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7.19 17:27
중국의 세한도(歲寒圖)다. 추사 김정희가 그린 작품도 매우 유명하다. 날씨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의 꿋꿋함을 알아볼 수 있다는 내용이다.

원래의 순우리말 이름은 ‘솔안말’ 이었으리라고 추정한다. ‘솔’은 곧 한자로 소나무를 가리키는 송(松)이고, ‘안’은 내부를 지칭하는 한자 내(內), 거기다가 ‘마을’의 준말 형태인 ‘말’이 붙었을 테다. 그래서 ‘솔안말’을 한자로 옮기면 松內里(송내리)다. 일제강점기였던 1914년에는 부천군 계남면 구지리(九芝里 또는 仇之里)였다가 1970년대 부천이 시로 승격하면서 ‘송내(松內)’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이 솔이 곧 소나무, 즉 한자로 松(송)이다. 한자 松(송)에는 ‘나무(木) 중 지위가 높은 사람(公)’이라는 뜻이 들어 있다고 하는데, 그 유래는 분명치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나무가 차지하는 위상은 제법 높다. 사시사철 푸르른 상록(常綠)의 나무인 데다, 자라나는 모양이 멋져 보여 그렇다. 아울러 그 목재의 용도가 높아 사람들에게는 분명 좋은 인상으로 받아들여지는 나무다.

이 솔은 우리 한반도에서 분포 면적이 가장 넓은 나무다. 가장 고르게 분포하며 자라니 한반도를 대표하는 몇 안 되는 나무 중의 하나임에는 분명하다. 더 눈여겨볼 대목은 이 나무의 ‘덕성(德性)’이다. 소나무는 남에게 자리를 비켜주는 나무다. 나 아닌 남에게 자리를 내준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

소나무는 척박한 곳에서도 잘 자란다. 물기가 적은 곳, 토질이 빈약한 곳에서도 뿌리를 잘 내리면서 왕성한 생명력을 자랑한다. 그럼에도, 나 아닌 남의 다른 식생(植生)이 자리를 뻗어오면 그곳에서 물러날 줄도 안다. 그래서 소나무는 비탈진 곳, 험한 바위가 뻗어나가는 산의 능선에서 자라 우리의 눈에 자주 들어온다.

늘 푸른 상록은 그 절개를 상징한다고 여겨져 소나무는 옛 선비들의 친구로 자리를 잡기도 했다. 조선의 3대 시가 시인이라고 일컬어지는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는 작품 ‘오우가(五友歌)’에서 소나무를 눈서리에 굽히지 않는 꿋꿋함의 상징으로 예찬했다.

사실 이 지명은 우리나라에 아주 많다. 한반도 곳곳에서 松內(송내)라는 지명이 많은 이유는 간단하다. 그만큼 소나무가 우리의 생활에 바짝 붙어 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자란 사람들에겐 동네 입구나 조금 높은 언덕에 홀로 서있는 소나무가 친구처럼 반갑다. 웬만한 한반도 산의 절벽 등지에 우뚝 서 있는 낙락장송(落落長松)은 늘 우리의 눈길을 끌었다. 가지가 축축 늘어진 키 큰 소나무, 그 낙락장송 말이다.

아울러 무덤 옆을 지키는 나무로도 많이 쓰였다. 심지어 이승에서 저승으로 떠난 몸을 감싸주는 관재(棺材)로도 이 소나무가 자주 쓰였으니, 어쩌면 이 나무는 한반도 사람들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나무임에 틀림없다. 소나무는 한반도와 중국 동북부, 그리고 일본 일대에 주로 퍼져 살았다.

지금의 중국 땅에서 살았던 공자의 눈에도 그 소나무가 훌륭해 보였던 모양이다. 그는 <논어(論語)>에서 “날씨가 차가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의 시들지 않음을 알 수 있다(歲寒然後知松栢之後凋)”라고 했다. 날(歲)이 추워진(寒然) 뒤(後) 소나무와 잣나무(松栢)의(之) 뒤늦게(後) 시듦(凋)을 알다(知)의 구성이다.

이 孔子(공자)의 언급을 그림으로 그린 게 ‘세한도(歲寒圖)’다.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의 작품 말이다. 가파른 언덕에 차가움을 머금고도 꿋꿋하게, 그리고 힘차게 서 있는 그 김정희의 소나무 그림은 조선의 많은 그림 중에서도 최상의 수준에 들어 있는 문인화(文人畵)로 꼽힌다.

남에게 자리를 비켜주고, 그리고 홀로 척박한 땅으로 옮겨가서도 제 꼿꼿함을 이어가는 소나무의 덕성을 살폈다. 소나무는 아울러 바람과 함께 몰아치는 눈서리의 풍설(風雪)에도 굽히지 않는 완강함까지 품었다. 모든 시련에도 굴하지 않고 오늘의 대한민국을 이룬 한반도의 사람들이 어쩌면 그와 꼭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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