳 또는 사람을 野(야)라고 지칭한다. 둘을 묶어 쓰면 조야(朝野)다. 정치에 간여하지 않거나, 핵심 업무로부터 비켜 서있는 사람을 야인(野人)으로 적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성격이 다듬어지지 않아 거친 사람을 조야(粗野)라고 적기도 한다.

鄙(비)라는 글자의 쓰임도 제법 많다. 우선 순우리말 새김은 ‘다랍다’다. 인색함, 더러움, 상스러운 말씨 등을 일컫는 말이다. 우선 비루(鄙陋)라고 적어 사람의 천박하며 더러운 성격을 가리킨다. 북비(北鄙)라고 적어 수도로부터 북쪽으로 아주 멀리 떨어진 곳, 우리의 경우는 가장 먼 변방인 함경북도를 지칭했다.

사정이 그러니 野(야)와 鄙(비)가 만나 야비(野鄙)를 이루면 결코 좋은 조합이 아니다. 거칢과 더러움이 겹치니 상스럽고, 볼썽사나우며, 천박해서 오히려 가엾다. 요즘 법복(法服)을 걸친 전직 판사와 검사의 탈선이 가관이다. 오로지 돈을 위해, 그저 돈만을 바라보며, '닥치고' 돈만을 생각하며 살았던 인생이라는 생각이다. 이들의 품성에, 또한 그리 분위기를 이룬 우리사회에 붙일 수 있는 단어가 거칢과 더러움의 '야비'일지 모른다.  

<한자 풀이>

文 (글월 문): 글월, 문장. 어구, 글. 글자. 문서. 서적, 책. 문체의 한 가지. 채색, 빛깔. 무늬. 학문이나 예술. 법도, 예의. 조리.

質 (바탕 질, 폐백 지): 바탕. 본질. 품질. 성질, 품성. 저당물, 저당품. 맹세. 모양. 소박하다, 질박하다.

野 (들 야, 변두리 여, 농막 서): 들, 들판. 민간. 문밖, 마을, 시골. 성 밖, 교외(郊外). 구역, 범위. 별자리. 야생의. 질박하다.

鄙 (더러울 비, 마을 비): 더럽다. 천하다, 비루하다. 속되다. 부끄러워하다, 천하게 여기다. 촌스럽다. 깔보다, 얕보다. 질박하다, 꾸밈이 없다.

 

<중국어&성어>

文质(質)彬彬 wén zhì bīn bīn: 겉과 이면이 잘 어울려 빛을 내는 모습. 공자의 <논어>에 등장하는 말로, 이제는 교양과 성격이 잘 어울려 좋은 모습을 보이는 사람에게 쓰는 성어다. 자주 쓴다. 본문에 나오는 공자의 발언 원문은 이렇다. “質勝文則野,文勝質則史,文質彬彬,然後君子.”

野鄙 yě bǐ: 우리의 ‘야비’라는 단어와 쓰임이 거의 같다.

卑鄙 bēi bǐ: 원래는 지위가 낮고 식견이 부족한 사람의 뜻이었다가 근대에 접어들어 성격이 저급하고 열악한 사람을 가리키는 단어로 자리를 잡았다.

鄙陋 bǐ lòu: 우리말 ‘비루하다’의 쓰임과 같다. 천박하고 더러운 대상을 일컫는 말이다.

质(質)而不野 zhì ér bù yě: 순박하면서도 거칠지 않은 사람. 소박한 성격에 의젓함까지 갖춘 사람 등을 일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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