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7.13 15:15
흰모래가 깔린 해변 모습이다. 1호선 역 소사는 흰모래가 발달한 지형의 특성을 따라 지은 역명이다.

순우리말 지명인 소사, 또는 소새에서 비롯했다고 한다. 그러나 순우리말 소사와 소새가 무엇을 정확하게 가리키는지는 분명치 않아 보인다. 단지 소사와 소새라는 순우리말이 모래가 많은 땅 정도의 뜻이었다는 추정이 붙어 있다.

이 지명은 경기도 평택과 안성 일대에서도 보인다. ‘소사(素砂)들(판)’ 또는 ‘소사평(素砂坪)’으로 나오는데, 임진왜란(壬辰倭亂) 당시 명나라 병사가 이곳에서 왜군을 크게 무찔렀다는 기록이 있다. 그런 전쟁터였던 소사들, 소사평보다 경기도 부천의 소사는 나중에 등장하는 지명이다. 일제강점기였던 1931년에야 정식으로 ‘소사’라는 이름을 얻어 읍(邑) 단위의 행정구역으로 처음 자리를 잡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은 일찌감치 모래가 많았던 지역이어서 ‘소사’라는 이름값에 부응했을 것으로 보인다. 정식 행정구역 명칭을 얻기 전에도 이곳은 흰 모래가 많아 그런 이름으로 불렸다는 것이다. 素砂(소사)라는 한자 이름 자체가 흰색을 뜻하는 素(소)에 모래를 가리키는 砂(사)라는 글자로 이뤄져 있다.

이 素(소)라는 글자, 색깔을 가리킬 때는 흰색이다. 의미로서의 흰색은 무얼까. ‘바탕’을 이루는 색이다. 흰색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지, 빨강·노랑·까만색의 도화지에 그림을 그릴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그로부터 뜻이 더해진 게 ‘바탕’이라는 새김이다.

우선 색깔로서의 素(소)라는 글자를 살피자. ‘전설 따라 삼천리’ 등 귀신이 자주 나오는 TV 드라마에 ‘여성’ ‘원한’ ‘죽음’ 등의 이미지로 등장하는 귀신이 있다. 그 귀신이 입는 옷, 하필이면 꼭 흰색의 옷이다. 우리는 그를 소복(素服)이라고 지칭한다. 하얀 색깔의 옷이 곧 素服(소복)이다. 마찬가지로 옷을 가리키는 衣(의)를 함께 붙이면 素衣(소의), 즉 하얀 옷이다.

그 하얀 옷은 결코 화려하지 않다. 따라서 素(소)라는 글자는 ‘화려하지 않은’ ‘장식이 없는’ ‘치장이 별로 들어있지 않은’ 등의 형용사적 의미도 얻는다. 꾸밈새 없는 사람을 우리는 “소박하다”고 하는데, 그 소박은 한자로 素朴이다. 고기나 특별한 양념 등을 넣지 않고 밀가루로 만든 면을 사용해 끓여내는 국수를 우리는 소면(素麵)이라고 한다.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그래서 이 글자 素(소)는 ‘흰색’이자 ‘꾸밈이 없음’, 한 걸음 더 나아가 ‘사물의 원래 바탕’이라는 뜻을 모두 지닌다. 대표적인 경우가 원소(元素)다. 화학적 성분을 따질 때 그 바탕 물질을 이루는 것을 가리키는 용어다. 사람의 바탕은 무어라고 일컬을까. 바로 소질(素質)이다. 두 글자 모두 타고난 그 상태의 모습을 가리킨다. 그래서 ‘바탕+바탕’의 뜻이니 결론은 ‘큰 바탕’일 수밖에 없다.

“저마다 타고난 素質(소질)을 개발하여…”라고 하는 3공화국 당시의 ‘국민교육헌장’에 나오는 말을 상기하면 좋다. 그 ‘바탕’을 가리키는 말은 무수히 많다. 우리가 숨을 쉬며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큰일 날 산소(酸素)를 비롯해 탄소(炭素)와 질소(窒素) 모두가 그렇다. 색을 이루는 바탕은 곧 색소(色素), 소리의 바탕은 음소(音素)다. 중요한 성분은 뭔가. 바로 요소(要素)다. 커다란 변화 없이 늘 그렇게 생활해왔던 일반적인 시간? 이를 우리는 평소(平素)라고 적는다. “평소에 연락도 안 하던 녀석이…”라며 끌탕을 칠 때 쓰는 단어 말이다.

성어로 소개할 만한 게 하나 있다. 시위소찬(尸位素餐)이다. 尸位(시위)라는 단어는 어렵게 여길 필요 없다. 옛 동양의 제사 등에서 신(神)의 대역을 맡는 사람이다. 제사 상 한가운데에 있는 신의 자리에 앉으니 별로 할 일이 없다. 그저 사람들이 올리는 제물(祭物) 등을 받아먹으면 그만이다. 그냥 하릴없이(素) 먹는(餐)일이 그의 직책이다. 이만큼 편하고 좋은 자리가 있을까.

색깔로 따질 때 素(소)가 흰색을 가리킨다는 점은 먼저 얘기했다. 그러니 색깔을 두고 볼 때 素(소)는 흰색의 白(백)이라는 글자와 같다. 이 白(백)이라는 글자는 때로 ‘아무것도 제대로 하지 않는’ ‘그저 놀고먹는’ ‘아무것도 없는’의 뜻도 있다. 우리가 그런 사람들을 흔히 백수건달(白手乾達)이라고 일컫는 경우를 떠올리면 좋다. 尸位素餐(시위소찬)에서의 素(소)도 백수건달을 가리킬 때의 白(백)과 같다. 그저 먹기만 하면 그만이다.

위로는 국사(國事)에 전념치 않고, 아래로는 민초들의 삶만 망치는 그런 정치인들을 우리는 尸位素餐(시위소찬)의 사람들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또 제 자리와 승진에만 급급해 민생에는 관심이 없는 공무원들도 이런 행위의 주체다. 그러니 그런 이들에게 “尸位(시위)에서 素餐(소찬)만 하지 말고 직무에 신경 써라”라고 충고할 때 이 성어 쓰임새가 제법 좋다.

素砂(소사)의 다음 글자 砂(사)는 沙(사)라는 글자와 같다. 모두 ‘모래’를 가리킨다. 모래로 이뤄진 땅, 우리는 그를 ‘사막’이라고 부르며 한자로는 沙漠이라고 쓴다. 모래 언덕은 사구(沙丘)다. 素沙(소사)도 흰 모래지만, 白沙(백사)도 역시 흰 모래다. 누런 모래 바람을 우리는 黃沙(황사)라고 적는데, 중국에서 많이 날아와 한반도의 골칫거리로 등장한 지 오래다.

모래가 무너지기 시작하면 마구 무너진다. 그런 모습을 우리는 사태(沙汰)라고 하는데, 눈 때문에 그런 현상이 벌어지는 일이 눈사태(沙汰)다. 열사(熱沙)라는 말도 한때 유행했다. 뜨거운 모래라는 뜻이다. 그런 모래가 있는 곳이 중동과 아프리카의 사막이니, 우리는 그곳에서 일하던 우리 근로자들을 형용할 때 “熱沙(열사)의 沙漠(사막)에서…”라며 서두를 꺼낸 적이 있다.

해변이나 강가에 있는 모래사장, 우리가 많이 찾는 곳이다. 순우리말 ‘모래’와 그것이 깔려 있는 장소라는 뜻의 사장(沙場)이 중첩해서 이뤄진 단어다. 초가(草家)라는 집에, 다시 ‘집’을 얹어 사용하는 ‘초가집’과 같은 구조다. 역전(驛前)이라는 역 앞에 다시 ‘앞’을 덧댄 ‘역전앞’과 같은 짜임이다.

그나저나 素砂(소사) 일대는 복숭아로 유명했다. 지금은 부천과 어울려 제법 그럴듯한 도심을 형성하고 있지만, 전철이 다니기 전의 이곳은 복숭아밭과 그 꽃이 필 때 몰려드는 청춘남녀로 유명했다. 낭만과 꿈이 풍성하게 머물렀던 곳이다.

김소월이라는 시인은 많은 사람이 기억한다. 그의 필명을 한자로 옮기면 金素月이다. 여기에도 素砂(소사)의 素(소)가 들어간다. 素月(소월)이라고 적었으니 색깔을 가리키는 의미다. 흰 달이다. 눈이 부시도록 빛나는 달이다. 그의 ‘엄마야 누나야’라는 시를 기억하시는 분 많을 게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금모래 빛, 아마 살구나무 가득 키워내는 素砂(소사)의 흰모래도 그 빛이 아니었을까. 노란 햇빛을 받아 금빛을 내는 그런 모래. 바탕이 희니 모든 것을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바탕은 그래서 중요하다. 희어서 모든 것을 품는 그런 바탕 말이다. 살구나무 동네에서 키워보는 ‘바탕’에 관한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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