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16.07.21 17:39
사랑이 결혼의 전제다. 그 사랑의 감정이 없는 결혼은 의미가 없다. 동양사회의 규범에 맞지 않는 행위를 두고 '불륜'의 단어를 남발하는 일은 재고해야 할 행위다.

영화감독 홍상수와 영화배우 김민희의 로맨스에 매스컴이 뜨겁다. 내가 하는 로맨스가 아닐지라도 그들을 불륜이라 할 수 없다. 혹 ‘화장실삽입마’라는 별명의 한류스타 박유천 사건 이후로 뭔가 덮고 싶은 게 있는 건 아닐까 의심해 보지만 그보다는 순수한 맘으로 세상을 보고자 한다.

불륜이라는 낙인은 세상을 재미없게 만드는 가장 악랄한 테러무기다. 자유 민주사회에서는 공공도덕이나 법만 지킨다면 자유롭게 자기를 표현할 수 있다. 여기에 전통이라는 유교는 자유와 민주 위에 슬쩍 인륜(人倫)을 올려놓는다. 풍속이나 전통으로 포장하지만 내용물은 인륜이다. 즉 유교의 입장에서 자유, 민주도 인륜에 어긋나면 불륜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근대화하면서 생긴 모든 사건은 다 불륜이었다. 자유, 민주주의, 평등, 정의, 자본주의가 다 불륜이라는 것이다. 20세기 초 대한 제국에서 신분제를 철폐하면서 불륜에 대한 불평이 나오기 시작했다. 반상(班常)의 차별이 엄연한데 상것들이 감히 양반과 대등하게 머리를 들고 다닌다는 불만이나,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신분에서 가장 천한 상인들이 득세한 것은 불륜을 넘어 말세라고 했다. 게다가 여학생이라니! 내외(內外)의 질서에서 여자는 밖으로 나올 수 없었다. 그러니 여학생 자체가 불륜이다. 불륜이기에 양반집 규수는 여학교에 가지 않았다.

여학생이란 이전에는 듣도 보도 못한 완전한 신제품이었다. 조선역사에 여학생이 있어본 적이 없었다는 말이다. 집안에 묶이지 않고 교복차림으로 자유롭게 얼굴을 드러낸 여성은 한 순간 모든 남자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모든 남학생의 마음 속 로맨스도 집에서 정해준 혼처가 아니라 여학생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여학생이 있었기에 자유연애도 가능했다는 말이다. 자유연애, 연애결혼이 바로 불륜의 시작이다.

연극 <경성에 딴스홀을 허하라>는 1937년 실제 있었던 ‘딴스홀 청원서 사건’을 모티브로 한 창작 연극이다. 일본 총독부가 시국이 불안정하다는 이유로 조선의 딴스홀을 금지시켰던 황당한 사건에 맞서기 위해 딴스 경연대회를 연다는 내용이다. 댄스홀에서 춤이라는 건 남자끼리 추는 게 아니다. 청춘남녀의 일이다. 부부가 가는 경우도 흔치 않다.

치마저고리가 아닌 스커트를 입은 모단(modern)걸, 딴스에 커피와 맥주를 즐기던 모단보이, 정략결혼 대신 연애결혼을 선택한 자유연애주의자, 자본주의시대의 지식인, 자유와 평등을 내세운 새 시대의 군상들이 모인 곳이 바로 딴스홀이었다. 당연히 딴스홀은 그 자체로 불온 세력의 온상이자 불륜의 집합처였다. 그러나 달리 말하면 우리가 원하는 자유와 즐거움이 가득한 곳이었다.

홍상수와 김민희의 로맨스 역시 따지고 보면 자유연애의 맥락이다. 때문에 유교적 입장에서 보자면 불온한 불륜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결혼을 받드는 도덕을 짚어 볼 필요가 있다. 결혼은 사랑하는 사람이 법적으로 결합하는 행위다. 남녀가 되었든 다른 방식이 되었든 사랑이 우선이다. 결혼이라는 법적인 형식보다 사랑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결혼은 껍데기다. 현대 자유주의 세계에서 사랑이 없다면 결혼의 의미는 반감한다. 하지만 유교전통은 결혼에 주목하여 불륜을 판결하려고 한다.

사랑은 나이, 학력, 국경을 초월한다고 한다. 지금 홍상수와 김민희가 비난 받고 있듯, 국제결혼도 곱지 못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바로 이 사이를 비집고 불륜이라는 이름의 종족주의, 연령주의가 끼어들어오는 것이다. 전통이라는 이유로 인륜의 선입견이 개입하는 순간 더 이상 사랑은 순수하지 않다. 계급, 학력, 종족, 나이, 국적이라는 선입견을 통과한 사랑을 순수하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유교는 자유와 민주 위에 슬쩍 부자(父子), 부부(夫婦), 장유(長幼), 붕우(朋友) 그리고 군신(君臣)간의 의리라는 인륜(人倫)을 올려놓는다. 즉 법과 도덕도 인륜 아래라 한다. 인륜을 어기면 법도 불륜이다. 그래서 자기가 말하는 인륜의 위반자를 배우지 못한 쌍것이나 무도(無道)한 짐승으로 몰아세운다. 인륜은 구조상 가족이나 조직에 대한 충성과 의리를 내세운다. 내부문건유출 사건이 생기면 내세우는 ‘의리’ 논리가 그것이다.

불륜이 바로 깡패윤리다. 그래서 인륜-불륜 놀이는 재미없다. 이제 그만 둘 때도 됐다. 사랑의 이름으로 보라. 홍상수 김민희는 사랑이다. 불륜 아니다. 정의의 이름으로 보라. 내부문건 유출은 배덕(背德)이 아니다. 건강한 민주사회를 위해 필요한 정의의 실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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