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16.06.23 11:43
도로는 늘 차로 막힐 수 있다. 교통체계의 불합리한 구성은 사회로 향하는 구성원들의 무질서한 심리를 부추길 수 있다.

아깝게 신호대기에 걸렸다. 땡볕에 신호대기는 영원과도 같다. 의식이 가물가물해지다 거의 나조차도 잊는 망아(忘我)의 단계로 들어선다. 아쉽게도 뒤차의 빵빵거림에 다시 현실 세계로 돌아오지만 더 앞 차는 게임이라도 한 판 하는 듯 깰 줄 모른다.

작년 교통단속으로 수백억을 더 걷어 들였다고 비난하는 기사가 올라왔다. 교통질서가 확립되고 덩달아 국고도 찬다니 좋아할 일이지 절대 비난의 대상은 아니다. 하지만 단속이 항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정치 달력’과 함께 한다는 대목에 이르면 씁쓸하다. 더욱이 교통단속을 통해 교통의식 함양이 아닌 국민 길들이기 한다는 느낌이 강할 때는 화가 난다. 특히 신호대기 시간을 가지고 장난을 칠 때면 짜증까지 동반한다.

교차로 꼬리 물기 단속부터 신호위반, 난폭운전 끼어들기까지 단속도 가지가지다. 그런데 이런 위반은 왜 할까를 생각해보면 운전자 잘못이라기보다는 신호등 잘못도 크다. 신호대기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운전자로서는 어떤 방법으로라도 먼저 가는 게 수다. 한 번 걸리면 한도 끝도 없기 때문이다.

도로교통 질서는 양심에 기대는 면이 많다. 자동차가 많아지고 도로도 복잡하니 자발적인 정지나 양보가 필요하다. 하지만 세상이 각박해서인지 양보도 자발성도 기대하기 힘들다. 더욱이 신호가 길어지면 자발적 양심은 바로 손해로 이어진다. 교통체계가 이기적으로 운전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염치불구하고 끼어들기나 꼬리 물기 하면 적어도 5분은 절약할 수 있다. 경찰에 걸리지만 않는다면 이제나 저제나 신호만 바라보는 멍청하고 한심한 짓을 하지 않아도 된다.

정지 신호는 ‘서시오’라는 메시지다. 그런데 정지신호가 오래 바뀌지 않으면 메시지는 슬그머니 ‘딴 짓 하시오’나 ‘잠드시오’로 변한다. 그렇게 한 번 걸리면 운전자에서 게이머나 잠자는 도로의 공주로 변할 수밖에 없으니 도로가 위험해진다. 그리고 덩달아 신호를 지키면 손해라는 학습효과도 생긴다. 학습효과는 무질서로 드러난다. 도로 위의 학습은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온 사회로도 퍼져나간다. 신호를 길게 만들면 사회 전체에 미치는 심리적 효과가 크다는 말이다.

경찰도 나름 연구를 통해 신호대기 시간을 정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나름의 연구’가 문제다. 연구 결과로 나타난 일이 차가 하나도 없는 새벽시간에 한도 끝도 없는 신호대기다. 졸리고 지겹지만 신호를 무시할 수 없기에 무기력해진다. 마치 국민을 무기력하게 만들기 위한 연구가 아닌가 싶을 정도다.

교통 신호뿐 아니라 일에도 ‘최대’가 있고 ‘최적’이 있다. 최대란 한방에 모든 것을 해결하겠다는 생각이다. 반면 최적은 적당히 분산시키겠다는 말이다. 아무리 기다려도 바뀔 생각을 않는 교통신호는 최적이 아닌 최대에 맞추어져 있는 듯하다. 사회로 이어진 도로는 국민에게 무기력, 한탕주의, 꼬리 물기, 규율위반, 난폭행위에 새치기까지 권한다. 아니 국가는 국민 모두를 무기력하거나 양심을 저버린 범법자로 만들려는 하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오늘도 우리는 무기력하게 차 안에서 쪽잠을 자고 게임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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