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최재필기자
  • 입력 2015.11.01 20:01

피해자 100여 명에 피해금액 수백억대…한자신 "법적 문제 없다"

"분양대금은 다 냈는데, 집이 없어졌어요."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 '정자역 엠코헤리츠'의 오피스텔과 상가를 분양 받은 A(46)씨의 말이다. A씨는 "분양업무를 담당한 시행사에 돈을 완납하고 완납증명서까지 받았는데 소유권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다"며 "전 재산을 투자한 돈을 다 날리게 됐다"고 울먹였다. 어찌된 일일까?

A씨가 분양을 받은 '정자역 엠코헤리츠'는 지하 4층 지상 12~14층 8개동 규모로, 총 1230여 세대로 구성된다. 2012년 7월 분양 당시 '분당 최초의 스트리트형' 오피스텔로 큰 관심을 끌면서 청약 경쟁률이 최고 140대 1(전용면적 48.46㎡)을 기록하기도 했다. 입주는 2014년 10월부터 시작했다.

이 사업에는 서현디엔씨㈜가 시행을, 현대엔지니어링(현대엠코)가 시공을, 한국자산신탁(이하 한자신)이 신탁사로 참여했다. 서현디엔씨는 국내 최대 노인전문병원인 보바스기념병원을 운영중인 늘푸른의료재단의 박모(51) 이사장이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한자신은 부동산 신탁업계 1위로 2010년 3월 민영화돼 ㈜엠디엠이 35.96%,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25.2%, 대한주택보증㈜ 외 16개 기관이 24.95%, 문주현이 13.89%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엠디엠의 최대 주주가 문주현 회장이니 한국자산신탁의 실질적 소유주는 문 회장으로 볼 수 있다.

정자역 엠코헤리츠 조감도.

사건의 발단은 시행사인 서현디엔씨로부터 특별분양 조건으로 선납할인(30%가량)을 받고 분양대금을 납부한 일부 세대가 신탁사인 한자신과 소유권 등기이전을 하는 과정에서 시작됐다.

◆피해자 100여 명에 피해금액 200억원대 추산

특별(할인)분양 세대는 오피스텔과 상가를 포함해 총 120여 세대로 알려졌다. 피해자는 100여 명에 달하고, 피해금액은 200억원에 이른다는 게 피해자 측의 추산이다.

A씨 등 피해자에 따르면 서현디엔씨는 피해자 100여 명을 상대로 특별분양을 해준다며 30%가량의 분양대금을 할인해주는 조건으로 분양대금을 자신들에게 입금해 줄 것을 요구했다. 피해자들은 서현디엔씨의 요구에 따라 시행사 계좌로 돈을 입금했으며, 소유권 등기이전 전까지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문제는 2014년 10월 준공이 된 후 그해 12월 29일부터 이듬해 3월 30일 사이 소유권 등기이전을 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한자신이 소유권 등기이전을 거부한 것이다. 신탁사 지정계좌(분양대금 수납계좌)로 분양대금이 입금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한자신 관계자는 "현행법상 신탁사의 지정계좌로 분양대금을 입금해야 소유권 등기이전이 가능하다"며 "소유권 등기이전이 거부된 세대는 시행사 계좌로 입금한 경우이거나 잔금이 입금되지 않은 세대"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 "시행사는 분양대금을 받을 법적 지위에 있지 않다"며 "(우리는) 분양대금이 (시행사에) 입금된 것을 몰랐으며 시행사 독단으로 분양대금을 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시행사인 서현디엔씨는 분양대금을 중간에서 가로챈 것이며, 이 때문에 시행사를 상대로 법적 소송을 준비중"이라고 덧붙였다.

◆한자신 "시행사가 독단으로 분양대금 받은 것"

하지만 피해자 측 법률 대리인의 설명은 다르다. 시행사(서현디엔씨)가 신탁사(한자신)의 위탁을 받아 분양 업무를 총괄했으며, 분양시스템 상 분양대금이 시행사 계좌로 입금되는 것을 모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사건을 수임한 이범래 변호사는 "이 사업 신탁계약서의 특약사항을 보면 분양과 관련된 제반업무를 시행사가 위탁 지정 받을 수 있게 돼 있다"며 "특히 신탁사는 분양대금 등 자금에 대한 관리를 해야 하는 데 이를 소홀히 한 것은 신탁사의 책임"이라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이어 "특별분양을 받은 사람들은 시행사의 요청대로 분양대금의 70~80%를 시행사에 납부했다. 그런데 분양시스템 상 시행사와 시공사, 신탁사는 분양대금 입금이나 운영자금 출금 등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며 "시행사에 분양대금이 입금된 사실을 몰랐다는 것은 말이 안되며, 만약 인지를 못했다면 신탁사가 자금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피해자 측 법률 대리인 "시행사·신탁사 공모한 신종 사기"

이 변호사는 그러면서 이 사건은 시행사와 신탁사가 공모한 신종 사기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최근 한자신 측의 전 직원으로부터 시행사가 분양대금을 받고 있었고 이를 유용하는 데 한자신 측이 인지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이는 사기 행각을 묵인하거나 방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피해자 측에서 제시한 신탁계약서 등 근거자료.

이 변호사는 서현디엔씨와 한자신의 공모 의혹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대위변제' 사례를 들었다. 그는 "시공사인 현대엠코에서 공사대금이 정산되지 않자 소송을 제기했는데 한자신이 자신들의 돈으로 이를 갚았다"며 "시행사가 줄 돈을 신탁사가 대신 준다는 게 상식은 아니지 않나. 한자신 소유주와 시행사 대표 박모씨가 같은 회사의 주주로 활동하는 등 막역한 사이라는 것도 의혹을 부풀리고 있다"고 말했다.

◆소유권 등기이전 3월 30일 이전엔 'OK'…이후엔 'NO'

실제 납득이 가지 않는 한자신의 행태는 또 있다. 소유권 등기이전을 하는 과정에서 피해자 중 대다수는 소유권 등기이전을 해줬는데, 일부는 소유권 등기이전을 해주지 않는 '오락가락' 행보를 보였다는 점이다.

특히 한자신은 소유권 등기이전을 해주지 않은 피해자 10여 명의 오피스텔과 상가를 제3자에게 매각하기도 했다. 10여 명은 수십억원의 투자금을 고스란히 날리게 된 셈이다.

피해자 C씨의 설명이다. "특별분양을 받은 세대 중 3월 30일 이전에 소유권 등기이전을 신청한 경우 소유권 등기이전을 받았다. 그런데 3월 30일 이후에 (소유권 등기이전) 신청을 한 세대에 대해서는 소유권 등기이전을 거부했다. 같은 조건에서 분양을 받고 대금을 납부했는데 어느 쪽은 소유권 등기이전을 하고 어느 쪽은 (소유권 등기이전을) 못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한자신 측은 "직원의 업무상 실수"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피해자 측은 "실수가 하루 이틀 정도이지, 어떻게 수개월간 업무를 실수할 수 있냐"며 "말도 안되는 변명을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정계좌 납부했는데 제3자에게 매각되기도

신탁사의 지정계좌로 돈을 납부했지만 제3자에게 매각된 경우도 있다. A씨의 경우가 그렇다. A씨는 "특별분양을 받으면서 분양대금의 70~80%를 시행사 계좌에 줬고, 시행사는 계약금을 신탁사 계좌로 입금했다"며 "잔금은 신탁사 계좌로 입금하고 완납증명서까지 받았는 데 제3자에게 매각하는 경우가 어디 있냐"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자신은 "A씨의 경우 잔금 납부가 되지 않아 중도금은 공탁을 하고 제3자 매각을 했다"며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이범래 변호사는 "신탁업자가 참여하는 공사에서 신탁사는 공사 전 과정에서 자금 및 공정 관리를 맡아 시행사가 분양대금을 공사 이외의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는 등의 문제를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며 "한자신은 이런 책무를 다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이어 "시행사가 분양대금을 유용하는 데 신탁사가 몰랐다는 것은 말이 안되며, 묵인 혹은 방조의 책임이 있다"며 "시행사 역시 분양대금을 자사로 받았다면 분양사기가 성립되고 '업무상 횡령'까지 될 수 있어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강조했다.

<뉴스웍스>는 이번 사건과 관련, 시행사인 서현디엔씨 측의 입장을 듣기 위해 대표 박모씨에게 수차례 연락을 했으나 아무런 답변을 듣지 못했다.

한편 피해자 측은 지난 27일 한국자산신탁 대표이사 김모씨와 서현디엔씨 대표 박모씨 등 10여 명에 대해 사기 등의 이유로 검찰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엠코헤리츠 #한국자산신탁 #정자역

저작권자 © 뉴스웍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