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5.11.05 16:50

중국 공산당의 자신감일까, 우려일까...큰 기대는 어렵지만 의미 있는 만남

1945년 중국 서남부 대도시 충칭에서 처음 만나 국공협상을 벌였던 장제스(오른쪽)과 마오쩌둥(왼쪽).

호칭이라는 게 어느 정도의 관성을 지닌다. 중국과 대만을 함께 일컬을 때 중국이 먼저다. 대만은 반드시 뒤다. 그러나 중국을 통치하고 있는 공산당, 예전 대륙을 지배했던 국민당을 순서대로 일컬을 때 일반 중국인들은 국민당을 먼저, 공산당을 나중에 세운다. 이른바 국공(國共)이다.

과거의 중국, 그러니까 1930년대부터 1949년까지 중국을 사실 상 지배했던 당은 국민당이다. 그 지배 기간의 대부분 시간 동안 국민당의 최고 지도자는 장제스(蔣介石)였다. 따라서 과거 국민당하면 우선 떠오르는 인물이 장제스다. 

그 대척점에 서있던 유력한 경쟁자, 중국 공산당의 대표적 인물은 새삼 거론할 것도 없이 마오쩌둥(毛澤東)이다. 장제스와 마오쩌둥이 옥신각신하면서 대륙의 패권을 다퉜던 과정은 우리에게 제법 상세하게 알려져 있는 편이다. 국민당과 공산당 사이에 벌어졌던 싸움이 국공내전, 둘이 벌였던 협상이 국공담판이다.
 
두 사람이 직접 만난 적이 있다. 1945년이다. 힘으로 월등하게 상대를 압도했던 국민당의 기운이 점차 꺾이던 무렵이었다. 장소는 중국 서남부의 대도시 충칭(重慶)이다. 별다른 성과 없이 끝났지만 대륙 패권을 두고 두 당의 정상이 만난 것 자체가 커다란 화제였다. 

11월 7일 그 공산당과 국민당 최고 지도자의 후배들이 서로 만난다. 주역은 중국 공산당 총서기이자 국가 주석인 시진핑(習近平)과 국민당 출신 대만 총통 마잉주(馬英九)다. 1945년 장제스와 마오쩌둥의 만남 이래 70년 만에 벌어지는 국공 최고 지도부의 회동이다. 돌발뉴스에 해당할 만큼 깜짝 놀랄 만한 소식이다.

우선 중국의 자신감과 우려가 동시에 엿보인다. 자신감은 기왕에 중국 공산당이 펼쳐왔던 ‘하나의 중국(一個中國: 세계에는 중국 공산당이 이끄는 중화인민공화국 외에 달리 중국이 없다는 주장)’ 원칙이 이제는 확고한 사실로 자리를 잡았다는 공산당의 현실 인식에서 나올 듯하다. 따라서 그에 매달려 ‘또 다른 중국’을 주장하는 대만의 국민당과 최고 정상회담을 기피할 이유가 없다고 본 것이다. 

우려가 있다면, 아마도 대만 국민당이 곧 권력 정상을 라이벌인 민진당에게 내줄지도 모른다는 상황 판단에서 나올 것이다. 현 국민당 소속의 마잉주 총통은 인기가 별로다. 내년 1월 총통 선거에서 국민당은 인기 하락으로 민진당에 정권을 내줄 공산이 매우 크다. 

친 대륙적 성향을 지닌 국민당이 물러서고 그 반대 취향인 민진당이 들어서면 대만의 향배는 대륙에 등을 돌리고 미국으로 기울어질 가능성이 높다. 남중국해 문제 등을 두고 미국과 새로운 차원의 갈등 국면으로 들어선 중국의 고민이 깊어지는 이유다. 그런 점에서 시진핑 총서기가 주요 대외정책의 틀을 건드릴지도 모를 ‘하나의 중국’이라는 틀을 넘어 선뜻 대만 국민당 출신의 총통과 만나는 경우일 수도 있다. 

마잉주 대만 총통의 인기는 취임 이래 줄곧 하강세였다. 돌이킨 적이 거의 없을 정도로 그랬다. 지금도 인기는 바닥 수준이다. 중국과의 급격한 교류 폭 확대, 그로 인한 대륙 경사론 등으로 여론의 화살을 맞았기 때문이다. 내정에서도 돌파 국면을 만들지 못해 잘 생긴 외모에도 불구하고 인기는 정말 별 볼 일 없었다. 

그런 마잉주 또한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 하나는 연출하고 싶었던 듯하다. 70년 만의 최고위 국공 담판이라는 장소에서 주역으로 이름을 남기기를 바랐을 것이다. 일단은 그런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듯하다. 그로써 세계가 주목할 역사적 재회(再會)의 장면이 곧 나온다. 그러나 전략과 정략적 이해에 부합할 만한 실질적인 성과가 나오리라는 기대는 아직 섣부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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