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5.31 16:56
서양의 축제, 카니발의 한 장면이다. 흔히 사육제(謝肉祭)라고도 하는 카니발은 광야에서 벌인 예수의 단식을 기념하기 위해 일정 기간 동안 고기를 먹지 않는 관행에 앞서 육식 섭취 기간을 설정하면서 비롯했다. 동물을 희생으로 잡는 의식이 자연스레 따랐다.

불의의 테러를 당했던 주한 미국 대사의 한 마디, “같이 갑시다(Go together)”가 유명해진 적이 있다. 6.25전쟁을 겪으면서 다져진 한국군과 미군의 구호였다. 그 원조(元祖)에 해당하는 백선엽 예비역 대장은 필자가 요즘도 늘 만나는 분이다. 중앙일보 재직 때 그를 오래 인터뷰해 1년 2개월 동안 중앙일보에 ‘내가 겪은 6.25와 대한민국’이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다.

“같이 갑시다”는 말이 우리에게 새삼 일깨운 것은 미국과의 소중한 동맹(同盟) 관계다. 앞 글자 同(동)은 달리 풀 필요가 없을 정도다. 뒤의 盟(맹)이 이번 글의 주제인 셈인데, 우리에게는 맹서(盟誓 맹세)라는 단어로 쉽게 다가서는 글자다. 뭔가를 강하게 약속한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이 글자는 우선 해(日)와 달(月), 그 둘을 합쳐 ‘밝다’라는 뜻의 明(명)과 그릇을 가리키는 皿(명)의 합성이다. 고대 동양 예법(禮法)에서 나라와 나라, 집단과 집단, 또는 개인과 개인 사이의 약속 등을 행할 때 벌였던 행위의 하나다.

우선 맹서(盟誓)라고 적을 때의 두 글자는 조금 뉘앙스가 다르다고 한다. 앞의 盟(맹)은 피(血)가 등장한다. 뒤의 誓(서)는 그런 핏기가 보이지 않는다. 소나 양 등 가축을 잡아 희생(犧牲)으로 바치는 제의(祭儀)가 등장하면 盟(맹), 그저 글이나 말로써 약속을 이루면 誓(서)라는 설명이 있다.

盟(맹)은 그러면 어떤 형태로 벌어질까. 설명에 따르면 우선 구덩이를 파고, 희생(犧牲)으로 잡은 소나 양 등을 그 위에 올린 뒤 행사를 주관하는 이가 희생의 왼쪽 귀를 잘라 피를 낸다. 그 피를 그릇에 담은 뒤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이 고루 나눠 마시거나, 적어도 입에 발라야 한다.

이어 동물의 피를 사용해 서로가 약속하는 내용을 죽간(竹簡) 등에 적는다. 다시 그 내용을 서로 읽으면서 약속을 되새긴다. 변치 않는 해(日)와 달(月), 희생의 피를 담은 그릇(皿)이 등장한다. 영원한 대상 앞에서 맺는 진지한 약속이라는 의미를 지닌 셈이다.

원래는 통일체를 형성하지 못했던 옛 중국의 각 제후(諸侯) 사이에서 벌어졌던 약속들이다. 대개는 군사적이거나 정치적으로 이해가 맞아 떨어지는 나라들이 벌였던 일종의 결속을 위한 서약 의식이다. 모임을 주도한 쪽을 맹주(盟主), 그런 모임 자체를 회맹(會盟), 그로써 맺어지는 관계를 결맹(結盟)이라고 했다.

현대에 들어와 새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단어 중 가장 유명한 말이 바로 동맹(同盟)이겠다. 영어 단어 alliance의 번역이다. 그런 약속으로 한 데 모인 그룹을 연맹(聯盟), 우정보다 더 진한 피로써 맺어지는 집단을 혈맹(血盟)이라고 한다. 프랜차이즈 사업의 흐름에 참여하는 일을 가맹(加盟)이라고 해서, 요즘 창업자들이 많이 쓴다. 가맹점(加盟店)이 대표적인 경우다.

미국은 우리와는 그런 안보(安保)동맹으로 맺어졌다. 60여 년 전의 6.25전쟁으로 함께 피를 흘려 여지없는 혈맹(血盟)이면서, 튼튼한 관계를 다져 맹우(盟友)이며, ‘나라’의 의미를 강조해 맹방(盟邦)이라고도 부른다. 미국의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대통령에 오른다면 전통적인 한미 동맹이 시험대에 오를 전망이어서 그 귀추에 많은 관심이 몰리고 있다.

 

<한자 풀이>

盟 (맹세 맹): 맹세. 약속. 비슷한 사람끼리의 모임. 구역. 땅 이름. 맹세하다.

誓 (맹세할 서): 맹세하다, 서약하다. 경계하다. 고하다, 아뢰다. (마음에) 새기다. (벼슬을)받다. (군령을)내리다. 삼가다. 맹세코.

皿 (그릇 명): 그릇. 그릇 덮개. 접시.

 

<중국어&성어>

背盟败约(敗約) bèi méng bài yuē: 맹세를 배반하고, 약속을 허문다는 뜻의 성어다. 배맹(背盟)이라는 단어는 우리말에서도 쓴다. 맹세의 사항을 어긴다는 말이다.

城下之盟 chéng xià zhī méng: 적군이 성 앞에 당도해서 벌이는 맹약. 상대에게 굴복해서 맺는 항복의 약속. 결국 ‘항복’을 가리킨다. 자주 쓰는 성어다.

海誓山盟 hǎi shì shān méng: 바다와 산을 두고 벌이는 맹세다. 山盟海誓(산맹해서)라고도 쓴다. 변치 않는 바다와 산을 앞에 두고 맺는 서약. 보통은 남녀 사이의 애정에 관한 약속을 가리킬 때 쓴다.

执(執)牛耳 zhí niú ěr: 소(牛)의 귀(耳)를 잡다(執)는 뜻의 성어다. 본문에서 소개했듯이, 맹약을 위해 모이는 회맹(會盟)의 주도자, 즉 맹주(盟主)는 맹약의 의식을 치를 때 희생으로 잡은 동물의 귀를 자른다. 그 상황을 말하는 단어다. ‘모임의 주도자’ ‘일의 리더’ 등의 뜻으로 많이 사용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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