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6.12 10:30
지구의 열기에 의해 덥혀져 뭍 밖으로 솟아나오는 물이 온천이다. 1호선 전철역 온양은 예로부터 온천으로 유명해져 지금의 이름을 얻은 곳이다.

이곳은 우선 한반도에서 유서가 가장 깊은 온천이라고 해야 옳겠다. 앞서 소개한 아산의 명칭 유래에서도 언급했듯이, 이곳 온양 일대는 백제 때부터 그런 온천과 관련 있는 지명을 얻었다. 백제 때 이름이 바로 탕정(湯井)이다. 湯(탕)은 뜨거운 물을 가리킨다. 井(정)은 그런 물이 솟아나는 우물이다. 그때 우물을 만들었는지 모르겠으나 결국 물이 솟는 곳은 샘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뜨겁거나 따뜻한 온수(溫水)가 솟는 샘(泉)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온천(溫泉)이다. 아울러 한겨울에도 따뜻함을 잃지 않는 그런 온천의 물로 늘 따사로운 환경을 유지하는 따뜻할 溫(온)에 역시 햇볕 등으로 인해 따뜻해짐을 뜻하는 陽(양)이라는 글자가 합쳐져 지금의 溫陽(온양)으로 자리 잡았지 않았을까 추측할 수 있다.

이름과 관련해서는 湯井(탕정)과 溫陽(온양), 온정(溫井)이라는 단어가 서로 겹치며 등장하다가 결국은 溫陽(온양)으로 합쳐졌으며, 다시 아산시와의 통합을 거쳐 지금은 그 시의 권역 속에 동(洞)으로 자리 잡았다. 이곳의 온천은 한반도에서 유래가 가장 깊은 곳이어서 꽤나 유명했다.

우선 한글을 창제한 위업의 군주 조선 세종(世宗)이 눈병인 안질(眼疾)을 치료하기 위해 이곳에 한동안 머물렀다는 기록이 있고, 그의 아들 세조(世祖)도 피부병인 종기를 치료하기 위해 이곳을 다녀갔다. 임금의 행렬이 자주 닿으면서 이곳이 과거에는 퍽 이름을 떨친 곳이었으리라는 추정을 할 수 있다.

우리는 온수(溫水)역에서 이미 따뜻하다는 의미의 溫(온)이라는 글자를 풀었다. 그러니 이번 溫陽(온양)에서는 뒤의 글자 陽(양)에 주목해 보도록 하자. 대표적인 새김은 ‘밝음’이다. 따라서 ‘어둠’을 지칭하는 한자 음(陰)과 늘 짝을 이루며 나타나기 십상이다. 아울러 태양을 지칭한다. 이 경우 상대적인 뜻인 陰(음)은 달을 가리킨다.

따뜻함을 나타내는 경우도 있다. 또 사물이나 상황 등에서 두드러져 튀어나온 것을 지칭하는데, 그 반대로 움푹 들어간 곳이나 파인 곳 등은 역시 陰(음)으로 표현한다. 또 사람이 살아가는 곳을 이르기도 한다. 지리(地理)의 개념으로는 ‘서울역’ 편에서 이미 적었듯이 산의 남쪽, 강의 북쪽을 가리키기도 한다. 잘 알려진 한자가 대개 그렇듯이 陽(양)이라는 글자의 의미 또한 갈래가 많은 편이다.

그러나 우선은 밝음, 태양, 따뜻함, 두드러짐 등이 주를 이룬다. 양지(陽地)는 볕이 드는 밝은 곳, 그 반대는 그늘인 음지(陰地)다. 직접 음양(陰陽)이라고 적어 어둠과 밝음, 여성과 남성 등을 상징한다. 이 陰陽(음양)은 동양 사회가 오래전부터 숙성시킨 세계와 우주를 바라보는 관점의 하나다.

양명(陽明)이라고 적으면 밝음, 나아가 해를 가리킨다. 그 해는 직접 태양(太陽)이라고 적기도 한다. 양광(陽光)으로 적을 경우 햇빛을 지칭한다. 황혼(黃昏) 무렵에 서산으로 지는 해를 우리는 석양(夕陽)이라고 적는다. 이 夕陽(석양)은 지리적 개념에서 때로 산의 서쪽을 가리키며, 그 반대인 산의 동쪽은 조양(朝陽)이라고 적었다.

바깥으로 두드러지게 글자 등을 새긴 게 양각(陽刻)이고, 움푹 팬 형태로 새긴 것은 음각(陰刻)이라고 적는다. 앞의 陽刻(양각)은 양문(陽文)으로도 적을 수 있다. 뒤의 陰刻(음각)도 그에 따라 음문(陰文)으로 적는다. 불세출의 쿵후 스타 ‘브루스 리’처럼 강인한 남성미를 풍기는 사람에게는 ‘양강(陽剛)’의 아름다움이 있다고 하며, 그 반대인 부드러운 여성의 아름다움은 ‘음유(陰柔)’라는 단어로 적을 수 있다.

양춘(陽春)은 볕이 따뜻한 봄이다. 일반적으로 화창한 봄 날씨를 이를 때 많이 등장하는 단어다. 따뜻한 봄의 햇빛은 늘 그리운 존재다. 그 봄날의 햇빛은 춘휘(春暉)라고도 적는다. 봄(春)의 햇빛(暉)이라는 뜻이다. 그 따사롭고 정겹기가 ‘어머니’ 같기도 해서 이 말은 결국 ‘어머니의 지극한 사랑’이라는 뜻도 얻었다. 당나라 시인 맹교(孟郊)의 시에 등장한다. 평이한 구성에다 깊은 정서가 담겨 있어 여기에 소개한다.

 

어머니 손에 들려 있는 실 (慈母手中線 자모수중선)

길 떠날 아들 몸에 걸친 옷 (遊子身上衣 유자신상의)

헤어질 때 촘촘히 꿰매는 (臨行密密縫 임행밀밀봉)

그 뜻은 어서 돌아오라는 당부 (意恐遲遲歸 의공지지귀)

누가 풀 한 쪽 같은 마음으로 (誰言寸草心 수언촌초심)

봄 햇빛 은혜를 갚는다고 말했나 (報得三春暉 보득삼춘휘)

 

시의 제목은 ‘유자음(遊子吟)’이다. 풀자면 ‘길 떠나는 아들(遊子)의 시(吟)’다. 문을 나서는 아들의 옷을 촘촘히 꿰매는 어머니, 그 행동에는 ‘녀석아, 제발 무사히 얼른 돌아오라’는 당부가 들어있다. ‘풀 한 쪽 마음’은 바다와 같은 어머니의 사랑과는 비교할 수 없는 자식의 마음이다. 그 조그마함으로 어찌 석 달 봄(三春) 햇빛(暉)과 같은 어머님의 고마움을 갚을 수 있다(報得)고 하느냐는 물음이다.

春暉(춘휘), 또는 삼춘휘(三春暉)가 ‘어머니의 지극한 사랑’이라는 뜻으로 자리를 잡게 만든 문학적 성취다. 따사로움의 깊이는 어머니 사랑만 한 게 없을 테다. 우리는 그런 고마움으로 세상에 태어났지만, 때로 그를 잊고는 한다. 溫陽(온양)에서 우리는 온천만을 떠올릴 필요가 없다. 그 글자 자체가 따뜻함과 밝음이다. 그 역을 지나면서 아직 곁에 있는 어머니, 아니면 이미 헤어졌지만 여전히 그리운 어머니의 사랑을 떠올려 보자. 언제나 울림이 큰 단어다. 어머니….

저작권자 © 뉴스웍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