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16.07.04 09:06
공포영화의 거장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대표작 '새'의 스틸컷. 공포영화는 사람의 가장 원초적인 감성인 공포를 자극한다. 김정은의 북한은 거대한 공포영화의 세트라는 느낌을 준다.

공포라는 게 싸구려 감성이지만 원초적이라 먹힌다. 후덥지근한 장마에는 무서운 이야기가 그만이다. 아마 영화 ‘여고괴담’이나 ‘곡성’이 가진 매력도 바로 그런 것이리다. 이런 감성을 잘 이용하는 나라가 있다. 바로 테러로 이름 날리는 IS와 북한이다. 특히 북한의 통치자 김정은을 보자면 종종 우리는 공포영화 속에 들어와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기도 한다.

김정은, 그를 패륜아라 한다. 잘못된 판단이다. 그가 사형에 처한 사람은 고무부가 아니라 군 장성 장성택이다. ‘도덕과 군자’의 세계였던 조선에서 고모부 처형 정도는 약과였다. 형제 죽이고 조카에게 사약을 내리고 아들을 뒤주에 넣었다. 이러니 ‘백두의 혈통’을 중시하는 왕조국가에서 임금의 정치적인 행사는 패륜이 아니다.

애송이건 패륜아건 상관없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그가 영화광이던 선왕(先王) 김정일을 계승했다는 것이다. 영화감상이 선왕의 취미였다면 그는 공포영화 연출에 소질을 보인다. 영화 연출을 위해 주변을 마구 끌어들이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공포영화 속에 들어와 있다는 느낌이다.

대부분 공포영화는 저예산 B급이다. 자본이 부족하니 대신 충격적인 아이디어로 강한 인상을 주려 한다. 투자대비 수익성을 생각하면 깊이 있는 감성보다는 말초적인 공포가 더 효과적이다. 때문에 공포물은 불황에 강하다. 공포를 연출하는 한 쉽게 망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공포는 저예산 감성이지만 깜짝 쇼는 투자대비 고수익이다. 김정은도 이런 공포물의 문법을 따르고 있다. 대부분의 세계는 전율하면서도 비교적 안전한 객석에서 김정은의 공포물을 즐기고 있다. 그들이야 그저 야유하며 팝콘이나 던지면 끝나지만 우리는 공포 쇼에 출연한 희생자다. 절대 느긋할 수 없다.

어릴 적 친구 몰래 나타나 "워!"하면 기겁하며 놀란다. 공포영화의 제 1법칙은 바로 놀라게 하는 것이다. 공포영화가 무서운 것은 교활한 악당이 기발한 방법, 예상할 수 없는 순간에 희생자를 공격하는 데 있다. 알고 보면 공포영화란 기발하기에 무섭다.

공포영화에는 삶과 죽음을 가르는 공식이 있다. 이를 숙지하면 살아남을 수 있다. 아니 악당을 물리치는 영웅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죽는 자는 누구이고, 살아남아 악당을 물리치는 영웅은 누구인가?

자기의 자리를 지키지 않고 “곧 돌아올게”하며 돌아다니면 당한다. 자기 자리에서 해야 할 의무를 버리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딴 짓 하다가는 숨어있던 살인마를 피하지 못한다. 우리 사회가 매일 접하는 비극은 여기서 시작한다. 보통 빈 집을 두드리다 사람이 없다고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가면 죽는다.

빈집은 집이 아니라 살인마의 무대다. 달리 말하면 개성공단이나 금강산은 결코 빈집이 아니었다. 빈집이라 생각했기에 당했다. 서로 이탈하면 죽는다. 새누리당은 서로 반목하다 당했다. 귀신, 공포 놀이하면 당한다. 새누리당이 국회에서 우선 해야 할 합의와 민생 법안은 팽개치고 매일 싸움질에 ‘종북’공포 놀이했기에 당한다. 물론 술과 마약, 뇌물 같은 도덕적 해이 역시 악당이 노리는 포인트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는지 김영란법이 맘에 안 든다는 말이 나온다.

대부분의 공포영화는 시작 30분까지 살인마가 등장하지 않는다. 희생자의 방관을 유도하고 죽일 만한 이유를 마련하기 위해서다. 따라서 쓸데없는 사회분열, 정치적인 협잡 혹은 정치공작은 줄서서 희생될 차례 기다리기다. 게다가 살인마란 쉽게 죽지 않는다. 죽였다고 생각하지만 언제 다시 벌떡 일어나 공격할지 모른다. 그래서 관객들조차 안심하는 배역은 희생자로 여긴다.

그렇다면 살아서 살인마를 물리치는 영웅은 누구인가? 바로 깨어 있는 주인공과 희생을 무릅쓴 처녀다. 처녀란 사랑과 희생, 그리고 경계심의 상징이다. 그래서인지 공포영화에서 처녀는 강력한 남자주인공보다 더 눈에 띈다. 특히 경계심이 중요하다. 경계의 실패는 삶과 죽음을 가르는 선이다.

자! 이제, 공포영화는 시작했고 우리에게는 30분이 주어졌다. 어떻게 살인마에 맞설 준비를 해야 할 것인가? 끝내 살아남아 살인마를 물리치는 처녀가 답을 말해준다. 서로 사랑하고 희생하는 민주 사회, 그리고 자기자리를 지키며 끝까지 늦추지 않는 경계 태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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