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16.05.30 14:35
남자와 여자의 고대 석상. 남녀는 여러 면에서 미묘한 차이를 드러낸다. 사람 사이의 간격을 인식하는 데에서도 그 점은 마찬가지다.

브라질의 한 호텔 로비 2층에서 유럽인들이 떨어져 죽는 일이 발생했다. 추락사고가 빈번하고 저주라는 루머가 돌자 결국 조사를 한다. 조사 결과 진범은 바로 사람 사이의 ‘거리’였다고 한다. 브라질인이 유지하는 간격과 유럽인들이 지니는 거리가 달랐다는 것이다.

2층 로비에서 대화를 할 때 브라질인은 상대에 가까이 다가가려 하고 유럽인은 간격을 두려고 물러선다. 난간 쪽에 있던 유럽인은 밀려나다 결국 난간에 밀려 떨어졌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남녀 간에도 거리감의 차이가 바로 통근 버스와 지하철의 비극이다.

사람의 몸은 육체이면서 동시에 자아가 거주하는 신성한 장소다. 사람이 그냥 육체뿐이라면 버스나 지하철에서 그냥 차곡차곡 쌓아서 실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인격이기에 콩나물시루 같은 지옥철 안에서조차 서로의 거리를 유지하려고 애쓴다.

자아를 포기한 육체가 가능한가? 군대에서 병력을 실어 나르는 트럭, 콩나물시루 같은 버스나 지하철에서는 인간이길 포기한 육체만을 빠듯하게 밀어 넣는다. 공간이 좁아지면 대부분의 남자는 순순히 인격을 포기한다. 그러나 여자는 그렇지 않다.

여자는 인격을 포기하지 않기에 침범을 허용하지 않는 자기만의 공간을 지키려 한다. 하지만 근처 남자들은 이미 인격적 자아를 포기한 지 오래다. 몸의 여기저기가 부닥치고 눌려도 이미 무감각한 육체다. 그저 아프지만 않다면 무신경이다.

여기서 인격이 남아 있다면 오히려 불순한 존재다. 그렇지만 만원 지하철에서는 어느 자세로 서있어도 상대에게 닿는다. 상대의 인격이 켜져 있다면 몸뚱이는 죄다. 잠재적 치한이나 가해자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인격은 반대로 남녀 간의 거리를 없애기도 한다. 남녀의 섹스는 몸의 거리가 없어지는 일이다. 섹스란 상대의 육체를 통해 쾌락을 얻는 일이다. 즉 상대의 몸을 섹스의 대상으로 삼아야 가능한 것이다. 그렇기에 섹스에서는 무엇보다 상대의 몸이 지닌 성적 매력을 중요시한다. 때문에 남자들은 여자들의 얼굴이나 몸매를 따지면서 점수 매기기에 열중인 것이다.

육체적 관찰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맘에 드는 이성에게 접근하려는 순간부터 상황은 급변한다. 모든 것은 인격적인 관계로 바뀌는 것이다. 남녀관계의 비결은 육체가 아니라 인격이라는 것이다. 섹스가 육체적인 관계라고 팔뚝을 까고 알통을 보여주거나 바지를 내리면 은팔찌 차기 딱 적당하다. 육체가 아닌 인격적인 애착이 더 중요하다. 즉 서로가 상대의 몸을 쾌락의 대상으로 여길수록 인격적 측면이 더 강조된다는 말이다. 서로의 육체적 거리를 허락하는 것은 인격이기 때문이다.

유럽인을 떨어뜨린 브라질인을 잠정적인 살인자로 볼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인격을 포기한 만원 버스나 지하철의 남자를 잠정적인 치한이라 매도할 수도 없다. 다만 서로가, 남녀가 지닌 인격적인 잣대 탓임을 아는 일이 중요하다.

복잡한 도시의 빼꼭한 버스 안, 방법이 없다고 손 놓고 있을 건 아니다. 거리를 만드는 것도 인격이고 거리를 좁히는 것도 인격이다. 거리를 지키기 불가능한 장소임에도 인격 스위치가 켜져 있다면 주변을 양해해야 할 것이다. 반대로 아무리 넋 나간 몸이라도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조심성이 필요하리라. 잠정적 살인자도 잠재적 가해자도 없다. 그저 인격이 답이다.

저작권자 © 뉴스웍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