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6.26 12:51
서커스, 곡예단의 공연 장면이다. 중국에서의 말쓰임은 우리와 조금 다르지만, 곡예는 몸의 유연함을 살려 보여주는 재주라는 뜻이다.

이 말 ‘서커스’ 쯤으로 풀어야 적당하다. 적어도 우리말 쓰임새에서는 그렇다. 그러나 한자를 보면 조금 뉘앙스가 다를 법하다. 앞의 曲(곡)이라는 글자는 ‘굽이’ 또는 ‘노래’를 가리킨다. 뒤의 글자 藝(예)는 굳이 풀 이유가 없을 정도로 우리가 잘 안다.

그럼에도 살필 필요는 있다. 曲(곡)은 밭을 가리키는 田(전), ‘말미암다’의 由(유)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 밭의 경계가 살짝 허물어지는 일이 由(유), 크게 변하는 일이 曲(곡)이란다. 따라서 曲(곡)은 어느 정도 이상의 변화를 나타내는 뜻, 나아가 ‘굽이’ ‘구부러짐’ 등의 의미를 얻었다는 설명이다.

‘노래’라는 뜻도 그로부터 연역했다고 볼 수 있다. 그냥 말하는 형식이 아니라, 말에 무엇인가를 얹어 달리 말하는 모습이나 행위라는 얘기다. 말을 좀 더 바꿔서 전하는 방법이 ‘노래’ 아니고 무엇일까. 그래서 얻은 뜻이 가곡(歌曲), 곡조(曲調) 등의 ‘노래’라는 설명이다.

藝(예)는 지금 형태와는 퍽 다른 원래 꼴을 보면, 손으로 벼와 수수 등 식물 줄기를 잡아 땅에 꽂는 모습이다. 따라서 원래 출발점에 섰던 이 글자의 뜻은 ‘심다’다. 곡물 등을 땅에 심는 행위를 가리킨다. 예로부터 농사는 삶을 유지하는 가장 큰 줄기였으니 농사에서의 테크닉이라는 것은 매우 중요했을 테다.

그래서 이 글자는 마침내 ‘기술’의 뜻을 획득했다. 활쏘기, 말 타기, 글쓰기 등의 여섯 가지 재주를 귀히 여겼던 동양사회는 그를 육예(六藝)로 적었다. 기술 자체를 기예(技藝)라고 하거나, 글 쓰는 솜씨를 서예(書藝), 학술상의 재주를 학예(學藝), 식물 재배의 능력을 원예(園藝)라고 하는 이유다.

그렇다면 곡예(曲藝)라는 말을 어떻게 풀어야 좋을까. 오랜 반복적인 훈련을 거쳐 남이 따라 하기 어려운 동작을 표현하는 ‘서커스’가 우리 쓰임새에서는 일반적인 뜻이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이 말의 의미가 다르다. 중국인들은 노래를 통해 표현하는 재주라는 뜻으로 이 말을 쓴다. 일반적인 ‘서커스’는 여러 기술을 가리키는 단어, 즉 雜技(잡기)로 적는다.

사전적인 정의에서 벗어나자. 曲藝(곡예)라는 한자의 뜻에 충실하고자 한다면 이 단어는 중국인들이 풀듯이 ‘노래로 표현하는 재주’로 받아들여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서커스’의 의미가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이 단어를 ‘구부리는(曲) 재주(藝)’ 정도로 풀 수 있기 때문이다. 이리저리 구부리고 또 구부려 희한한 모습을 연출하는 테크닉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曲藝(곡예)라는 한자 단어의 원래 뜻이 무엇일까를 고민할 필요는 없다. 한자는 그렇게 이리저리 구부려도 좋을 만큼 탄력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曲藝(곡예)는 곧 서커스”라고 해도 무방하다.

정치인들이 혀를 이리저리 구부려 각종 희한한 상황을 연출하는 게 꼭 그렇다. 혀만 구부려 거짓을 말하는 정도가 아니다. 제 마음의 좋은 바탕, 양심(良心)까지 이리저리 구부려 가리고 피한다. 그 모습이 치사하고 쩨쩨하기 그지없다. 이는 어제 오늘의 풍경은 아니다.

리베이트 의혹의 야당, 자신의 딸과 동생 등을 공금으로 고용한 국회의원, 게다가 부실한 회사의 지원 자금을 버젓이 횡령하고 유용한 기업인들이 다 그렇다. 현란한 서커스의 절정이라 해도 좋을까. 아무튼 눈이 꽤 어지럽다. 사람이 빚어내는 서커스 풍경이 현란하다 못해 어지러워 구토마저 부른다. 바르고 곧음, 정직(正直)은 일찌감치 자취를 감췄다는 느낌이다. 구부리는 기예가 너무 충만한 사회다.

 

<한자 풀이>

曲 (굽을 곡, 누룩 곡): 굽다. 굽히다. 도리에 맞지 않다. 바르지 않다. 불합리하다. 정직하지 않다. 공정하지 않다. 그릇되게 하다. 자세하다. 구석. 가락. 악곡.

藝 (재주 예, 심을 예): 재주. 기예. 법도. 학문. 법. 글. 과녁. 심다. 재주가 있다. 나누다. 극진하다. 심다.

 

<중국어&성어>

曲艺(藝) qǔ yì: 전통적으로 노래와 언변 등을 통해 표현하는 예능. 이른바 說唱(설창) 문학이라는 민간 전통 예술 장르를 바탕으로 발전한 기예. 우리말 쓰임새의 ‘서커스’와는 거리가 있는 표현이다.

曲高和寡 qǔ gāo hè guǎ: 곡조(曲)는 우아하고 수준이 높지만(高), 따라하는(和) 사람 적다(寡)의 구조다. 알아주는 이 만나기 어렵다는 게 원래 뜻. 그러나 지금은 혼자 고상한 척해서 따르는 사람 없음을 가리킨다.

是非曲直 shì fēi qǔ zhí: 옳고 그름, 구부림과 폄.

异(異)曲同工 yì qǔ tóng gōng: 부르는 노래(또는 곡조)는 달라도 표현하는 수준은 극히 높음. 시대와 환경, 조건 등은 달라도 그 결과가 엇비슷할 때 등을 가리키는 성어. 많이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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