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5.30 11:03

(3) 낙동강 혈투-7

[뉴스웍스=유광종기자]> 낙동강 전선의 싸움은 아주 격렬했다. 특히 대구 북방의 다부동에서 벌어진 전투는 피아간에 참혹한 인명 피해를 감수해야 했던 점에서 더욱 그랬다. 그러나 북한군은 결국 다부동을 뚫지 못했고, 이어 병력을 추슬러 덤빈 영천과 포항 등에서의 전투마저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접어야 했다. 사진은 1950년 8월 중순의 한국군 1사단 사령부 작전상황실의 모습으로 보인다. 헬밋에 보안경을 두른 사람이 당시 1사단을 지원했던 미 고사포단의 윌리엄 헤닉 대령이다. 그는 이후 벌어진 평양 진격, 군우리 후퇴 작전 등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 낙동강 전선의 교착 상황과는 달리 맥아더 장군이 전격적으로 단행한 인천 상륙작전은 1950년 9월 15일 벌어져 대성공을 거둔다. 상륙 3일 째인 9월 18일 미군과 한국군이 섞여 추가로 인천에 도착하는 장면이다. 인천 상륙작전은 대성공이었으나 문제를 하나 안고 있었다. 남쪽에서 낙동강으로부터 전선을 밀어 올려 상륙한 부대의 후방을 연결하는 링크업(link-up) 작전이 따라야 했던 점이다. 그러나 낙동강의 북한군은 마지막 저항을 펼치며 전선을 북상을 허용하지 않고 있었다. 도쿄의 유엔군 총사령부에서는 빗발과도 같은 북진 지시가 닥치고 있었다.

 

> 1950년 8월 하순 무렵의 한국군 1사단 작전 회의 모습이다. 민가에 차려진 상황실에서 한국군이 미군들과 함께 작전을 숙의 중이다. 인천 상륙작전 뒤 급히 북상해야 하는 과제를 안은 아군의 초조한 모습이 읽힌다. 싸움의 틀을 얽는 전략, 전술 회의는 늘 부산하다. 그럼에도 목숨이 걸려 있는 싸움이라 긴장감은 아주 높다. 지휘부는 신속한 판단, 다양한 정보를 정밀하게 분석하는 능력, 과감한 실행력을 모두 갖춰야 한다. 그러나 전쟁은 늘 그렇듯, 변수의 연속이다. 그에 원활하게 대응하는 사람이 이긴다. 긴장감은 높아도 감정적 동요는 절대 금물이다. 끈질긴 투지 못지않게 어느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부동심(不動心)이 중요하다. 전쟁을 이끄는 지휘관이 반드시 갖춰야 할 덕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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