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7.20 13:05
남송 때의 애국 시인 육유의 화상이다. 산궁수진(山窮水盡)이라는 한자 성어가 등장하는 시를 지은 것으로도 매우 유명한 인물이다.

마음이나 의지, 뜻이나 생각을 일컫는 한자가 정신(精神)이다. 자주 쓰는 말이어서 달리 풀이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그러나 글자의 조합을 따지는 일은 간단치 않다. 앞의 精(정)은 아주 미세한 것이라는 새김과 함께 가장 빼어난 그 무엇을 가리킨다.

뒤의 神(신)은 영혼을 가리키는 맥락의 새김과 함께 마음, 의지, 뜻을 담은 글자다. 따라서 정신(精神)은 사람이 품고 있는 가장 중요한 생각이나 마음 등을 의미하는 글자 조합이라고 볼 수 있겠다. “정신이 글러먹었어”라며 끌탕을 칠 때가 그런 경우다.

좋아서 자주 새기는 시구가 있다. 남송(南宋)의 문인 육유(陸游) 작품이다. “산으로 물로 막힌 곳에서 더 이상 길이 없을까 했더니, 버드나무 그늘에 밝게 핀 곳 너머 다른 마을 하나(山窮水盡疑無路, 柳暗花明又一村)”라는 구절이다.

정처를 달리 두지 않고 길을 나선 시인이 다다른 아주 험한 곳의 설정이 보인다. 그곳에서 시인의 눈길은 버드나무 그늘을 향하다가 그 뒤편에 있는 밝은 꽃, 다시 그 너머의 마을에 닿고 있다. 경물을 묘사한 듯 보이지만, 실제는 마음이나 의지가 새로운 경계를 향해 움직이는 상황을 가리킨다. 아주 험한 곳에까지 이르러서도 다시 열어가는 새로운 경지다.

이를 테면 정신의 고양(高揚)이다. 멈추지 않고 새롭고 뜻 깊은 곳으로 나아가는 마음, 의지 등을 표현하는 구절이기도 하다. 백척간두(百尺竿頭)라는 성어도 속뜻은 마찬가지다. 우리는 매우 위험한 상태를 말할 때 이 성어를 쓰지만 원래 뜻은 다르다.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가 원래 형태의 성어다. 아주 높은 장대에 올라가서도 다음 한 걸음을 내딛어 넓고 장한 경계로 나아가는 행위다. 불가(佛家)에서 수련의 과정을 이야기할 때 자주 썼던 말이다. 순일한 마음으로 일탈과 방종의 욕망을 잠재우며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정진(精進)의 마음 바탕이다.

그러고 보니 정신(精神)이나 정진(精進)에 다 精(정)이라는 글자가 있다. 작고 미세한 것을 가리키는 맥락으로 만든 단어는 정밀(精密), 정치(精緻), 정교(精巧) 등이 있다. 빼어나고 뛰어난 것의 의미 흐름으로는 정수(精髓), 정기(精氣), 정성(精誠) 등이 있다.

그 가운데 나중의 맥락, 즉 빼어나고 뛰어나다는 의미에서 중국인들은 사회 엘리트를 精英(정영)으로 적는다. 그렇다. 요즘 우리사회 엘리트들이 정말 문제다. 높은 학력과 이력으로 사회 고위층에 오른 사람들의 행태는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청와대 수석, 게임업체를 키워 거부의 반열에 오른 기업인, 사회정의 구현에 앞장서야 할 검찰의 검사장…. 이에 앞서 대우조선을 통해 공적 자금을 횡령하는 데 앞장 선 기업 엘리트도 마찬가지다. 여의도에 입성한 정치 엘리트들이 벌이는 ‘사고 행렬’은 늘 끝이 없다.

이들은 나름대로 정진을 했을 테다. 좋은 학벌에 어엿한 직장을 가지려고 말이다. 그러나 다음이 문제다. 사악한 탐욕의 길에 들어서 무한정 질주를 하다가 이제 모두 사법(司法)의 심판대 위에 올라섰거나 올라설 처지다.

탐욕의 길에서 매진하고 정진한 사회의 정영, 엘리트들이 그려내는 대한민국 사회의 모습이 참 어둡다. 이들에게 나라 운영의 주요 영역을 맡겨야 하는 시대의 슬픔이 짙다. 마음가짐의 큰 바탕, 정신이 글러 먹었으면 그 나아가는 방향이 옳을 수 없다. 우리가 앞으로도 얼마나 많은 거짓과 탐욕의 엘리트에 시달려야 할지 가늠조차 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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