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5.21 10:30
세상에 태어나 가장 극적인 인연으로 맺어지는 사이가 부부(夫婦)다. 그 두 사람의 사이를 일컫는 말도 퍽 발달했다. 금슬(琴瑟)도 그런 단어다.

오동(梧桐)으로 만들었다. 가운데가 비어 있다. 금속의 줄을 튕긴다. 오동나무라는 좋은 재질(材質)에 중간을 텅 비우고, 쇠줄이 지나가니 소리가 잘 울린다. 금슬(琴瑟)이라는 악기를 설명하자면 그렇다는 얘기다.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거문고나 가야금을 떠올릴 수 있다.

앞의 琴(금)은 줄이 적다. 울림이 강하고 소리가 분명하다. 뒤의 瑟(슬)은 줄이 그보다 2~3배 정도 많다. 다양한 소리를 낸다. 앞에서 琴(금)을 타고, 뒤에서는 瑟(슬)을 울린다. 크고 강하며 분명한 소리에, 작고 부드러우며 미묘한 소리가 어울린다. 그래서 琴(금)은 좌중(座中)의 전면에서, 瑟(슬)은 병풍 등의 뒤에서 켠다고 한다.

둘은 서로 보완적인 모양이다. 흐릿하면서도 부드럽고 다양한 소리가 크고 강하며 분명한 소리를 뒷받침하는 꼴이니 그렇다. 그래서 예로부터 이 두 악기는 함께 적는 경우가 많았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친구나 남녀가 자연스럽고 적절하게 어울리는 상황을 가리키기도 한다.

옛 시를 모아둔 <시경(詩經)>에 이 금슬(琴瑟)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면서 유명해졌고, 급기야 친구 사이의 우정, 부부 간의 애정을 지칭하는 말로 발전했다. 우리말 쓰임에서도 이 단어는 퍽 유명하다. 입말의 편의에 따라 지금은 ‘금슬’을 ‘금실’로 적는 게 보통이다.

이제 친구 사이의 우정이라는 의미는 거의 없어졌다. 그보다는 부부가 서로 잘 어울리는 모습, 그런 분위기를 주로 일컫는 말이다. 부부를 일컫는 단어는 아주 많다. 인간 세상사에서 그런 남녀의 결합이 사회를 이어가는 중요한 토대를 이루고 있어서다.

배우(配偶)라는 말이 대표적이다. ‘어울린 짝’이라고 옮길 수 있는 단어다. ‘짝’을 일컫는 偶(우)라는 글자는 흔히 藕(우)라는 글자로 통용한다. 뒤의 藕(우)는 ‘연 뿌리’를 가리킨다. 서로 칡처럼 엉겨 있다는 점을 ‘짝’에 비유한 것이다.

그러니 부부가 잘 어울리면 嘉偶(가우), 嘉藕(가우)로 적을 수 있다. 으르렁거리면서 원수처럼 지내는 부부는 怨偶(원우) 또는 怨藕(원우)다. 항려(伉儷)도 부부를 지칭하는 말이다. 서로 대등한 사이를 가리키는 伉(항)과 짝을 이뤘다는 儷(려)의 합성이다.

가실(家室)이라는 말도 부부를 지칭한다. 한 집안을 기준으로 볼 때 전체를 일컫는 家(가)와 그 중의 일부인 작은 방 지칭의 室(실)이 합쳤다. 항려(伉儷)라는 말이 ‘대등한 짝’을 가리키는 반면, 家室(가실)은 크고 작은 건축 개념으로 남편과 아내에 차등을 뒀다. 안주인, 바깥양반 등으로 여자와 남자를 내외(內外)로 구분하는 언어습성과 같은 맥락이다.

봉황(鳳凰)도 전설에 등장하는 봉새를 수컷과 암컷으로 구분해 부르는 단어다. 둘이 이루는 최상의 조합을 가리키면서 역시 부부의 뜻으로도 쓴다. 새가 등장하는 경우의 대표적인 단어는 아무래도 원앙(鴛鴦)이다. 암컷 다니는 곳에 반드시 수컷이 따르는, 그래서 ‘잘 어울리는 부부’의 의미로 많이 쓴다.

봄이 오면 집 처마에 둥지를 트는 제비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연려(燕侶)라는 말이 나왔고, 원앙의 경우도 때로는 원려(鴛侶)로 적는다. 짝을 이뤄 오래 함께 지낸다는 뜻에서 원앙은 필조(匹鳥)라고도 부른다.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에 이어 대한민국 정계의 거목이었던 김종필 전 총리의 작고한 아내 사랑이 세간에 큰 화제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인연의 그물에서 영겁이라는 세월을 거치고 또 거쳐도 이루기 힘든 부부의 인연이다. 64년의 오랜 반려(伴侶)와 헤어지며 보인 노정객의 애틋한 사랑이 퍽 감동적이다.

 

<한자 풀이>

琴 (거문고 금): 거문고. 거문고 타는 소리. (거문고를)타다. 심다.

瑟 (큰 거문고 슬): 큰 거문고. 비파. 엄숙하다. 곱다. 쓸쓸하다. 많다.

藕 (연뿌리 우): 연뿌리, 연근. 서로 맞다.

伉 (짝 항): 짝. 부부, 배필. 정직한 모양. 강하다, 굳세다. 높고 크다. 겨루다. 교만하다. 대항하다, 저항하다. 정직하다.

儷 (짝 려, 짝 여): 짝, 배우자. 쌍, 한 쌍. 나란히 하다. 짝하다. 견줄 만하다. 아름답다.

 

<중국어&성어>

白头(頭)偕老 bái tóu xié lǎo: “흰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의 뜻. 백년해로(百年偕老)의 우리식 성어와 같은 뜻이다. 머리가 모두 희어질 때까지 함께 해로(偕老)하는 일이다. 白頭到老 bái tóu dào lǎo라고도 쓴다.

比翼齐飞(齊飛) bǐ yì qí fēi: 각자의 날개 하나씩으로 짝을 이뤄 함께 하늘로 날아오르는 비익조(比翼鳥). 그 두 새가 날아오름. 부부가 함께 조화를 이룬 경우다.

牛郎织(織)女 niú láng zhī nǚ: 견우와 직녀. 음력 칠월칠석에나 만나는 남녀. 지금은 멀리 떨어져 있는 상태의 부부를 지칭한다.

故剑(劍)情深 gù jiàn qíng shēn: 옛 고사에서 고검(故劍)은 처음 혼인을 맺은 아내를 가리킨다. 부부사이의 정이 깊은 경우를 일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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