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벼리기자
  • 입력 2016.06.22 19:36
[뉴스웍스=김벼리기자] 지난 21일, 한동안 영남권을 뜨겁게 달궜던 '신공항' 논란이 일단락됐다. 이날 국토교통부는 '신공항 유치'가 아닌 '김해공항 확장안'을 공식적으로 택했다. 이로써 몇 년간 영남권에서 치열한 줄다리기가 이어져온 '신공항 건설'이 다시 한 번 백지화됐다.
 
이번 결정에 '가덕도 유치'를 외쳤던 부산·경남이나 '밀양 유치'를 부르짖었던 대구·경북 어디 하나 만족하지 못하고 있는 분위기다.

'가덕도 신공항 유치'에 시장직을 걸었던 서병수 부산시장도 정부의 결정에 대해 "360만 부산시민을 무시하는 처사"라며 신공항 재추진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권영진 대구시장 역시 "정부의 결정은 역사의 수레바퀴를 10년 전으로 거꾸로 돌려놓은 어처구니없는 결정"이라며 "유감을 넘어 분노를 느낀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는 어느 정도 예견된 결과였다. 신공항 사업은 국민의 혈세 10조원가량이 투입되는 국책사업이다. 따라서 '유치하게 되면 들인 것 없이 막대한 이득을 얻을 수 있다'는 안일한 인식이 파다했다. 심지어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는 비유까지 나왔으니 말이다.

한마디로 이번 신공한 사업은 국민 전체가 비용을 분담하지만, 혜택은 특정 지역에 집중적으로 돌아가는 사업이었다. 이러한 비용과 편익의 괴리는 정치적 당리당략에 현혹돼 선심성 공약을 쏟아 붇는 정치권, 합리적 의사결정보다 고성과 퍼포먼스를 앞세우는 지역 이기주의 등 암암리에 우리 사회 전반에 퍼져 있던 병폐를 적나라하게 노출시켰다.

특히 이번 발표 전후로 무엇보다 일부 언론의 무책임한 행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 속보, 단독 경쟁에 매몰

"<속보> 동남권 신공항 입지 '밀양시' 확정"

지난 21일 오전 11시 34분께 경남 통영·거제·고성 지역지 <한남일보> 사이트에 기사가 올라왔다. 이날 오후 3시로 예정된 정부 발표까지는 3시간도 더 남은 시점이었다.

<한남일보>는 해당 기사에서 "동남권 신공항 입지가 밀양시로 확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공식 발표는 21일 오후 3시 정부세종청사 세종2 브리핑실에서 영남권 신공항 사전타당성 검토 연구 최종보고회 관련 브리핑을 갖는다. 발표는 용역을 수행한 ADPi 용역책임자가 직접 맡는다. 그동안 동남권 신공항은 지난 2012년 밀양과 가덕도 두 후보지에 '모두 공항으로서의 입지가 적합하지 않다'라는 평가를 받고 '백지화'된 바 있다"고 보도했다.

해당 기사는 올라간 직후 SNS 등을 통해 급속도로 퍼졌고, <한남일보> 사이트는 한때 트래픽 초과로 마비되기도 했다. 신공항 관련 테마주가 반짝 급등하는 촌극도 벌어졌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정부의 결정은 '신공항 백지화, 김해공항 확장'이었다. <한남일보>의 속보가 오보였던 것이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이후 <한남일보>는 홈페이지에 "본사 홈페이지 오전 11시34분에 게재된 '동남권 신공항입지 00시 확정' 제하의 기사 내용을 '영남권 신공항 백지화, 김해공항 확장키로'"로 보도를 정정한 뒤 "밀양지역 취재기자의 잘못된 취재로 기사가 보도돼 오해를 불러일으킨 점 진심으로 사과드리며 앞으로도 보다 나은 한남일보가 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라며 문제의 원인을 기자의 잘못으로 돌렸다.

과연 취재기자의 잘못일까. 문제의 원인은 기자 개인이 아니다. 따라서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그의 잘못된 취재에 있지도 않다. 그 아래 도사리고 있는 언론사들의 속보 및 단독 경쟁이 이번 우스꽝스러운 사태의 진정한 문제일 가능성이 크다.

◆ 지역이기주의에 매몰, 빛바랜 대의

'신공항 백지화' 발표 다음날인 22일. 대구·경북지역지 <매일신문> 1면은 백지 상태였고, 단 한 문장만이 실렸다. "신공항 백지화. 정부는 지방을 버렸다". 이른바 백지발행이다.

신문에서 백지발행이 갖는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글로 소통하는 매체에서 글을 거부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특히 백지발행의 전례를 보면 부당한 외압이나 사회적 정의의 부재 등 언론으로서의 '대의(大義)'를 지키기 위한 결단의 일환인 경우가 많았다. "자유롭게 쓰지 못할 바에야 안 쓰고 말겠다"는 식의 배짱을 표현하기에는 백지발행만한 전략도 없는 것이다.

일례로 에스토니아에서는 지난 2010년 3월 18일 6대 일간지가 모두 한 면을 백지로 발행하는 장관이 벌어졌다. 새로 제정된 '취재원보호법'이 언론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한다고 인식, 이에 항변하기 위한 조처였다. 당시 <Postimees>, <Õhtuleht>, <Äripäev> 등 신문은 첫 면을 백지로 발행했고 <Eesti Päevaleht> <Maaleht> <Eesti Ekspress>는 다른 지면 전체를 백지로 발행했다.

그러나 <매일신문>의 백지발행은 이와 성격이 판이하다.

이날 <매일신문>은 2면에 1면을 백지로 발행한 이유를 절절하게 실었다. "신공항 건설 백지화로 가슴이 무너지고 통분에 떠는 대구경북 시도민의 마음을 헤아려 매일신문은 22일자 1면에 기사, 광고를 싣지 않은 채 백지로 발행한다"라며 "신공항 건설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린 정부에 대한 시도민의 강력한 항의 규탄 뜻을 명확히 전달하기 위해서다"라고 설명했다.

해당 글은 '통분', '항의·규탄' 등 분노 가득한 단어와 어조로 글이 이어짐에도, 앞선 사례와 비교했을 때 백지발행의 이유가 가볍기 그지없다.

물론,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에 분노할 순 있다. 또한 지역의 이해관계가 걸린 사업이 무산된 것이 허무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와 같이 감정적이고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힌 문제를 성토하기 위해 백지발행을 감행한다면 어느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

1974년 <동아일보>의 광고가 대거 잘리는 사태가 발생한 적이 있다. 앞서 '자유언론실천선언' 등 언론외압에 저항한 대가였다. 이른바 '동아광고사태'. 1974년 12월 27일 <동아일보>의 새하얀 백지 네 면에 비하면 2016년 6월 22일 <매일신문> 1면은 누렇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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