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16.06.20 10:23
먹구름이 끼어가는 하늘이다. 곧 거센 비바람이 닥칠 전조다. 우리의 문명 수준은 어떨까. 다른 국가, 문명과의 다툼에서 이겨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을까.

세계정복을 하고 싶었다. 만화 속 호탕한 악당의 웃음이 얼마나 멋지던지! 그렇게 웃어보고 싶어 세계를 돌아다니다 결국 해법을 발견했다. 바로 게임이다. 그렇다. 게임은 더 이상 게임기나 컴퓨터 모니터 속의 태풍이 아니다. 이제는 게임으로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세상이다. 사람들은 게임의 눈으로 세계를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아니, 이제는 게임이 세상이다.

한 번 발을 들이면 벗어나기 힘들다는 3대 악마의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문명>이 있다. 문명 하나를 골라 다른 문명과 경쟁하고 정복하는 게임이다. 몇 해 전 발표한 <문명5>에서는 대한민국도 독자적인 문명으로 올랐다. 드디어 세계를 정복하여 ‘민족중흥’을 이룰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게임의 미래는 비관적이다.

게임의 룰은 간단하다. 먼저 지역 문명 하나를 골라 고대부터 2030년까지 성공적으로 키워낸다. 다음은 다른 나라나 문명과 경쟁하여 승리하면 끝난다. 세계 정복을 하는 길에는 몇 가지 방법이 있다. 전쟁으로 점령하는 정복승리, 외교로 세계지도자가 되는 외교승리, 앞선 문화를 보급하는 문화승리, 과학기술을 발전시켜 우주선을 발사하는 과학승리가 그것이다. 참고로 게임 안의 대한민국 지도자는 세종대왕이며 목표는 과학 승리다.

문명을 키우기 위해서는 먼저 차근차근 발전의 단계를 밟아야 한다. 도로를 깔고, 학교, 병원, 은행을 건설하고, 문자를 제정하고 신전을 지어선 국민의 삶을 보장하는 복지국가를 이뤄야 한다. 이 과정을 성공적으로 완수하지 못하면 빈곤해져 창의적인 과학발전을 이루지 못하고 국민들의 불만이 커져 반란이 일어난다. 목표를 이루지 못해 패망한 문명은 다른 문명에 먹혀 없어진다.

대한민국의 현재를 게임에 집어넣어 생각해보았다. 시작부터 세월호와 메르스를 거쳐 구의역의 희생까지, 지배층과 국민, 인구와 사회, 경제 생각나는 모든 사항을 모아보면 암담하다. 승부가 결정 나는 2030년에는 과학 승리는 고사하고 임시직 노인들만 남아 알바 뛰는 양로원 국가일 수도 있다. 게임이란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시뮬레이션이기에 게임에서 찾을 수 없다면 조금은 성급하기는 해도 실제 없어질 가능성이 높다.

어떤 방식으로 게임을 돌려봐도 헬조선이라는 대한민국 현재엔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패망한 대한민국은 게임 속 다른 문명에 먹힐 것이다. 그렇다면 그때의 문명에서 대한민국이 할 수 있는 건 ‘식민지 충성 게임’일지도 모른다.

국가와 개별 문명은 민족과 인류 공영에 이바지해야 한다. 하지만 도무지 현재의 대한민국에게선 인간적으로 바랄 게 없다. 출산율, 노인인구증가 및 청년실업과 임시직은 치명적이다. 세월호와 메르스에 대처하는 능력을 통해 드러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지닌 문명으로서의 의미는 절망과 파탄이다. 심지어 대한민국이란 일개 사기업의 영리를 위해 국민의 건강과 복지를 방기하는 나라다. 문명이랄 것도 없는 해악이다.

게임의 결론은 났다. 사람이면 응당 지어야 할 표정이 있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인간의 얼굴을 잊었다. 국민의 아픔을 차가운 눈으로 바라본다. 국민과 함께 슬퍼하고 기뻐할 감정이 메말랐다. 그렇다. 대한민국이란 인간의 심정을 저버린 냉혈이다.

우리 이제 과학발전으로 세계정복은 잊자. 불경에 소가 마신 물은 우유가 되고 독사가 마신 물은 독이 된다 했다. 인간이기를 멈춘 과학이 아무리 뛰어나도 독사가 내뿜는 독에 지나지 않는다. 널리 인간을 해롭게 하느니 차라리 개나 줘버리는 게 낫다.

아쉽다! 나는 ‘민족중흥’과 세계정복을 같이 이루며 흔쾌한 웃음을 웃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 ‘민족중흥’을 염원하던 대한민국 문명은 침몰했고, 전염병에 걸려 격리 수용됐다. 죽어서도 격리해서 소각해야 할 신세다. 격리 수용된 전염병 환자 데리고 어떻게 강적들과 겨누겠는가?

민족 없는 세계 정복은 조금 공허할 것이다. 하지만 게임의 조건을 가지고 아무리 궁리를 해봐도 대한민국에 희망은 없다. 멸망을 면할 방도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이제 우리는 민족과 국가를 포기하고 각자도생을 목표로 세계로 흩어져야할지도 모른다. 침몰하는 배에서 가만히 앉아 죽기만을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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