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7.07 15:50
일제 강점기 초반에 촬영한 남원의 객관(客館) 용성관의 중문 모습이다. 공무 등을 위해 오가는 관원들은 역참에 달린 이런 객관을 사용했다. 1호선 역 역곡은 그런 역참과 관련이 있는 이름이다. <사진=국립중앙박물관>

부천시 원미구에 있는 동, 전철의 역명이다. 원래 지역 일대 이름은 순우리말이 우선이었다고 한다. 조선 때 부평부의 옥모면에 속해 있다가 일제강점기 초반인 1914년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벌응절리(伐應節里)로 정착했고, 1973년 부천시가 생기면서 역곡동으로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벌응절리라는 이름은 벌판의 끝자락에 있는 마을이란 뜻의 ‘벌언저리’ 또는 ‘벌은저리’의 한자 표기라는 설명이다. 현재의 역곡역 북쪽은 예전의 역골이 있던 자리라고 한다. 조선의 지형을 그린 책에 등장한다. 역골은 곧 역마가 있던 곳이라는 의미다.

驛谷(역곡)의 역명(驛名)에는 역(驛)이라는 글자가 두 개 들어 있다. 이를 덧붙여 부르면 역곡역(驛谷驛)이다. 이런 경우는 또 있다. 서울 지하철 2호선의 역삼역(驛三驛)이다. 지명에 이처럼 驛(역)이라는 글자가 붙는 곳이 있는데, 과거의 驛(역)이었음이 분명하다. 단지 차이점이 있다면 그때의 驛(역)에는 기차가 다니는 대신 말(馬)이 다녔다는 점이다.

‘자무치’라는 몽골어를 들어본 사람도 있을 것이다. 몽골 사람들이 중국 전역을 석권해 다스릴 때의 왕조 이름이 원(元)이다. 유라시아 대륙에 걸쳐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제국을 건설했던 칭기즈칸과 그 후예 쿠빌라이에 관한 역사 기록이다. 쿠빌라이는 마침내 중국 대륙을 모두 석권해 元(원)이라는 제국을 세웠다.

그들은 그 방대한 영토에서 역참(驛站) 제도를 운영했다. 이 역참이라는 것은 옛 교통, 또는 통신(通信), 숙박(宿泊)의 기능을 지닌 시설이었다. 주로 중앙 왕조의 명령 등을 적은 공문을 실어 날랐으며, 공무 등을 위해 오가는 관리나 그 부속 인원들에게 교통편인 말과 함께 숙식(宿食)까지 제공하는 여관의 역할도 했다. 이 역참의 역사는 매우 길다. 2500년 전인 중국 춘추시대에도 이미 그런 종류의 통신 및 운송 제도는 있었으며, 고구려에서도 그를 활용했다는 기록 등이 보인다.

그러나 그 역참제도의 백미는 아무래도 元(원)나라를 꼽을 수 있다. 元(원)에서는 그를 ‘자무치’라고 했으며 한자로는 站赤(참적)이라고 적었단다. 말이 하루를 달릴 수 있는 거리인 100리(요즘 식으로 따지면 약 40㎞)에 하나씩 자무치를 뒀는데 그 정교함과 방대함, 신속함이 눈부실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 영향을 받아 한반도 왕조에서도 부지런히 그 역참을 활용했다. 공문서와 식량 및 물자 수송, 관리의 통행 등에 필수불가결한 제도였던 모양이다. 그래서 우리 지명에 驛(역)이라는 글자가 들어가면 그곳이 보통 옛 역참의 하나였으리라 짐작해도 거의 틀림이 없다.

조선시대에는 보통 40리마다 그런 역참이 세워졌다고 하는데, 이곳 驛谷(역곡)에도 역참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역참이 있던 곳이 아무래도 골짜기였던 모양이다. 그래서 붙은 이름이 驛谷(역곡)이리라.

중국 고대 자전(字典)인 <설문해자(說文解字)>의 풀이로 보자면 이 驛(역)이라는 글자는 ‘말을 두는 곳’이다. 역시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역참의 뜻과 다르지 않다. 조선시대에는 이 역참이라는 단어 외에 역원(驛院), 우역(郵驛), 역관(驛館) 등의 단어도 쓰였다. 육로(陸路)의 역참을 육참(陸站), 배가 다니는 수로(水路)의 그것을 수참(水站)이라고 한 점도 알아두면 좋다.

이곳에는 항상 숙박시설과 음식, 그리고 말을 준비해뒀다. 관리들이 오가면서 묵을 여관, 아울러 그들에게 제공하는 음식, 그리고 급히 오가는 사람을 위해 교체해줄 말 등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런 역참의 말을 우리는 역마(驛馬)라고 적었고, 그곳에서 일하는 병졸들을 역졸(驛卒), 그곳의 관리를 역리(驛吏)라고 했다.

역사(驛舍)라고 하면 우리는 요즘의 기차역 역사를 떠올리지만 원래의 뜻은 옛 역참의 건물이다. 따라서 옛 문헌에서 이 驛舍(역사)라는 단어가 등장하면, 오늘날의 기차역을 떠올리지 말고 ‘사람이 묵는 곳’ ‘여관’ 정도를 떠올려야 마땅하다. 그 역참이 서로 이어진 길이 역로(驛路), 또는 역도(驛道)다.

가끔 신문사가 주최하는 마라톤 이름이 눈길을 끌 때가 있다. ‘역전(驛傳) 마라톤’이다. 지금은 기차역을 중심으로 마라톤 구간을 설정하지만, 그 유래는 역참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驛傳(역전)이라는 단어는 역참에서 서로 오가는 통신과 공문 등을 일컫는 말이다. 역체(驛遞)라는 말도 있는데, 지금의 우체국(郵遞局)에 쓰이는 체(遞)라는 글자가 들어가 있다. 이 글자는 ‘건네다’의 새김이다. 역을 통해 급히 전해지는 문서 등을 가리킨다.

사주팔자(四柱八字)를 믿는 사람도 많다. 그 가운데 역마살(驛馬煞)이라는 게 있다. 사람이 지니고 태어난 운명이라는 얘기인데,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한 채 이리저리 떠도는 경우, 또는 그런 명운을 지니고 나온 사람을 가리킨다. 그 역마살의 驛馬(역마)라는 존재가 바로 역참에 속해 있으면서 이곳저곳을 떠돌아 다녀야 했던 그런 말이다.

옛 역참의 제도에서 그 驛(역)은 참 분주했던 곳일 게다. 공문이 수도 없이 오가야 했을 것이고, 임지로 떠나는 벼슬아치와 서울로 돌아가는 벼슬아치의 발길도 수없이 드나들었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많은 사람이 오가면서 한쪽은 정들었던 곳을 떠나고, 다른 한쪽은 제 살던 곳을 찾으면서, 그런 사람들의 발길이 쉼 없이 갈마드는 곳이 바로 역이기 때문이다.

크게 보면 항구(港口)나 공항(空港)이나 모두 驛(역)과 다를 게 없다. 떠나는 사람이 있으면 남는 사람이 있다. 기약 없이 그곳에서 헤어지는 사람들도 많다. 그렇게 길을 떠나고, 누군가는 길을 돌아와 집으로 향하는 곳이 바로 驛(역)이자 港口(항구)요, 空港(공항)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驛(역)에서 항구에서, 공항에서 이별의 섭섭함과 만남의 기쁨을 노래하는지 모른다.

당나라 시인 이백(李白)이 남긴 구절이 떠오른다. 그는 하늘과 땅은 이 세상을 그냥 스치듯 지나가는 여관(旅館)이라고 했고, 마냥 흐르는 시간을 영원히 스쳐가는 나그네라고 했다. 그 내용을 아래 적는다.

하늘과 땅은 만물이 지나는 여관 天地者, 萬物之逆旅(천지자, 만물지역려)

시간은 영원히 지나치는 길손 光陰者, 百代之過客(광음자, 백대지과객)

하늘과 땅, 즉 이 세상을 가리킨다. 역려(逆旅)라는 단어는 과거에 자주 썼던 말이다. 요즘 말로 하자면 여관이다. 광음(光陰)은 빛과 그늘, 나아가 낮과 밤의 교체, 또 나아가 시간(時間)을 가리킨다. 백대(百代)는 여기에선 영원에 가까운 긴 세월을 의미한다. 과객(過客)은 스쳐 지나가는 손님. 우주의 광대한 공간, 영겁의 시간 속에서 사람의 존재가 덧없음을 일깨우는 내용이다.

역참을 설명하다보니 어느덧 항구와 공항을 이야기했고, 무릇 떠나고 머무는 인생의 모습이 이백의 시에 드리운 逆旅(역려)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렇게 우리의 인생은 많은 역을 지나고, 그 속에 담긴 떠남과 머묾의 정서를 품는다. 나는 지금 어느 역을 지나고 있을까. 조용히 창밖을 내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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