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6.15 16:02
당나라 시인 백거이를 비롯한 아홉 노인이 함께 말년을 보냈다는 데서 나온 구로회(九老會) 그림 중 하나다. 지하철 1호선 구로역의 이름이 예서 비롯했다. 그의 자는 낙천(樂天)으로, 한국 롯데그룹의 한자 명칭과 같다.

제가 처한 경우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태도를 일컬을 때 낙천(樂天)이라는 말을 쓴다. 좋거나 나쁘거나, 기쁘거나 슬프거나 간여치 않는다. 있는 상황 그대로를 받아들이면서 자신을 가다듬는 사람의 자세를 가리킨다. 그런 사람들을 “낙천적(樂天的)”이라고 표현한다.

당나라 시인으로서 이백(李白)과 두보(杜甫)에 견줄 수 있는 사람이 백거이(白居易)다. 그의 시문은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그가 노년에 친구 여덟과 함께 동호회 비슷한 모임을 만들어 바람직한 말년 생활을 보냈다고 해서 붙인 구로회(九老會)라는 이름은 한국의 지하철 1호선 구로(九老)역의 역명으로도 이어진다.

그의 이름 거이(居易)가 흥미를 끈다. 그의 친동생 이름은 행간(行簡)이다. 두 이름은 뭔가 메시지를 담은 듯해서 지금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주목한다. 편하게 살고, 간소하게 행동하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 두 이름은 제법 족보가 있는 단어로 볼 수 있다.

형의 이름 거이(居易)는 유교 경전 <중용(中庸)>에 나온다. 그 문장의 맥락은 이렇다. 위에 있을 때 아랫사람 업신여기지 않고, 아래에 있을 때는 윗사람에게 아부하지 않는다. 스스로를 옳게 다스려 남에게 손 벌리지 않으니 원망함이 없다. 위로는 하늘을 원망치 않으며, 밑으로는 사람을 탓하지 않는다.

그런 흐름으로 이어진 문장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따라서 군자는 편안히 처신해 하늘의 명을 기다리며, 소인은 아슬아슬하게 굴면서 요행을 바란다(故君子居易以俟命, 小人行險以徼幸).” 권세와 영달을 위해 서성거리지 말고, 소박한 마음으로 제 본분을 지키면서 살아가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는 셈이다.

행간(行簡)이라는 이름도 공자의 어록인 <논어(論語)>에 나온다. 공자와 제자의 문답에서다. 그 흐름은 거경행간(居敬行簡)이라는 성어로 자리를 잡았다. ‘의젓한 예법으로써 처신하되(居敬) 일의 처리는 번잡하게 하지 않는다(行簡)’는 뜻이다.

간단하게 풀자면 그렇다는 얘기다. 그보다는 더 심오한 뜻도 담겨 있을 듯하다. 그러나 두 사람 이름의 배경을 깊이 들여다보려면 그 둘의 자(字)를 살피는 게 좋다. 본명에 따르는 부명(副名)인 자(字)에 본인의 가치관이 충분히 담겨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백거이의 자는 낙천(樂天)이고 동생 백행간의 자는 지퇴(知退)다. 제 본분을 잘 알아 세속의 권세나 가치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는 뜻이 전자에 담겼다. 뒤의 지퇴(知退)에는 물러설 때를 알아 제 자리에 돌아오는 행위라는 뜻이 들어 있다.

따라서 백거이와 백행간 두 형제의 이름과 자는 사람으로서 살아갈 때 욕망의 무한한 확산을 경계하자는 진지한 각성을 담았다고 볼 수 있다. 실제 두 형제는 그렇게 삶을 살았고, 중국 문단에서는 보기 드문 진정성으로 빛나는 이름을 얻었다.

오늘의 화두는 백거이의 자다. 요즘 세간의 큰 화제인 롯데그룹과 관련이 있어서다. 롯데의 한자 명칭이 바로 낙천(樂天)이기 때문이다. 이 말을 달리 풀자면 평상심, 절욕(節慾), 소박, 담연함이다. 같은 이름을 취한 롯데그룹의 행위와는 어쩌면 꼭 반대다.

우리나라 대기업이 번번이 여론의 심판대에 오른다. 제가 지닌 사회적 소명(召命)을 잊고 번잡한 욕망을 한없이 펼치기 때문이다. 그로써 뭇 사람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는 부덕(不德)함이 지나칠 정도로 크다. 우리 산업계의 첨병이라는 대기업의 도덕적 수준을 다시 들여다보는 요즘이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이렇게 꼬였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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