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7.13 13:47
조선의 정궁이었던 경복궁의 근정전 모습이다. '경복(景福)'은 커다란 복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에 앞서 景(경)은 '뚜렷한 모습'의 새김을 얻었다. 전략의 사고가 필요한 요즘에는 먼 곳과 가까운 곳의 상황, 즉 원경(遠景)과 근경(近景)을 모두 잘 헤아려야 한다.

산에 들에, 바다에 강에 사람의 발길이 무수히 닿는 요즘이다. 한여름의 무더움을 피하기 위한 행렬이다. 그럴 즈음에 많이 사용하는 말이 경치(景致)다. “아, 정말 경치 좋다~”라는 감탄에 자주 드는 말이다. 무심코 쓰는 말이기는 하지만 그 속내는 제법 복잡하다.

景(경)은 의미가 뚜렷하다. 해를 가리키는 日(일)이 있고, 그 밑에 높은 누각인 京(경)이 붙었다. 풀이는 다소 엇갈리는 면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원래의 글꼴로부터 ‘높은 누각에 내리쬐는 햇빛’, ‘눈에 잘 드러나는 모습’ 등의 뜻을 우선 얻었다고 본다.

이어 크고 우람함, 우뚝하며 대단한 것을 향한 존경 등의 새김도 획득했다. 그로써 번지는 조어(造語)는 적지 않다. 우선 사물의 모습을 가리키는 맥락으로는 경관(景觀), 경색(景色), 광경(光景), 경물(景物), 풍경(風景), 배경(背景), 전경(全景) 등이 있다.

조선왕조의 정궁이었던 경복궁(景福宮)도 새겨볼 만하다. 여기서 景(경)은 ‘크고 우람함’의 맥락이다. <시경(詩經)>에 등장하는 말로 크고 오래 누리는 복을 가리킨다고 했다. 경치(景致)의 나중 글자가 다소 마음에 걸린다. 致(치)는 무엇인가 이끌어 내거나, 가서 닿는 행위를 우선 가리킨다.

나중에는 그런 행위가 어떤 결과의 형태로 맺어지는 경우를 말하기도 한다. 마음이 무언가에 따라 어떤 인상으로 자리 잡는 사례다. 굳이 말하자면 의태(意態)라고 풀 수 있다. 따라서 경치(景致)라고 하면 좋고 아름다운 풍광을 보면서 느끼는 마음의 상태다.

경기(景氣)라는 말은 우리의 경제 상황과 맞물려 자주 사용하는 단어다. 햇빛의 기운? 우선은 그렇게 풀어볼 수도 있다. 그러나 햇빛 아래 드러나는 여러 모습의 전체 기운을 가리키는 단어로 해석해야 마땅할 듯하다.

이 단어의 원래 쓰임은 중국 고전에서 제법 일찍 등장한다. 그러나 이 말을 원용해 사회가 이루는 경제적 기상도를 일컫는 말로 정착시킨 쪽은 일본이라고 봐야 한다. 근대의 길목에서 가장 먼저 서양의 문물과 제도를 받아들인 일본의 작품이라는 얘기다.

그 경기가 좋지 않음은 우리 모두 다 아는 사실이다. 경제의 기운이 하강의 추세에서 좀체 벗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여러 지표 또한 경기의 반전에 이은 상승을 예시하는 사례도 거의 없다. 잿빛의 구름이 해를 가려 사위(四圍)가 다 어둑해지는 상황이다.

고고도 미사일 요격 체계인 ‘사드’의 문제가 한 파도를 넘었고, 이제는 남중국해의 더 큰 풍파가 닥칠 상황이다. 그곳에 인공으로 섬을 만들어 영해라고 주장하는 중국과 국제법의 테두리에서 그를 견제하는 미국의 세력이 사나운 물길을 만들어내고 있다.

미국과 동맹 관계인 한국, 나아가 새롭게 부상하는 중국과 경제적으로는 매우 깊은 유대를 만들어가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거센 풍파에서 슬기로운 조타(操舵)를 하지 못하면 위험한 상황에 들 수도 있다. 이런 길목에서는 아무래도 전략적인 사고가 필요하다.

내 눈앞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미래의 상황을 이야기하는 단어 중 하나가 원경(遠景)이다. 그에 비해 가까운 곳, 바로 목전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말할 때는 근경(近景)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둘 모두 중요하다. 눈앞의 상황에 매달려 먼 곳의 시야를 놓칠 수 없고, 멀리 바라보느라 밑에 숨겨진 함정에 발을 디뎌도 낭패다.

전략을 다루는 당국자들, 한국의 사회경제 및 안보 상황에 함께 귀를 기울여야 할 일반인들에게도 다 중요한 일이다. 가깝고 먼 곳에 두루 조심스러운 눈길을 두려면 우선 신중해야 한다. 이 점에서 행정당국이나 사회의 구성원 모두 예외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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