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6.07 16:04
중국 서예의 최고봉을 이룬 왕희지(王羲之)의 '난정집서' 일부다. 동양에서는 글씨 쓰기에서부터 아래서 위로 써내림을 원칙으로 했다. 옆으로 새는 일, 그를 가리키는 橫(횡)은 그래서 원칙으로부터의 이탈을 뜻하는 글자로 자리를 잡았다.

세로와 가로, 한자로는 縱橫(종횡)이다. 우리말 쓰임새에서는 ‘가로세로’가 보통이다. 세로 앞에 가로가 먼저 등장한다. 그러나 한자의 세계에서는 세로를 앞세운다. 그러면서 가로는 자꾸 뒷전으로 밀린다. 급기야는 아주 부정적인 새김까지 얻는다.

씨줄과 날줄의 관계도 그렇다. 우리말에서는 보통 씨줄이 먼저, 날줄이 나중이다. 그러나 한자로 적는 경우라면 그 반대다. 옷감을 짤 때 가로로 지나는 날줄, 세로의 씨줄 순서다. 그래서 經緯(경위)라고 적는다. 한 번 따져볼 대목이다.

곡절이 반드시 있었을 법하다. 그러나 딱히 떨어지는 설명은 없다. 추측컨대, 위와 아래의 상하(上下) 관계를 따지는 데 골몰했던 옛 한자 사회의 습속 때문이라고 보인다. 적장자(嫡長子) 중심으로 혈연의 위아래를 따졌던 옛 종법(宗法)의 질서도 그에 한 몫 했으리라.

그러니 위아래를 정확하게 가르는 세로가 통념상 더 맞았던 듯하다. 아래위로 질서가 꽉 잡혔으니 말이다. 질서 없이 길게 서 있다가 옆으로 새는 것에는 질색했을 법하다. 게다가 위에서 아래로 써 내려가는 서법(書法) 체계도 한몫했을 성싶다. 그래서 ‘가로 횡(橫)’이라는 글자는 결국 별로 좋지 않은 의미를 얻었으리라.

이 글자는 본래 난간이나 문에 들어가는 장치라는 뜻이다. 그러나 고약한 뜻의 단어를 많이 낳았다. 남에게 무례하게 굴거나 폭압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횡포(橫暴)라고 한다. 자신이 지켜야 할 자리를 넘어 다른 곳으로 튄다는 의미에서 방종 또는 방자함의 뜻도 붙었다.

말과 행위가 독단적인 사람에게 전횡(專橫)이라는 단어가 따르고, 전염병이나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이 휩쓰는 것을 횡행(橫行)이라 지칭한다. 아래위의 엄격한 위계(位階) 질서를 중시하면서 옆으로 걷는 게의 걸음마저 못마땅하게 여긴 동양 사회의 분위기이고 보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 글자가 돈과 관련해 쓰이는 경우가 횡재(橫財)다. 사전적인 뜻에서는 ‘갑자기 닥친 재물’정도로 풀이한다. 중국에서는 “밤에 풀 뜯지 못한 말은 살이 찔 수 없고, 횡재하지 못한 사람은 부자가 될 수 없다(馬無夜草不肥, 人無橫財不富)”라는 속담이 널리 쓰인다. 한국인들도 점쟁이가 “당신 횡재수가 들었어”라는 말을 하면 입이 귀밑까지 째진다.

그러나 횡재는 느닷없이 얻은 재물이라는 뜻 외에도 불법적이거나 정상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손에 쥔 재화라는 뜻을 지닌다. 정부나 회사의 돈을 슬쩍 제 주머니에 집어넣는 행위를 횡령(橫領)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그와 비슷한 용례다. 아무튼 정해진 길을 가지 않고 불·탈법을 저지르는 사람들에게 이 글자는 매우 유용하게 쓰인다.

횡재(橫財)를 꿈꾸다가 제가 쌓았던 명예와 자리를 잃을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 요즘 신문지상에 오르내린다. 한국 사회권력의 강력한 축을 형성하고 있는 검찰의 전현직 고위 인사들이다. 법의 엄정한 집행을 책임졌던 사람들이어서 배심감은 더 깊다.

횡재(橫財)는 횡재(橫災)일 수도 있는 법이다. 갑자기, 느닷없이 닥치는 재앙 말이다. 그렇게 별안간 닥치는 액운(厄運)은 횡액(橫厄)이다. 가로와 세로에 편견을 달 필요는 없다. 그러나 정상적인 궤도에서 벗어나는 행위는 스스로 경계하자. 橫(횡)을 매단 불길함이 언제 찾아들지 모르기 때문이다.

 

<한자 풀이>

橫 (가로 횡, 빛 광): 가로. 옆, 곁. 뜻밖의, 갑작스러운. 자유자재로. 연횡책. 학교. 가로로 놓다, 옆으로 놓다. 섞이다, 뒤엉키다. 가로지르다. 비정상적이다.

縱 (세로 종, 바쁠 총): 세로. 발자취. 비록. 설령, ~일지라도. 놓다, 쏘다. 늘어지다. 놓아주다. 느슨하게 하다. 내버려 두다, 멋대로 하다. 방종하다, 방임하다.

經 (지날 경, 글 경): 지나다. 목매다. 다스리다. 글. 경서. 날. 날실. 불경. 길. 법. 도리. 지경(地境: 땅의 가장자리). 경계.

緯 (씨 위): 씨, 씨줄. 예언서. 현, 악기의 줄. 가로. 짜다, 만들다. 묶다. 구상하다. 다스리다, 주관하다.

厄 (액 액): 액, 불행한 일. 재앙. 멍에. 해치다. 핍박하다. 고생하다.

 

<중국어&성어>

横财(財) hèng cái: 횡재. 橫은 ‘가로’의 뜻일 때 2성, ‘느닷없이’ ‘갑자기’ ‘사납고 방종하다’의 뜻일 때는 4성이다.

馬無夜草不肥, 人無橫財不富 mǎ wú yè cǎo bù féi, rén wú hèng cái bú fù: 뜻은 본문 참조. 자주 쓰는 말이다.

合纵(縱)连(連)横 hé zòng lián héng: 중국 전국시대 합종가들이 내놨던 계책. 작은 개체들이 서로 모여 큰 개체에 대항하는 비즈니스 상의 방략으로 자주 쓰는 말이다.

저작권자 © 뉴스웍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