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6.13 16:28
봄을 맞아 나들이에 나선 사람들의 모습이다. 아무것도 지니지 않은 채 그냥 걷는 일이 도보(徒步)다. 원래는 탈 것에 타지 않은 채 길을 걷는 사람들, 평민(平民)을 가리키는 단어였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상태를 가리킬 때 쓰는 글자가 徒(도)다. 우선적으로는 ‘무리’ ‘떼’ 등을 가리키지만 맨몸, 또는 ‘헛되이’라는 새김도 얻은 글자다. 따라서 아무것도 없이 그냥 걷는(步) 행위가 도보(徒步)다. 승용차 등 탈 것을 동원하지 않은 채 길을 걷는 일이다.

도수(徒手)라고 적으면 기계나 기기 등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도수체조’라고 하면 몸만을 움직여서 하는 체조다. 그런 점 고려하면 도보(徒步)라는 단어의 뜻은 한결 가깝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단어의 원래 출발점은 ‘평민’이다.

말이나 수레 등에 올라타 길을 나서는 사람이 아닌, 그저 다리의 힘으로 길을 가는 사람이다. 신분을 나타내는 단어로 쓰인 흔적이 뚜렷하다. 사회적 지위가 없는 평범한 일반인을 가리키는 단어였던 셈이다. 그러나 이런 새김은 단어의 의미에서 탈락한 지 오래다.

이제 완연한 봄이다. 문밖으로 나서 길을 걸으며 봄의 정취를 만끽할 때다. 추억이 깃든 학창시절의 소풍(消風)은 즐거운 일이지만, 이 한자 단어의 구성은 뜻이 명쾌하지 않다. 일본식 조어에 해당하는데, 어떤 배경으로 두 글자를 모았는지 분명치 않다.

그보다는 원족(遠足)이 더 와 닿는다. 멀리(遠) 거닐다(足)의 구성이기 때문이다. 발을 뜻하는 足(족)은 여기서 동사로 쓰였다. 일정하게 오가는 터전을 떠나 먼 곳으로 훌쩍 떠나는 일, 소풍에 앞서 그런 행위를 일컫는 단어로 먼저 쓰였다.

유행(遊行)도 마찬가지다. 이곳저곳을 거니는 일이다. 발섭(跋涉)이라는 단어도 눈여겨 볼만하다. 산 넘는 일을 跋(발)로 적고, 물 건너는 행위를 涉(섭)으로 적었다. 보통은 험한 산지와 궂은 물길을 지나는 힘든 여행길을 적을 때 등장한다.

경기도 북부에 유명한 소요산(逍遙山)이 있다. 소요(逍遙)라는 단어가 눈길을 끈다. 逍(소)라는 글자는 辶(착)에 肖(초)라는 글자가 붙었다. 앞의 辶(착)은 걷거나 뛰는 행위에 붙는 부수(部首)다. 두 글자가 합쳐지면 걷거나 뛰어 멀리 가물가물 사라지는(肖) 그 무엇을 가리킨다.

그래서 逍遙(소요)라고 하면 먼 곳으로 나아가면서 모습이 점차 작아지는 현상을 가리킨다. 장자(莊子)가 본격적으로 이 말을 사용하면서 도가(道家) 철학의 중요 개념으로 자리를 잡았다. 어디, 또는 무언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경계를 넘어서는 일이다.

밖으로 거니는 행위에 관해서는 맹자(孟子)도 한 마디 했다. 유련(流連)이라는 단어가 그로부터 나왔다. 그는 물길의 흐름을 좇아 내려가는 일이 流(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는 행위가 連(련)이라고 했다. 일종의 물놀이인 셈이다.

그러나 흐름을 좇거나 거스르며 노닐다가도 돌아감을 잊으면 곤란하다. 맹자는 노는 행위에 골몰해 제 돌아갈 자리를 잊는 경우가 없어야 한다고 했다. 流連忘返(유련망반)이라는 성어가 나온 배경이다. 流連(유련)은 留連, 또는 留戀으로도 적는다.

물이 흔들리는 모습을 적을 때는 蕩(탕) 또는 盪(탕)이 쓰인다. 지나치게 휘돌아다니며 제 돌아갈 곳을 생각지 않는 일이 곧 방탕(放蕩)이다. 그렇게 노닐기만 하면 그 사람에게는 탕아(蕩兒)라는 단어가 따르기 마련이다.

제 마음이 머물 옳고 바른 곳을 잃은 채 이런저런 부정과 비리로 먼 길에서 헤매는 사람이 우리 사회에 너무 많다. 본업에서 이탈한 탈세의 기업, 끊이지 않는 부정과 횡령의 공직자들을 보면서 든 생각이다. 떠나되 돌아옴을 잊지 말자. 나들이에 나설 때도 항상 제가 돌아와 앉을 자리를 생각하자.

 

<한자 풀이>

徒 (무리 도): 무리, 동아리. 동류(同類). 제자, 문하생. 종, 하인. 일꾼, 인부. 보졸(步卒), 보병. 맨손, 맨발. 죄수, 갇힌 사람.

跋 (밟을 발): 밟다, 짓밟다. 넘어가다. 난폭하다, 사납다. 되돌리다. 촛불이 다 타다. 밑동, 타다 남은 부분. 발문(跋文).

涉 (건널 섭, 피 흐르는 모양 첩): 건너다. 지나다, 거치다. 겪다. 거닐다. 돌아다니다. 떠나다. 이르다, 미치다. 간섭하다, 관계하다. 섭렵하다. 넓다. 나루.

流 (흐를 류, 흐를 유): 흐르다. 번져 퍼지다. 전하다. 방랑하다. 떠돌다. 흐르게 하다. 흘리다. 내치다. 거침없다. 귀양 보내다. 흐름. 사회 계층. 갈래. 분파.

蕩 (방탕할 탕): 방탕하다. 방종하다. 흔들다. 움직이다. 방자하다. 광대하다, 넓고 크다. 헌걸차다. 용서하다.

 

<중국어&성어>

跋山涉水 bá shān shè shuǐ: 산 넘고, 물 건너다. 험한 여정을 일컫는 성어다. 자주 쓴다.

远足 yuǎn zú: 멀리 나가 거니는 일. 예전에는 우리말 쓰임에서도 ‘소풍’의 뜻으로 사용했던 단어다.

流连(連)忘返 혹은 留连往返 liú lián wàng fǎn: 본문 뜻풀이 참조.

逍遥 xiāo yáo: 근심과 걱정 없이 거니는 행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행동함.

逍遥(遙)法外 xiāo yáo fǎ wài: 법의 테두리 밖에서 거닒. 불법을 저지르는 사람들을 형용할 때 자주 쓰는 성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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