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5.18 17:35
넝쿨에 조용히 매달려 있는 멜론의 모습. 지하철 1호선 성환역은 이런 멜론, 토종 개구리 참외로 한 동안 크게 이름을 떨쳤던 곳이다.

천안시 서북구의 최북단에 있는 읍의 이름이다. 이곳의 유래는 아무래도 찰방(察訪)에서 찾아야 옳을 듯하다. 조선시대 찰방은 공문서, 또는 관리 등이 지역을 오갈 때 도움을 주던 역참(驛站)을 관리하던 직위다. 품계는 다소 낮아 종육품(從六品)의 외관직(外官職)이었다고 한다.

역참에 관해서는 앞의 일부 역을 지날 때 이미 소개했다. 교통의 편의를 위한 말과 숙박시설 등을 관원 등에게 제공하던 곳이다. 현재의 성환에는 과거 이 일대 10여 개의 역참을 관리하던 터가 남아 있다고 하는데, 이곳이 조선시대에는 사람의 이동과 물자의 교류가 빈번했던 곳의 하나였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행정구역의 명칭으로 성환이라는 이름이 본격 등장하는 때는 1914년으로 나와 있다. 일제 강점기의 행정구역 개편 때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전의 조선 지도와 기록에는 성환이라는 이름이 역참의 하나로, 또는 그 일대를 관리하는 찰방의 이름으로 종종 등장하는가 보다.

먼저 자랑할 만한 토산품이 있다. 바로 참외다. 꽤 오래전부터 명성을 얻었고, 광복 뒤와 6·25전쟁 기간을 거치면서도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참외를 생산했던 곳이다. 成歡(성환)이라는 이름은 ‘이루다’는 뜻의 成(성)이라는 글자와, ‘기쁘다’ ‘기쁨’ 등의 새김을 지닌 歡(환)의 결합이다. 따라서 직접 그 뜻을 풀자면 ‘기쁨을 이룸’이다. 이 말의 뜻이 조선시대에 버젓이 쓰였다는 점이 조금은 신기하다. 왜냐하면 成歡(성환)이라고 적을 때 일반적 쓰임새로는 ‘남자와 여자의 결합’을 의미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남녀가 결합하는 일은 곧 성적인 행위도 가리킨다. 영어로 하면 sex, 또는 게서 나오는 즐거움과 기쁨을 뜻한다. 따라서 엄격한 남녀유별(男女有別)의 극단적인 가치관을 고수했던 성리학(性理學)의 조선에서 이를 지명이나 역참의 이름으로 적었다면 그야말로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니 여기서의 成歡(성환)이 남녀의 결합과 그로부터 번지는 환락(歡樂)을 가리킬 수는 없다고 봐야 하겠다. 남녀의 결합 이전에 이 말의 원래 뜻은 무슨 행위를 해서 당초의 의도대로 마땅히 무엇인가를 거둬 기쁨에 이르는 일이겠다. 예를 들어 술을 마시면 제대로 마셔 술을 마시려 했던 의도를 달성하고, 학업에 매진했으면 그 노력대로 좋은 결과에 이르는 일 등이다.

그래서 成歡(성환)이라는 지명은 이곳에 들어섰던 찰방에서 유래하지 않았을까 추정할 뿐이다. 지역 일대의 역참을 모두 관리하는 곳이라면, 이곳은 일대의 다른 역참이 들어섰던 곳보다 사람의 왕래와 물자의 교류가 훨씬 풍부했던 곳이라고 볼 수 있다. 이를 테면 퍽 번성했던 장터 등을 떠올릴 수 있겠다. 그런 곳에서 서로 거래를 하고, 그를 성사시켜 만족과 기쁨을 이루는 곳이라는 뜻으로서 成歡(성환)이라는 지명이 생기지 않았을까 하는 추정 말이다.

요즘도 이곳은 경기도 남부에서 충남 아산지역으로 나아가는 중요한 통로이며 대한민국의 큰 동맥인 철도 경부선에 놓여 있기도 하다. 농산물도 풍부하고, 교통의 요지에 있는 까닭에 예나 지금이나 풍부한 물산을 바탕으로 이를 서로 거래하는 사람들의 왕래와 교류가 잦았다. 그러니 成歡(성환)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옛 이곳의 역참, 나아가 그로부터 생기는 사람들의 만남과 거래 등의 항목에서 더듬어 볼 수 있겠다.

成歡(성환)의 歡(환)이라는 글자는 우리 모두 좋아할 수밖에 없다. 즐거움, 기쁨 등의 뜻을 모두 담고 있는 글자이기 때문이다. 비슷한 글자가 기쁘다는 뜻의 희(喜), 즐겁다는 새김의 락(樂)이다. 때로는 환(懽)이나 환(驩)이라는 글자와 통용하기도 한다. 이 두 글자 모두는 대표적 새김이 ‘기뻐하다’라고 한다.

歡(환)이라는 글자로 구성하는 단어는 제법 많다. 우선 환희(歡喜)다. 노력을 기울여 성과를 맛봤을 때, 아니면 그저 다가온 즐거움 등을 다 가리키는 단어다. 우리가 잘 아는 말이다. 기쁜 마음으로 맞이하는 일이 환영(歡迎)이다. 조금은 때로 부정적으로도 쓰지만, 환락(歡樂)은 원래 기쁨과 즐거움을 가리키는 말이다. 기쁜 마음으로 상대를 대하는 일이 환대(歡待)다.

기뻐서 소리를 지르면 환호(歡呼)다. 그렇게 기쁨에 겨워 참새들이 뛰는 것처럼 뛰어오르며 소리 지르면 환호작약(歡呼雀躍)이다. 합환(合歡)과 교환(交歡)이라는 단어도 있다. 앞의 合歡(합환)은 서로 함께 기쁨을 누리는 일, 뒤의 交歡(교환)도 서로 기쁨을 나누는 일의 뜻이다. 원래는 그렇지만, 이 둘은 역시 남녀의 sex라는 의미도 얻었다. 그래서 함부로 쓰기가 곤란한 단어다.

기쁨이 있으면 늘 그 반대인 슬픔도 찾아오는 법. 우리는 그를 비환(悲歡)과 애환(哀歡)으로 적는다. 둘을 동렬에 놓음으로써 서로 정반대인 두 감정이 갈마들 수도 있음을 가리킨다. 여기에 다시 헤어짐과 만남의 뜻인 이합(離合)을 갖다 붙이면 비환리합(悲歡離合)이다.

이 세상 살다보면 다 알아차린다. 기쁨과 슬픔은 늘 갈마든다는 점이다. 사람의 삶은 그런 비환과 애환의 맞물림, 그리고 순환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열심히 이 삶을 긍정하며 꿋꿋하게 버틸 수밖에 없다. 그래야 기쁨을 이루는 진정한 成歡(성환)에 다다를 수 있지 않을까. 기쁨을 온전히 이루는 成歡(성환)은 바람 잘 날 없는 이 삶의 터전에서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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