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5.11.03 17:28

대한민국 박근혜 대통령,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 이 둘은 각각 대한민국과 일본의 최고 수장이다. 그러나 중화인민공화국 리커창(李克强) 총리의 지위는 조금 다르다. 그는 중국 공산당 서열 2위로서 시진핑(習近平) 국가 주석이자 당 총서기 바로 밑이다. 

따라서 최근 서울에서 한국과 중국, 일본의 대통령과 총리 등이 모여 벌인 한중일 3국 정상회담이라는 이름이 조금은 이상하다. 한국과 일본의 대통령, 총리는 그 이름에 맞지만 리커창을 중국 최고 정상이라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국제적인 양해를 거친 사항이다. 중국의 국가주석과 총리, 또는 그 외의 공산당 최고 지도부인 정치국 상무위원(현행 7인)이 사안 별로 중국을 대표하는 자리에 설 수 있다는 점을 국제사회가 받아들인 결과다. 그럼에도 국가주석 못지않게 자주 국제사회 정상회담에 등장하는 중국 총리라는 자리는 관심거리다. 

중국의 총리라고 하면 우선 떠오르는 사람은 저우언라이 (周恩來)다. 그는 최고 권력자 마오쩌둥(毛澤東) 밑에서 ‘시집살이’만 실컷 하다가 1976년 사망했다. 그럼에도 그는 건국 당시의 총리로서 줄곧 활약해 ‘중국 총리’의 대명사처럼 여겨져 왔던 인물이다. 

저우언라이 전 총리(왼쪽)와 리커창 총리(오른쪽)

부패 척결을 외치며 “탐관오리들을 담을 관(棺) 100개를 가져와라. 그 가운데 하나는 내 것”이라며 기백을 펼쳤던 주룽지(朱鎔基)도 인상적인 총리였다. 그는 당 총서기 장쩌민(江澤民) 밑에서 총리를 지내며 나름대로 자신의 입지를 다진 사람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막강한 권한이 따르지는 않았다. 

‘울보 총리’라고 기억하시는지? 지금 리커창의 전임자인 원자바오(溫家寶)다. 지진과 홍수 등 재난현장에 자주 나타나 참담한 관경을 목격하고는 울음을 참지 못해 중국인들의 심금을 울렸던 총리다. 그는 낡은 점퍼와 오랜 운동화로도 유명하다. 

13~17년 묵은 점퍼와 운동화를 입거나 신고 다닌 사실이 언론에 의해 알려지면서 14억 중국인과 해외에 이름이 더욱 유명해진 사람이다. 그러나 해외의 언론이 그의 일가가 이룬 거대한 부의 축적을 보도하면서 비난도 함께 받은 적이 있다. 

초대 총리 저우언라이로부터 리커창에 이르기까지 역대 중국 총리의 정치적 지위는 다소 불안하다는 점이 특징이다. 1인자인 주석이나 총서기 등의 빛에 가리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행정을 전담하는 국무원을 총괄하니, 실제 중국을 움직이고 있는 공산당 내에서의 파워가 떨어진다는 점도 눈에 띈다. 

그래서 대개 이들은 대중적인 홍보에 열중하는 편이다. 주룽지의 ‘관(棺) 100개’, 원자바오의 낡은 점퍼와 운동화, 그리고 눈물 등이 그렇다. 대중에게 직접 어필하는 방식으로 세(勢)를 유지해 자신의 정치적 지위를 획득하는 경우가 많다. 

리커창의 지위가 요즘 불안하다는 관측이 자주 나온다. 최근 방한하면서 한국에서 나름대로 인기가 있음을 확인했지만, 중국에서는 이야기가 조금 다른 모양이다. 전통적으로 국무원 총리 몫인 경제 분야의 주요 결정권도 명실상부한 중국 최고 권력자 시진핑에게 넘어가 있다는 점도 그를 부추긴다. 

주룽지의 박력이나, 원자바오의 눈물 같은 감성적 이미지도 떨어진다. 그저 냉철하면서 온화하며 신중한 행정가라는 인상이 지배적이다. 그런 리커창은 마오쩌둥 이래 최고 권력을 형성했다는 시진핑의 그늘에 더욱 가린다. 10년 임기를 못 채우고 중도에 낙마할 가능성도 점치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해외 언론의 쉬운 관측처럼 그가 중도에 낙마할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낮아 보인다. 그럼에도 눈에 크게 띄는 것은 시진핑의 권력 크기다. 타협과 교섭, 막후 조율 등으로 지금까지 순항해온 중국호가 근래 보기 드문 권력을 형성한 시진핑에 의해 과거와는 다른 행보를 보인다. 그로써 더욱 약해보이는 중국 총리 자리. 오늘의 중국을 관찰하는 중요한 포인트의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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