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6.01 15:57
고요한 호수 수면을 찍은 사진이다. 재주가 넘쳐도 마음이 혼탁하면 결국은 일을 그르치기 십상이다. 부정과 비리에 얽힌 우리사회의 많은 엘리트들 마음자리는 욕망의 바람으로 늘 물결이 일렁이는 호수 모습일 듯하다.

순우리말처럼 들리는데 어원으로 보면 한자(漢字)인 낱말이 제법 많다. 그 중에 ‘재주’도 한 번 의심을 품을 만한 단어다. 사전 설명에 따르면 우리가 자주 쓰는 재주는 한자 재조(才操)의 변형이다. 타고난 소질과 슬기라는 뜻이라고 한다.

재주 뛰어난 사람은 부지기수다. 배움의 능력이 탁월해 일찌감치 학교에서 높은 성적을 유지하다가 사회의 엘리트로 성장한 사람, 일정한 분야에서 기능을 발휘해 사회적으로 명망을 얻은 연예인이나 스포츠맨 등이 다 그에 든다.

재주에 비해 조금 더 우아한 표현이 재식(才識)이다. 재주와 함께 풍부한 지식이나 식견을 갖춘 경우다. 가리키는 대상은 역시 우리사회에서 상당한 지적 능력으로 높은 자리에까지 오른 엘리트다. 예능(藝能)이나 체능(體能) 등의 한 분야 특기만을 지닌 사람은 이에 들지 않는다.

재식이 뛰어난 사람을 일컫는 전고(典故)나 성어(成語)도 적지 않다. 그 중에 우리에게 잘 알려진 말 하나가 오거서(五車書)다. ‘수레 다섯 대에 실을 만한 책’이라는 뜻인데, 이는 장자(莊子)가 자신과 말싸움을 자주 벌였던 혜시(惠施)를 일컬으면서 나왔다.

장자와의 말싸움에서 결코 밀리지 않았던 혜시는 지식이 풍부했던 모양이다. 퍽 많은 독서량을 자랑했고, 그로 인해 여러 방술(方術)에 고루 밝았다고 한다. 그 정도의 재식을 쌓았기에 중국의 주요 사상가에 오른 장자와 말싸움을 치열하게 벌였을 것이다.

장자는 그런 혜시에게 “수레 다섯 대에 쌓을 만큼의 책을 읽었다”는 언급을 했고, 급기야 오거서(五車書)라는 전고를 낳았다. 이는 다시 학부오거(學富五車)라는 성어로 이어졌다. ‘배움이 수레 다섯 대 분량의 책’이라는 뜻이다.

중국 후난(湖南)에는 대유(大酉)와 소유(小酉)라는 산이 있다. 둘을 합쳐 부를 때 흔히 이유(二酉)라고 한다. 최초 통일왕조였던 진(秦)나라의 진시황이 주요 전적을 불태우는 분서갱유(焚書坑儒)를 벌일 때 일부 지식인들이 많은 책을 숨겼다는 곳이다.

나중에 이곳에 숨긴 숱한 책이 지식인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여기서 지식을 쌓은 사람도 많았다고 한다. 따라서 ‘이유(二酉)’는 풍부한 지식의 대명사로 변했다. 이어 나온 성어가 재관이유(才貫二酉), 서통이유(書通二酉)다. 재주나 독서량 등이 이유에 있는 풍부한 책을 관통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요즘에도 ‘학부오거(學富五車), 서통이유(書通二酉)’를 병렬하면 학식과 재주 등이 매우 뛰어난 사람을 가리킨다. 사회의 상층 엘리트라고 해도 무방한 대상에게 쓸 수 있는 말이다. 그러나 학식과 재주가 빼어나도 탐심(貪心)을 추스르지 못하면 곤란하다.

제 마음속의 욕망을 다루지 못해 비리와 부정을 저지르다가 추락하는 우리사회의 엘리트들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전직 검사와 판사가 요즘 화제지만, 부실 대기업의 그늘에 숨어 제 몫만 챙기며 한국 경제에 해악을 끼치는 산업계 엘리트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이런 유형의 재주 있는 엘리트 행렬이 계속 이어진다는 점이다.

결국은 재주와 함께 봐야 할 것이 그 사람의 덕성(德性)이다. 높은 인격 말이다. 그래서 재덕(才德)을 함께 갖춰야 한다. 그런 덕성은 마음 수양이 근간이다. 마음자리 제대로 거두지 못해 타락한 엘리트는 앞으로도 많이 출현할 듯하다. 뿌리부터 잘못 다져진 우리사회의 어두운 그늘, 그 일부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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