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16.05.22 10:00
흐릿한 날씨 속으로 보이는 베이징의 옛 황궁 자금성의 모습이다. 동아시아의 옛 왕조들은 충효를 통치의 근간으로 삼아 장구한 세월을 이어갔다.

5월이면 부모님 마케팅이 불붙어 불효자들의 회한이 SNS에 가득하다. 고려대학교와 명인제약이 했던 ‘효(孝) 캠페인’도 아직 충효가 먹힌다는 증거다. 하지만 자연적이면서 개인적인 감정이기에 효를 공익 캠페인으로 하는 나라는 별로 없다. 충효는 미덕임에 분명하나, 우리가 소비하는 ‘유교적 충효’는 자유로운 사고를 억압하는 봉건적 사고라는 것이다. 우리가 창조적이지 못한 것도 ‘충효’ 탓일 수 있다는 얘기다.

누구는 민족중흥을 위해 태어났고, 누구는 자신의 행복을 위해 태어났다. 우리에게 민족중흥의 프레임을 씌워 나머지와 둘로 나눈 것은 유신정권의 국민교육헌장이다. 마찬가지로 유교는 세상을 효와 불효, 충신과 적도(賊盜)로 구분하고 인간과 금수(禽獸)로 나눈다. 조선시대 인물사전만 봐도 그렇다. 특징이나 업적보다는 충신, 효자가 먼저다. 아인슈타인이나 스티브 잡스가 있었더라도 생각이나 업적보다는 충효 프레임 때문에 설 자리가 없었을 것이다.

학문이란 게 별거 아니지만 효과는 세다. 어떤 프레임으로 맞추느냐에 따라 인간 자체가 달라진다. 인간을 음양오행의 관계로 보는 한의학에서 간은 목기(木氣)다. 그러나 양의(洋醫)에서 간은 화학공장이다. 학문적 관점에 따라 인간이 바뀌고 치료가 달라지니 생사 또한 갈린다. 유학은 세상을 충효 프레임으로 맞췄다. 그래서 아직 우리는 조선을 지배했던 학술이자 종교인 유교의 강한 영향력 아래 있는 것이다.

중국이 ‘관시(關係 관계)’를 중시하듯 유교도 관계가 우선이다. 관계의 중심에는 왕과 아버지가 우선하고 다음으로 부부, 장유(長幼), 붕우(朋友)로 넓혀간다. 왕과 아버지를 정점으로 수직적 사회와 가정을 만들어 모두가 왕과 아버지만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맹자(孟子)는 이 프레임에 들지 않거나 벗어나면 “인간이 아니다(非人)”라고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현대 학문이 이 프레임을 벗어나 있다. 그렇지만 인간은 인간이다. 학교에서 주입하지 않아도 일상은 일상이다. 달리 강조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부모와 자식을 사랑한다. 그런데도 어찌하여 유교는 말이 필요 없이 일에 프레임을 씌워 강조 한 것인가?

유교는 봉건 윤리이기 때문이다. 유교의 충효는 왕을 존숭하는 존존(尊尊)과 ‘부계 우선(親親)’이라는 원칙으로 위계를 정하고 봉토를 나눴다. 봉건 왕가(王家)가 바로 이런 충효라는 가족 위계에 따라 한 줄로 서서 재산을 분배받았다. 모두가 한 곳을 바라봐야 했고, 한 줄로 서지 않으면 ‘국물’도 없었다. 유교의 충효가 말하는 바가 바로 이것이다.

유교는 충효를 학문의 근간으로 삼고 다른 학문 모두를 불충, 불효한 야만이라 매도한다. 하지만 유교의 충효야말로 전근대적인 봉건 야만이다. 줄서기로 받을 땅이 없다면 유교의 충효는 진정한 충효도, 자유도, 창의성도 아니다. 봉건적 유교의 충효란 편의점에 가면 여러 종류의 담배가 있듯 원하는 사람만 선택할 수 있는 경제적 취향이다.

딱딱하고 형식적이며, 때로는 눈에 띄는 실리적 속성 때문에 유교의 충효에 묻힌다면 자유의 드넓은 상상력의 공간은 사라진다. 그곳에 정말 충직하면서 효성스럽게 갇혀 지낸다면 낭만과 일탈, 풍부한 공상(空想)의 영역도 사라지고 만다. 진정한 가치로서의 충효라는 매력을 잃는다면 충효는 정말이지, ‘담배 한 갑’의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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