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6.10 15:13

(3) 북진의 대열-1

[뉴스웍스=유광종기자]>1950년 9월 15일 전격적인 인천상륙작전이 벌어진 뒤 뭍에 올라 북한군의 파괴된 전차를 살펴보는 도쿄 유엔군 총사령관 맥아더 장군의 모습이다. 북한군의 저항은 만만치 않았으나 압도적인 아군의 공격을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다. 맥아더는 이 때 지상군 1개 사단과 해병 1개 사단으로 하여금 부산을 경유해 원산으로 다시 상륙토록 지시했다. 나머지 병력은 서울을 향해 진군하면서 북진의 거대한 행렬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 서울을 향해 진격하는 미 해병대의 사진이다. 서울에 근접한 상태에서 촬영한 것으로 보인다. 서울 탈환을 위해 움직이는 아군의 대열 앞에서 북한군의 저항은 변변치 않았다. 북한군은 이 무렵에 이미 와해의 수준에 접어들었다. 조직적인 저항은 거의 없었고, 흩어진 장병들이 개별적으로 북상하는 정도였다. 산발적으로 저항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서울로 향하는 미 해병대에게는 그럴 듯한 장애로 작용하지 못했다.

 

> 낙동강 전선에서 북진 길에 나선 한국군의 모습이다. 1950년 9월 말 정도로 추정한다. 국군들의 표정이 밝다. 이 즈음에는 북한군의 붕괴 속도가 빨라 압록강까지 줄곧 내달아 한반도 통일까지 기대해 볼 만한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서울 수복에 이어 38선을 통과해 북진을 이어가는 일을 두고서는 신중론도 나왔다. 확전의 가능성 때문이다. 미군 수뇌부와 그를 지휘하는 미 행정부의 염려가 컸다. 그에 비해 이승만 대통령을 비롯한 한국 지도부는 급속한 북진으로 통일의 대망을 이루려는 심리적 기대가 커진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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