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7.06 15:38
임진왜란 때 승려들로 조직한 승군을 이끌었던 조선 중기의 명승 서산대사(西山大師) 영정이다. 잘못을 뉘우쳐 옳은 길에 들어서라는 내용의 회심곡(回心曲) 작자로도 유명하다. <사진=문화재청>

길을 가다가 옳은 길이 아니라고 여겨진다면 발길을 돌려야 마땅하다. 그 길이 사느냐 죽느냐를 가르는 전쟁터라면 더욱 그렇다. 살벌한 싸움의 마당에서 병력을 이뤄 생사(生死)의 갈림길에 자주 서는 군대가 가던 길 멈추고 돌아서는 일은 회군(回軍)이다.

회심(回心)은 가던 길에서 되돌아서려는 그런 마음을 가리킨다. 우리는 회심을 이야기할 때 곧잘 省(성)이라는 글자를 쓴다. 반성(反省)이 그렇고, 성찰(省察)도 마찬가지다. 공자의 제자이자 손자이기도 한 증삼(曾參)은 하루에 세 번 자신을 돌아본다는 ‘오일삼성(吾日三省)’의 성어를 남겼다.

남을 위해 생각을 이어갈 때 충심(忠)을 보탰는지, 친구와 사이를 이어감에 믿음(信)이 있었는지, 가르침을 전하면서 제대로 익혔는지(習)의 여부를 되돌아봤다는 내용이다. 나아갈 길의 옳고 바름을 따지는 진지함, 그릇된 길을 가지 않으려는 고민이 엿보인다.

나아갈 때 멈출 줄 알아야 하고, 잘못이 드러났을 때는 발길을 되돌려야 한다. 크게는 총과 칼로 무장한 채 전쟁에 나서는 군대가 반드시 그래야 한다. 작게는 인생의 길에 선 뭇 사람들의 경우가 다 그렇다. 나아가고 멈추는 일을 가리키는 행지(行止)는 그래서 예로부터 중요한 살핌의 대상이었다.

省(성)이라는 글자의 초기 형태 풀이는 다소 엇갈린다. 그럼에도 눈(目)이 등장해 무엇인가를 깊이 살핀다는 뜻은 오래전에 이미 얻었다고 볼 수 있다. 되돌아서서 지나온 발자취를 깊이 살피는 일이 반성(反省)이다. 그런 행위가 깊이를 더할 때는 성찰(省察)이다.

그로써 뭔가 깨달음을 얻으면 성오(省悟)다. 깊이 반성하는 일은 맹성(猛省), 경각심으로 인해 되돌아본다면 경성(警省)이다. 반성과 같은 뜻으로 쓰는 단어는 회성(回省)이다. 안으로 향하는 시선을 강조할 때는 내성(內省)이며, 스스로 돌아보면 자성(自省)이다.

우리나라 최고 기업 삼성의 ‘반성 시리즈’가 화제다. 사내 방송을 통해 자신이 지닌 현재 상황의 문제점을 파헤치는 내용이다. 지금까지 두 차례 이뤄졌으니 다음 회를 선보이면 삼성(三星)이 삼성(三省)하는 셈이다. 정말 바람직한 일이다.

옳고 바른 길을 찾기 위한 몸부림이다. 그로써 제 길을 찾으면 반정(反正)이자 귀정(歸正)이다. 그러나 원래의 장점까지 깡그리 잃는다면 패착이다. 일과성 이벤트로 맺어지면 더 큰 후유증을 남길 수도 있다. 그럼에도 삼성의 달라지려는 노력에 성원과 축복을 보낸다.

개혁의 필요성을 늘 입에 올리지만 정말 달라지는 것 없이 오히려 추태만 반복하는 정치가 문제다. 친인척 비서진 고용에 이어 엊그제는 막말로 다시 한 번 국회가 들썩였다. 되돌아서서 잘잘못을 살피는 성찰의 시선은 전혀 없다. 이런 경우가 인사불성(人事不省)이다.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정리(定理)를 모두 잊는 경우다. 술에 취해 고주망태의 사람에게만 쓰는 말이 아니다. 뭔가에 깊이 빠져 전혀 헤어나지 못하는 이에게 고루 쓸 수 있다. 인사불성의 국회가 어제 오늘 만의 일이 아니어서 걱정이다.

서산대사(西山大師)가 지었다는 회심곡(回心曲) 한 번 듣기를 권한다. 잘못을 뉘우치고 옳은 길에 올라서라는 종교적이자 사회적인 메시지가 담겨 있다. 마지막으로 이 노래를 들려주는 경우는 망자(亡者)가 상여(喪輿)에 실려 나갈 때라고 한다. 그러기 전에 뉘우치기 바란다. 여의도 인사불성의 의원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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