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6.05 10:00
입을 벌린 호랑이의 이빨이 날카롭게 드러났다. 이빨을 가리키는 한자 牙(아)는 공포와 위엄의 맥락을 키워 군대의 깃발, 또는 엄격한 공무집행 기관을 지칭하는 글자로 발전했다.

충무공(忠武公) 이순신 장군의 고향이라서 유명하고, 그를 기리는 현충사(顯忠祠)가 있어 외지인들의 발길도 잦은 곳이다. 원래의 이름에 관한 기록은 여러 가지가 있다. 백제 시기에는 탕정(湯井), 아술(牙述)이 있었다. 고려와 조선에 이르면서는 온수(溫水)와 온양(溫陽)이라는 이름이 돋보이면서 아산(牙山)도 등장한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아산이라는 곳은 옆 동네인 온양과 일찌감치 한데 어울리면서 지역 일대의 통칭으로 쓰였던 듯하다.

1914년 아산과 온양, 신창이 아산군으로 합쳐졌다가 1995년 아산군과 온양시가 아산시로 다시 합쳐져 지금의 행정구역으로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온양은 다음다음의 역이니 그때 가서 다시 설명키로 하고 우리는 우선 아산에 주목하자.

지명 유래에 관한 사전을 보면 이곳 아산에는 어금니처럼 생긴 바위가 있어 어금니를 가리키는 한자 牙(아)가 붙었다고 했다. 그 어금니바위는 애기 업은 바위의 형상, 혹은 부처님을 닮은 바위 등으로 보였는데, 결국 그런 바위 덕분에 그곳에다 산(山)이라는 글자를 덧붙여 지금의 지명에 이르지 않았느냐는 설명이다. 여기서는 우선 牙(아)에 주목하자.

한자에서 이 牙(아)는 어금니를 가리킨다. 구로역에서 설명한 내용이다. 보통 사람의 이빨을 치아(齒牙)라고 하는데, 둘을 구분하자면 앞의 齒(치)는 어금니 등 물건을 씹는 이른바 ‘저작(咀嚼)’의 용도를 지닌 이빨 외의 것들이다. 말하자면 앞니와 송곳니 등 물건을 씹는 게 아니라 물어 끊는 용도의 이빨을 가리킨다. 지금은 이 모두를 혼용하고 있는 형편이지만 원래 뜻은 다르다.

이 글자가 들어가 있는 단어 가운데 우리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이 상아(象牙)다. 코끼리의 앞으로 삐쭉 튀어나온 그 象牙(상아)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테다. 따라서 牙(아)라는 글자의 새김이 뚜렷해지지만 이 글자는 다소 다른 방향으로 발전한다. 우선 옛 중국에서는 아문(牙門)이라는 단어가 자주 쓰였다.

설명에 따르면 옛 병영에 장수가 거주하는 곳 앞에 象牙(상아)로 장식한 깃발을 걸었다고 하는데, 그 깃발이 내걸린 문을 牙門(아문)이라고 적었다는 것이다. 이는 나중에 관리가 거주하는 곳의 문을 일컫는 아문(衙門)으로 발전한다. 따라서 牙門(아문)과 衙門(아문)은 통용하는 단어다.

관공서가 있는 곳을 관아(官衙)라고 적는데, 이 역시 官牙(관아)라고 적기도 한다. 관아의 문에 걸린 기를 아기(牙旗)라고 적고, 그 앞을 지키는 병사를 아병(牙兵) 또는 아군(牙軍)이라고 적는다. 이들은 이를 테면 권력자를 측근에서 보호하는 친위(親衛)의 병력이다.

관공서에서 책임자가 거주하면서 공무를 보는 곳은 아당(牙堂)이다. 아성(牙城)이라는 말도 그와 관련이 있다. ‘~의 아성을 지키다’는 식으로 자주 쓰는 단어 말이다. 牙城(아성)은 부대를 이끄는 장수가 거주하는 곳을 가리킨다. 전쟁을 이끄는 최고 지휘부가 있으니 이곳은 결코 내줄 수 없는 곳에 해당한다.

이 牙(아)에는 ‘서로 바꾸다’라는 의미의 ‘호(互)’라는 글자의 새김도 들어 있다. 아인(牙人)으로 적으면 시장에서 물건을 중개하는 거간꾼, 커미셔너의 뜻이다. 같은 뜻의 단어가 아쾌(牙儈)다. 거간꾼을 일컫는 儈(쾌)라는 글자를 직접 붙였다. 이들은 또 아상(牙商), 아행(牙行)으로도 적었다.

牙慧(아혜)라는 말이 있다. 이빨(牙)에서 나온 지혜(慧)라고 풀이할 수 있는 단어다. ‘남의 입에서 흘러나온 지혜 또는 아이디어’는 결국 이미 남이 뱉은 말을 가리킨다. 그런 남의 말을 전문적으로 베끼거나 옮겨와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일을 즐기는 사람은 요즘의 ‘논문 표절’ ‘아이디어 도용’의 행위자다.

이런 사람이 일찌감치 있었던 모양이다. 그를 일컫는 성어가 拾人牙慧(습인아혜)다. 남(人)이 내놓은 말이나 문장(牙慧)을 줍다(拾) 식의 엮음이다. 아음(牙音)이라는 단어도 있다. 입술이나 혀를 통해 뱉는 말이 아닌, 어금니 쪽 목구멍 깊은 곳에서 나오는 목소리다. ‘말 속에 숨은 다른 말’, 즉 언외(言外)의 메시지다.

아산은 한반도가 낳은 최고의 명장 이순신 장군의 고향이다. 그는 비록 서울 충무로 인근의 건천(乾川) 거리에서 출생했지만 그 조상이 대대로 뿌리를 내린 곳은 아산이다. 한반도는 결정적인 위기를 맞았을 때 이순신 장군 같은 구국의 명장이 등장한다. 평시엔 그런 출중한 인물이 제대로 나타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이 참 궁금할 뿐이다.

뭔가 곡절이 있을 법하다. 쉽게 편을 가른 채 마구 저지르고 보는 모진 싸움의 기질이 그런 인문적 풍경을 만들어내는 문화적 바탕일 수도 있다. 그러나 특정할 수도 없다. 평시에도 출중한 인재를 살펴 그를 등용하고 격려하는 그런 풍토를 만드는 일은 우리에게 불가능할까. 아산은 그런 메시지를 던지는 곳이다. 말 밖에 다른 뜻이 있는 언외지의(言外之意), 음률 밖에 다른 여운이 남는 현외지음(弦外之音)이 감도는 곳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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