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유경기자
  • 입력 2016.07.16 08:45
신촌 지하철역 벽면에 중국팬들이 가수 정용화의 생일을 축하하는 메시지를 담은 영상이 나오고 있다.
<사진출처=sidushq 트위터>

[뉴스웍스=김유경기자]

# 지난 15일 젊은 유동인구가 많은 신촌 지하철역. 벽면에는 아이돌 그룹 씨엔블루의 멤버 정용화의 영상이 시선을 잡아끈다. “너를 만난 것은 행운입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중국어로 팬클럽 이름이 씌어 있다. 잠시 후 중국인 관광객으로 보이는 젊은여성 몇명이 지나가다 광고 영상을 보고 환호하며 앞다퉈 사진을 찍어댄다.

# 방영중인 KBS 2TV 드라마 ‘함부로 애틋하게’의 제작발표회장은 화환으로 가득했다. 특히 배우 김우빈에게 태국 팬클럽이 보낸 쌀화환이 돋보였다. “곧 태국에서 만나요”라고 쓰인 화환 리본에, 대형 사진에는 태국 국기가 붙어 있었고 167kg의 쌀포대가 두둑이 쌓여있었다. 한류스타가 등장하는 이벤트나 공연장에 해외팬들이 보낸 쌀 화환은 이제 더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 TV 예능프로그램 '런닝맨'의 해외 팬들은 지난 11일 청라국제도시 인근 수도권매립지에 ‘런닝맨숲’이 조성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런닝맨이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중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대만 등 아시아 국가뿐 아니라 미국, 캐나다, 브라질, 독일 등 무려 20개국의 팬들이 참여했다. 방송 6주년을 기념, 폐기물로 인해 버려진 땅의 생명력을 복원하기 위해 나섰다. 

국내에서 이미 팬덤문화로 자리잡은 '조공 문화'가 한류 확산에 힘입어 해외 팬들에까지 확산되고 있다.  더욱이 최근들어서는 해외 팬들도 단순한 선물 제공에서 벗어나 공공장소 광고, 기부, 숲 조성 등 다양한 방법으로 조공문화가 진화하고 있다.

‘조공’의 사전적 의미는 역사적으로 종속국이 종주국에 때를 맞춰 예물을 바치던 일을 뜻하지만 최근에는 팬이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들에게 자발적으로 선물을 ‘갖다바치는’ 행위를 뜻하는 은어로 널리 쓰이고 있다.

특히 해외 팬들은 물리적으로 먼 거리에서 한류 스타들을 접하다 보니 무언가 의미를 남길 수 있는 이벤트를 더욱 선호하는 방향으로 팬덤문화가 형성되고 있다. 해외 팬들도 초기에는 개인적인 선물을 보내는 게 고작이었으나 한류가 스쳐지나가는 바람이 아닌, 두터운 팬층을 형성하면서  스타의 이미지를 높일 수 있고 공익까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팬덤 문화를 선보이게 된 것이다. 

지하철벽 간판이나 스크린도어에는 정용화뿐 아니라 한류스타들의 생일을 축하하거나 앨범 발매일, 출연 드라마 시작일에 맞춰 광고가 걸리는 일이 다반사다. 자세히 보면 중국어나 일본어로 한류스타에 대한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경우가 많다. 해외 팬클럽·팬사이트에서 제작을 의뢰한 것이다. 지하철역에 광고를 게재하면 자신들의 '팬심'(스타에 대한 애정)이 유형의 실물로 쓰임새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고 대중에게 노출을 통해 스타에 대한 팬들의 지지세를 과시하는 용도로도 활용 가능하다.

쌀화환 역시 스타가 새로 시작하는 활동을 널리 알리는데 힘을 보태고자 하는 팬심이 들어있기는 마찬가지다. 대신 기존의 화환이 일회성인데 비해 쌀화환은 불우한 이웃에 기부함으로써 스타의 이미지를 한층 더 좋게 만드는 효과를 낼 수 있다.

기금을 모금해 스타의 이름으로 조성하는 스타숲은 훨씬 더 공익지향적이다. 2012년부터 현재까지 국내외에 79개가 조성됐는데 이 가운데 40%가 중국, 프랑스, 멕시코 등 해외 팬들이 참여했다. 스타숲 조성 업체 '트리플래닛' 홍보팀의 이재은 씨는 “숲은 팬들이 스타를 향한 마음처럼 영원히 변치 않는다는 의미가 있으며 환경 보호에도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 보람을 느낄 수 있어 많이 참여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 씨는 "얼마전 호콩, 일본 등에서 온 일부 팬들은 숲을 방문해 나무가 잘 자라는지 확인하고 주변 청소를 하고 갔다"고 귀띔했다. 

팬들이 조성한 숲으로는 서울 마포구 월드컵공원에 '찬열숲' (찬열 중국 팬클럽), 강동구 고덕천 인근의 '월요커플숲' (월요커플 해외 팬클럽) 등이 있으며 여성그룹 2NE1의 팬클럽은 지난 2012년 아프리카 남수단 톤즈에 1200여 그루의 망고나무를 심어 망고나무숲을 만들기도 했다.  남수단 망고숲은 현지인들이 무더운 날씨를 피해 나무 그늘에서 쉬는 장소이기도 하고 기아를 해소하는데도 쓰이고 있다.

이같은 해외 팬들의 조공문화 진화는 팬들이 스타의 활동에 열광하는 일방적인 관계에서 벗어나 팬들도 자신들의 영향력을 스타에게 미칠 수 있는 쌍방향 관계로 전환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 가능하다. 특히 해외 팬층이 두터워질수록 팬들의 영향력이 커지고 스타는 다국적 팬들의 눈높이와 기대에 부응하려 한다는 점에서 발전적인 방향으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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