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6.22 16:46
하늘을 나는 갈매기다. 당나라 시인 두보의 눈에는 여름날 고요한 강촌의 갈매기가 평화롭게 비쳤다. 시인은 친근(親近)이라는 낱말로 그를 표현했다. '친박'의 구성원들은 어떨까. 갈매기에 견줄 수 있을까.

곧 닥칠 장마철이다. 여름의 기세가 잠시 자리를 비키려나. 그럼에도 무더움의 대명사, 여름에 떠올리는 시가 하나 있다.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의 ‘강촌(江村)’이다. 전란의 폐허를 떠돌다가 4년 만에 찾은 평화와 고요를 여름의 풍경과 함께 멋지게 그려낸 작품이다.

淸江一曲抱村流 맑은 강 한 굽이 마을 안아 흐르니,

長夏江村事事幽 긴 여름 강 마을은 일마다 한가롭다.

自去自來梁上燕 절로 오고 가는 들보 위의 제비들,

相親相近水中鷗 서로 가깝고 친한 물가의 갈매기들.

老妻畵紙爲碁局 늙은 아내는 종이에 장기판을 그리고,

稚子敲針作釣鉤 어린 아들은 바늘로 낚시를 꼬부린다.

多病所須唯藥物 많은 병에 필요한 것은 약재뿐이지,

微軀此外更何求 하찮은 몸 이밖에 다시 무얼 바랄까?

                                        -<중국시가선>, 지영재 역-

물가의 갈매기들을 표현하는 구절에서 상친상근(相親相近)이라는 말이 눈에 띈다. 서로 친하고 가깝다는 뜻이다. 줄여서 말하면 친근(親近)이다. 요즘 신문 지상에 자주 오르내리는 개념이다. 무리를 지어 서로를 감싸주고 보듬는 사람들 말이다.

親(친)이라는 글자는 원래 주술(呪術) 또는 제의(祭儀)와 관련이 있었던 듯하다. 초기 한자에서는 새로 깎은 나무가 등장하고, 그를 집안에 모셔둔 채 사람이 떠받드는 모습이다. 따라서 정성들여 깎은 위패에 제사를 올리는 일, 나아가 그런 제사의 대상인 조상과 부모, 더 나아가 혈육(血肉)으로 맺어진 사람 등의 뜻을 얻었으리라고 본다.

세상에 사람으로 태어나 살아갈 때 가장 가까운 이가 가족이다. 이런 가족을 일컬을 때 먼저 親(친)을 사용한다. 직접적으로는 부친이나 모친, 친형제와 친자매, 혈연으로 직접 맺어진 친척 등에 두로 쓰는 글자다. 그러나 가까움이 어디 혈연에만 그칠까.

오래 가까움을 유지한 친구도 한자로는 親舊다. 사이가 매우 가까움을 강조하는 벗에게는 친우(親友)라는 말을 사용한다. 가깝고 또 가까우면 친밀(親密), 가깝거나 사이가 먼 경우를 일컬을 때는 친소(親疎), 가까이 있어서 관계가 깊어지면 친숙(親熟)이다.

사람이 가까이 지내 우정을 이루며 화목함까지 얻는다면 비난할 일이 아니다. 그러나 제 이해가 먼저 앞서 다른 이를 배척하려는 심보로 사람들이 무리를 이뤄 똘똘 뭉치면 문제다. 이런 이들이 함께 그룹을 형성해 못된 짓을 일삼는 경우가 있다. 흔히 그런 사람들을 붕당(朋黨)이라고 적었다.

조선 500년의 세월을 끊임없는 정쟁과 숙청, 반목과 분열로 이끌었던 ‘먹물’들을 일컬을 때 쓸 수 있는 낱말이다. 요즘도 그런 사람들이 횡행한다. 박근혜 대통령을 정점으로 떠받들며 제 정파적 이해를 따지는 여당 새누리의 ‘친박(親朴)’이다.

동남부 공항 들이는 일에 그림자를 드리웠고, 여당의 정상적인 운영에 사사건건 트집을 잡고 나서며 실시간으로 주목을 받는다. 제 그룹의 성원들과는 상친(相親)하며 상근(相近)하는 정도가 두보의 시에 그려진 갈매기들보다 훨씬 더 하다. 그러나 모습은 갈매기만 못하다. 내질러진 길거리 오물에 끼어드는 쇠파리에 비한다면 과할까. 그 극성스러움이 숙성(熟成)의 계절, 여름의 고요를 다 허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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