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5.10.29 12:57

이제 가을이 깊어질 모양이다. 벌써 차가운 기운이 느껴진다. 한 낮의 볕 바른 곳에서는 더위가 조금 남아 있어도 응달에 들어 바람까지 맞으면 제법 시리고 차갑다. 더위 가시고 찾아드는 추위, 한자로는 寒來暑往(한래서왕)이라는 말로 곧잘 표현한다. 

비가 막 그친 뒤의 지난 27일의 남산 산책길이다. 비에 젖어 떨어진 낙엽이 이제 쌀쌀한 날씨와 함께 깊어지는 가을을 알린다.

 

날씨의 흐름에서 더위 물리고 추위 맞는 일은 세월의 지나감을 뜻한다. 오래 머물 것 같던 여름날의 무더움, 또 모질게 버틸 듯 여겨졌던 한 겨울의 추위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 자리를 물리기 마련이다. 그렇게 구름처럼 시간은 흐르고, 우리는 그로써 세월의 덧없음을 느낀다. 

오늘 찾아볼 한자는 寒(한)이다. 차가움, 쌀쌀함, 추움 등을 의미하는 글자다. 거기에 ‘기운’이라는 새김의 글자를 덧대면 寒氣(한기)다. 그러나 같은 맥락의 冷(랭), 凉(량)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정답은 없다. 단지 옛 서적의 하나가 그 셋의 차이를 이렇게 가른다. 추워지는 계절의 처음 무렵 선선함은 凉(량), 그 다음이 冷(랭), 그것이 깊어지면 寒(한)이라는 설명이다. 

이를 기준으로 삼아 세 글자를 우리식으로 풀면 처음의 凉(량)은 서늘함, 둘째의 冷(랭)은 쌀쌀함, 마지막의 寒(한)은 차가움 정도일 것이다. 따라서 寒(한)은 계절을 이야기할 때는 겨울의 대명사요, 暑(서)는 무더운 여름이다. 寒(한)의 원래 글자 모양새는 지붕 밑에 풀을 깔고 여러 사람이 모여 있는 형태라고 한다. 모진 겨울의 추위에 벌벌 떠는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만드는 글자다. 

추위는 더위 못지않게 많은 인내를 요구한다. 그러나 더위에 비해 추위는 어쩌면 더 많은 어려움을 안기며, 사람으로 하여금 그를 이기도록 이끈다. 특히 물질적으로 많이 갖추지 못한 사람에게 추위는 한 층 더 고생스럽다. 그런 추위를 두고 만들어지는 훌륭한 말들은 제법 많은 편이다. 

그 가운데 하나를 소개한다. 당나라 때의 고승인 황벽(黃蘗)선사의 게송(偈頌)에 등장하는 구절이다. “뼈를 뚫는 추위를 견디지 못한다면, 매화는 어찌 코를 찌르는 향기를 얻을까(不經一番寒徹骨, 爭得梅花撲鼻香)”라는 내용이다. 그 중 寒徹骨(한철골)은 徹骨寒(철골한)으로도 적을 수 있다. 

이를 응용해 만든 말이 간결하다. “매화의 향기는 고된 추위에서 나온다(梅花香自苦寒來)”라는 말이다. 그 앞에는 “명검의 칼끝은 숫돌에서 벼려진다(寶劍鋒從磨礪出)”가 있다. 둘이 쌍구를 이루면서 시련과 위기에 선 사람으로 하여금 더 노력해서 그를 이겨내라는 격려의 뜻을 담았다. 

차가워지는 날씨에 마음까지 식으면 어쩔까. 그를 표현하는 말이 한심(寒心)이다. 경우가 딱하거나 기가 막힐 지경에 이를 때 쓰는 말이다. 중국의 용례에서는 우려, 걱정 등을 부르는 일을 일컫는다. 어쨌거나 마음마저 싸늘해질 정도로 경우나 상황이 나빠졌을 때 이 말은 등장하기 쉽다. 

상황이 제아무리 어렵더라도 추위를 뚫고 올라서는 매화의 향기를 생각하자. 명검의 날카로움도 숫돌 위에서 오래 벼려진 끝에 나오는 법이다. 어려워지는 나라 경제 사정, 점차 차가워지는 날씨 속에서 떠올려 본 말들이다. 

<한자 풀이>
寒 (찰 한): 차다, 춥다. 떨다. 오싹하다. 어렵다. 가난하다, 쓸쓸하다. 식히다. 얼다. 불에 굽다, 삶다. 중지하다, 그만두다. 침묵하다, 울지 않다. 천하다, 지체가 낮다.
暑 (더울 서): 덥다. 더위. 여름, 더운 계절.
凉 (서늘할 량, 서늘할 양): 서늘하다. 얇다, 엷다. 외롭다, 쓸쓸하다. 바람을 쐬다. 맑다, 깨끗하다. 미쁘다, 진실되다. 돕다, 보좌하다. 가을. 맑은 술. 슬픔, 시름, 근심.
冷 (찰 냉, 찰 랭, 물소리 영, 물소리 령): 차다, 한랭하다. 식히다, 차게 하다. 쌀쌀하다, 얼다. 한산하다, 한가하다. 낯설다, 생소하다. 쓸쓸하다. 인정미가 적다. 맑다. 물소리(령). 글 읽는 소리(령).
徹 (통할 철): 통하다. 관통하다. 꿰뚫다. 뚫다. 벗기다. 다스리다. 버리다. 부수다. 거두다.  치우다. 구실(온갖 세납을 통틀어 이르던 말) 이름.
撲 (칠 박, 칠 복): 치다. 두드리다. 때리다. 찌르다. 때려눕히다. 엎드러지다. 넘어지다. 가득하다. 소유하다. 가지다. 닦다, 닦아내다. 종아리채.
鋒 (칼날 봉): 칼날. 창, 칼 따위의 뾰족한 끝. 끝. 앞장. 병기. 뾰족하다. 
礪 (숫돌 려, 숫돌 여): 숫돌. 돌 이름. 갈다. 연마하다. 권면하다. 

<중국어&성어>
寒来暑往 hán lái shǔ wǎng: 차가움이 오고, 무더움이 가다. 차가운 계절이 닥치니 무더웠던 날씨가 사라진다. 그로부터 한 걸음 더 나아가 세월의 흐름을 가리킨다.
不经一番寒彻骨, 争得梅花扑鼻香(不經一番寒徹骨, 爭得梅花撲鼻香) bú jīng yī fān hán chè gǔ , zhēng dé méi huā pū bí xiāng: 번역은 본문 참조.  
宝剑锋从磨砺出,梅花香自苦寒来(寶劍鋒從磨礪出, 梅花香自苦寒來) bǎo jiàn fēng cóng mó lì chū ,méi huā xiāng zì kǔ hán lái: 본문 풀이 참조.  

저작권자 © 뉴스웍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