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5.28 10:00
밤 하늘의 별이다. 자세히 살피면 가운데 7개로 이뤄진 북두칠성이 보인다. 1호선 두정역에는 북두칠성을 상징하는 한자 斗(두)가 들어있다.

천안의 동(洞) 이름이자 전철 1호선이 지나는 역의 이름이다. 원래는 천안군 북이면(北二面)이었다가 상두정(上斗井) 등 일부 면을 합쳐서 두정리(斗井里)로 자리 잡은 뒤 나중에 천안이 시로 승격하면서 지금의 동 이름으로 정착했다.

斗井(두정)이라는 이름은 한반도 몇 군데에서 등장한다. 서울 왕십리 인근에도 있고, 경기도 광주 근처에도 있다. 공통적으로는 이 지역들에 네모반듯한 말(斗) 모양의 우물이 있어, ‘말우물’이라는 순우리말 지명으로 있다가 결국 한자 이름으로 바뀌었다는 설명이다.

‘말’과 ‘되’는 물건의 부피를 재는 단위다. 한자로는 두승(斗升)이라고 적었다. 많이 들어가는 말이 斗(두), 그보다 적게 들어가는 되가 升(승)이다. 혹은 앞에 적은 말우물의 예처럼 물건 등을 담는 그릇, 또는 용기(容器) 등을 설명할 때도 등장한다. 특히 斗(두)는 하늘의 별자리에서 유독 우리의 눈길을 끄는 북두칠성(北斗七星)의 경우처럼, 일곱 개로 이뤄진 그 별자리가 물을 뜨는 국자의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그 국자 모양을 斗(두)라는 글자로 형용했던 셈이다.

도량형(度量衡)은 길이를 재는 도(度), 부피를 재는 량(量), 무게를 다는 형(衡)의 합성이다. 즉 사물의 기준을 일컫는다. 말과 되는 모두 중간의 量(양)에 속하는데, 일반적인 쓰임에서의 말 斗(두)는 제법 많은 양을 가리킨다. 우선 우리가 자주 쓰는 말이 ‘말술’이다. 한자로 적으면 두주(斗酒)다. 한 말의 술을 들이켤 수 있다는 얘긴데, 꼭 한 말의 술만 가리키는 게 아니라 ‘많은 술’을 뜻하기도 한다.

두주불사(斗酒不辭)라는 말도 그렇다. 말(斗) 술(酒)을 사양하지(辭) 않는다(不)의 엮음이다. 이 말 믿고 술 많이 마시지 말자. 예전의 술은 대개가 알코올 도수가 낮은 탁주(濁酒)가 기본이다. 따라서 요즘 식으로 이르자면 막걸리다. 말술을 들이켜는 일은 막걸리여서 가능했다. 지금처럼 도수 높은 위스키나 고량주, 나아가 소주 등을 말로 들이켜면 사람의 간(肝)이 배겨낼 리 없으니 그리 알고 조심하자.

팔두재(八斗才)라는 단어도 있다. 조조(曹操)의 아들 조식(曹植)은 문학적인 재능이 워낙 탁월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당시의 또 다른 시인 사령운(謝靈運)이 그런 조식의 문재(文才)를 예찬하면서 “세상에는 모두 한 섬(一石)의 재주가 있는데, 조식이 그중 여덟 말의 재주를 차지했고, 천하의 다른 이들은 한 말의 재주를 나눴다”고 했다.

팔두재, 혹은 팔두지재(八斗之才)라는 성어는 예서 나왔다. 아주 풍부하게 지니고 태어난 사람의 재주를 일컫는 말이다. 오두미(五斗米)라는 말도 있다. 중국 초기 도교(道敎)의 중요한 유파의 이름이지만, ‘귀거래사(歸去來辭)’로 유명한 시인 도연명(陶淵明)이 “다섯 말 들이 쌀에 허리를 굽히지 않는다”고 했던 발언으로 이름을 얻었다.

따라서 쌀 다섯 말, 五斗米(오두미)는 낮은 계급의 관리가 받는 봉록(俸祿)을 일컫는다. 아울러 세속의 작은 가치, 보잘것없는 이름이나 명예 등도 가리킨다. 이는 또 ‘不爲五斗米折腰(불위오두미절요)’라는 성어로도 남았다. 다섯 말 쌀(五斗米)을 위해(爲) 허리(腰)를 굽히지(折) 않는다(不)의 엮음이다. 돈이나 명예에 연연하지 않는 맑고 깨끗한 정신의 소유자 등을 가리키는 말이다.

겁이 없는 사람을 ‘담이 크다’라고도 한다. 그런 경우를 일컫는 한자 단어는 두담(斗膽)이다. 담이 한 말 정도의 크기 또는 부피에 이른다는 얘기다. 그렇게 대담(大膽)함도 갖춰야 하고, 아울러 그와 함께 재주도 따라야 큰일을 이룰 수 있다. 그렇게 큰 재능으로 대단한 업적을 쌓은 사람을 우리는 태산북두(泰山北斗)라고 한다. 크기가 대단한 태산과 별자리의 왕 북두처럼 휘황찬란한 덕망과 실력을 함께 선보인 사람이다. 그런 사람 많은 사회가 좋은 사회다. 우리 사회는 어떨까.

<지하철 한자 여행 1호선>, 유광종 저, 도서출판 책밭, 2014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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