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5.17 18:14
넓고 고른 대지를 평원(平原)으로 부른다. 사진은 중국 서북부 위구르 지역의 드넓은 평원 모습이다. 평택(平澤)이라는 지명 또한 그런 지형과 관련이 있다. <사진=조용철 전 중앙일보 기자>

편평할 평(平)에 못이나 습지 등을 일컫는 택(澤)이 붙었다. 지형이 벌판을 이루면서 물길도 여러 곳에 나 있다는 지리적인 특징을 표현한 지명으로 보인다. 실제 이곳은 삼국시대 때 하팔현(河八縣)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그 정확한 가리킴이 무엇인지는 불분명하지만, 물길이 여덟이어서 그랬으리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지금의 통계를 봐도 평택은 벌판이 발달한 지역임이 분명하다. 평택에 속한 토지의 45%가 농경지라는 점이다. 이는 매우 눈에 띄는 수치에 해당한다는 설명이다. 경기도 전역에서 농경지 비율로 따질 때 평택은 단연 압도적이다. 그만큼 벌판과 수로(水路)가 많아 농경 활동에 적합하다는 얘기다.

그런 곳은 큰 세력 사이의 다툼이 없는 한 매우 행복한 지역이다. 그러나 세력의 다툼이 번질 때는 골치가 아파진다. 아니나 다를까. 이곳은 아주 오래전부터 유명한 싸움터였다. 평택 말고도 우리가 지나친 경기도 남부 일원은 사정이 대개 비슷했다. 이 평택 역시 백제의 땅이었다가, 다시 고구려의 영토로 귀속한 사례가 있다. 농경이 편한 환경이었으니 쌀 등 곡식의 수확이 많았을 테고, 그런 기름진 땅을 다투는 세력들이 이곳을 그냥 내버려 뒀을 리가 없었을 게다.

지역을 대표하는 명칭으로 볼 때 평택은 앞서 우리가 지나온 진위(振威)와 병렬로 놓이는 경우가 많았다. 이곳 일대의 지명이 때로는 진위로, 때로는 평택으로 바뀌는 경우가 많았다는 얘기다. 진위가 한때는 더 대표적인 지명으로 쓰이는 경우도 있었는데, 조선 말인 고종 때에 이르러 구체적으로 나눠지다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 건국 뒤에 접어들면서 평택이라는 이름이 더 눈에 들어온다.

지금은 해안가를 끼고 있으며, 인천과 함께 대규모의 항구를 갖춘 도시로서 평택의 성장과 발전이 눈부실 정도다. 넓은 들판에, 풍부한 수자원(水資源), 게다가 대형 항구까지 갖췄으니 이 평택의 미래는 매우 밝다고 할 수 있으리라.

平(평)이라는 글자의 우선적인 새김은 편평(扁平)함이다. 기울어지지 않았고, 굴곡이 없는 땅이나 사물의 모양이다. 멈춰있는 물의 수면(水面)을 떠올리면 좋다. 평탄(平坦), 평면(平面), 평원(平原), 수평(水平), 지평(地坪) 등이 그런 쓰임새다. 平澤(평택)의 경우나 평양(平壤)의 경우는 같다. 둘 다 벌판이 발달한 곳이라는 점에서 얻은 이름이다. 平壤(평양)은 편평한 땅(壤)이라는 뜻이다.

굴곡이 없어 편평한 판자를 평판(平板)이라고 적으며, 저울로 잴 때 서로 기우는 일이 없으면 그 상황은 평형(平衡)이다. 여기서 衡(형)은 저울을 가리킨다. 평행(平行)은 벌판처럼 놓인 평면을 두 선이 곧장 가는 경우다. 그런 모습의 넓은 들을 평야(平野)라고 한다.

아울러 치우치거나 쏠림이 없는 상황을 가리키는 뜻도 얻었다. 골고루 나누는 일이 평균(平均)이다. 공정하면서 치우침이 없는 경우를 우리는 공평(公平)이라고 적는다. 그렇지 않은 경우를 불평(不平)이라고 하는데, 거기다가 우리는 불만(不滿)을 붙여 ‘불평불만(不平不滿)’을 이야기한다. 치우침, 또는 쏠림이 없으면 평등(平等)이다.

태평(太平)은 전란과 재난이 없는 좋은 시절을 가리킨다. 비슷한 의미로 생긴 단어가 평화(平和)다. 전쟁이나 다툼 등이 없어 서로 조화롭게 사는 상황이다. 따라서 平(평)은 편평한 모습, 치우침이 없는 상황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전쟁 등이 없는 안정적인 상황이라는 의미도 얻은 셈이다. 그렇듯 불안정한 상황이 없어 편안한 경우를 평안(平安) 또는 평온(平穩)이라고 한다. 청평(淸平)도 어두운 그늘이 사라진 좋은 상황을 뜻한다.

‘다스리다’의 뜻도 있다. 우리가 평정(平定)이라고 적을 때다. 인위적인 힘과 기술을 사용해 불안정한 상황을 고르게 펴서 안정(安定)시키는 일이다. 편평한 땅이 줄곧 이어지면 특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따라서 平(평)이라는 글자에는 ‘두드러지는 게 없는’ ‘변화가 없는’의 뜻도 있다. 평범(平凡)이라는 단어가 생긴 이유다. 그런 일반인을 평민(平民)이라고 한다.

줄곧 이어지는 편평한 땅, 그로부터 다시 얻은 새김이 ‘변화가 없이 줄곧 이어지다’다. 평생(平生), 또는 생평(生平)이 계속 살아온 삶을 가리키는 이유다. 평소(平素)와 평상(平常)도 특별한 때가 아닌 일반적인 시간을 가리킨다. 같은 의미로 쓰는 단어가 평시(平時)다. 특별한 경우가 아닌 평소에 입는 옷이 평복(平服), 그런 차림을 평장(平裝)이라고 한다. 일반적인 해를 평년(平年)이라고 적는다.

이밖에도 平(평)의 쓰임새는 아주 많다. 대표적인 게 공평무사(公平無私)다. 공정하고(公) 치우침이 없으며(平) 개인적인 태도(私)도 없다(無)는 엮음이다. 천하태평(天下泰平)이라고 적으면 분란 등이 생기지 않는, 잘 다스려지는 세상이라는 뜻이다. 거기다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편하게 지내는 사람을 놀리는 뜻도 있다. 평지풍파(平地風波)는 아무 일도 없는데 괜히 소란을 일으키는 일이다.

고르고 넓은, 그래서 안정과 번영의 뜻까지 있는 平(평)에 너무 쏠렸는가보다. 그 때문에 平澤(평택)의 다음 글자 澤(택)에 관한 설명은 다음 기회로 미뤄야 하겠다. 그저 平(평)이라는 글자 하나를 두고 설명이 길어졌으니 말이다. 이 글자 풀면서 역시 平(평)을 놓친 셈이다. 쏠림이 없어야 한다는 그 글자의 가르침을 잊은 것이다. 그렇게 쉬운 듯 어려운 게 이 平(평)이다. 잔잔한 물처럼 마음을 가둬야 큰일을 할 수 있는 법인데, 그를 가리키는 평담(平淡)이 말처럼 쉽지는 않다.

그와 관련해 유명한 글귀 하나만 덧붙이고 다음 역으로 넘어가자. 우리가 잘 아는 제갈량(諸葛亮)이 세상을 뜨기 얼마 전 여덟 살 난 아들에게 남긴 글의 일부다.

담박함으로써 뜻을 밝히고, 고요함으로써 멀리 이른다(淡泊以明志, 寧靜以致遠)

제목은 ‘아들을 일깨우는 글’이라는 뜻의 ‘계자서(誡子書)’다. 아들에게 남긴 가르침이기는 하지만, 제갈량이 죽기 전에 남긴 글이니 그의 인생관과 철학이 고스란히 담긴 말이다. 여기서 담박(淡泊 또는 澹泊)은 깨끗하게 자기를 닦으면서 세상의 공리(功利)를 탐내지 않는 자세다. 그로써 뜻을 밝혀(明志)야 옳은 배움에 힘을 쏟을 수 있다는 말이다.

고요함을 가리키는 영정(寧靜)은 결국 ‘집중(集中)하는 힘’을 말한다. 모든 힘을 쏟아 한 곳에 집중해 배우고 또 배워야 먼 곳(遠)에 이를 수 있다(致)는 얘기다. 여기서 ‘먼 곳에 이름’의 치원(致遠)은 원대한 목표를 이루는 일이다. 잡스러운 여러 가지에 신경 쏟아붓지 말고 먼 곳을 내다보면서 크게 내딛어 길을 가라는 충고다. 이 구절의 울림이 아주 커서 여기에 적는다. 이제 달콤하게 참외가 익는 동네로 넘어가 보자.

<지하철 한자 여행 1호선>, 유광종 저, 도서출판 책밭, 2014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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