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벼리기자
  • 입력 2016.07.24 10:43

[뉴스웍스=김벼리기자]

“자기 자신을 만드는 물체를 만들 수 있을까(Can we make things that make themselves)?”

지난 2011년 2월 TED 강연에서 스카일러 티빗츠(Skylar Tibbits) 미국 MIT 자가조립연구소 소장이 이같은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2013년 4월. 티빗츠 소장은 2년 전 자신이 던진 수수께끼 같은 이 문제의 실마리를 스스로 구한 뒤 TED 연단에 다시 올라섰다. 이날 그는 ‘4D 프린팅의 출현(The emergence of 4D printing)’이라는 주제로 4D 프린팅 기술을 세상에 처음 공개했다.

4D 프린팅이란 무엇이며 3D 프린팅 기술과는 어떤 변별점이 있을까. 4D 프린팅 기술을 둘러싼 이슈들을 전반적으로 살펴본다.

지난 2013년 4월 스카일러 티빗츠(Skylar Tibbits) 미국 MIT 자가조립연구소 소장이 ‘4D 프린팅의 출현(The emergence of 4D printing)’이라는 주제로 한 TED 강연에서 4D 프린팅 기술을 세상에 처음 공개했다. <사진출처=TED 홈페이지 캡쳐>

◆3D 프린팅 기술 갈 길도 아직 먼데…4D라고?

현재 3D 프린팅의 기술 진보는 이미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

기술 개발 초기에는 시제품(試製品) 정도를 제작하는 것이 고작이었지만 이제는 완제품도 큰 무리 없이 제작할 수 있다. 또한 소재에서도 기존에는 플라스틱을 쓰는 것이 전부였지만 요새는 고무, 금속, 세라믹, 심지어 식재료까지 이용할 수 있다. 특히 최근에는 제작비 절감으로 판매가격도 점차 내려가고 있어 조만간 ‘1가구 1 프린터’ 시대가 올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 3D 프린팅 기술에는 허점이 많으며 상용화까지 갈 길도 여전히 멀다. 현재 국내에 배치된 가정용 3D 프린터가 1000대 정도라고는 하지만 약 5000만명에 달하는 전체 인구를 염두에 두면 미미한 수준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4D 프린팅이라는 새로운 기술이 떠오른 것은 무슨 까닭일까.

답은 간단하다. 3D 프린팅 기술의 개념적 한계 때문이다. 달리 말해 아무리 3D 프린팅 기술을 완벽하게 구현한다고 할지라도 끝내 도달하지 못하는 지점이 있기 때문이다.

건설이 대표적인 예다. 3D 프린터로는 결코 집을 ‘뚝딱’ 만들어 낼 수 없다. 물론 집보다 큰 3D 프린터를 제작한다면 가능할 수 있다. 그러나 천문학적 비용이 들기 때문에 경제적 유인은 ‘제로’에 가깝다. 그나마 현실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식은 ‘조립’이다. 작은 부품들을 프린터로 제작해서 사후에 직접 끼워 맞추는 식이다. 그러나 이렇게 집을 제작한다면 3D 프린터의 효율성은 빛을 바랠 수밖에 없다.

4D 프린팅 기술의 핵심인 형상기억합금은 주변 환경에 따라 형상이 바뀌는 소재다.

◆4D 프린팅이란?...'시간'까지 포함한 개념

이런 3D 프린터의 결정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이 4D 프린팅이라는 것이다. 

우선 3D 프린팅와 4D 프린팅의 결정적 차이, 즉 4차원이라는 개념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1차원은 ‘선’이고 2차원은 ‘면’이다. 평면인 종이에 인쇄하는 일반적인 프린터가 2차원에 해당한다. 3차원은 ‘입체’다. 여기까지 이르면 모든 공간은 설명가능해진다. 그러므로 4차원은 공간을 넘어서는 어떤 것까지 포함하는 개념이어야 한다. 바로 ‘시간’이다.

이렇게 보면 4D 프린팅이란 시간을 인쇄하는 기술이다. 그러나 물론 문자 그대로 시간을 ‘인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신 4D 프린팅은 시간을 ‘활용’한다.

4D 프린팅 기술의 핵심은 형상기억합금이라는 물질이다. 형상기억합금이란 쉽게 말해 주변 환경에 따라 형상이 바뀌는 소재를 말한다.

4D 프린팅은 이러한 형상기억합금을 3D 프린팅을 활용해 출력하는 기술이다. 인쇄한 제품은 특정 형태로 고정돼있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가변형(self-transformation) 또는 자가조립(self-assembly)을 통해 모양을 달리한다. 이것이 ‘4D 프린팅은 시간을 포함한다’라는 것의 참의미다.

이런 4D 프린팅의 개념은 아직 낯설지만 이미 해당 기술을 활용해 제품을 만들고 있는 사례도 있다.

미국의 디자인 업체인 너브스 시스템(Nervous System)의 ‘키네마틱스(Kinematics)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4D 프린팅으로 옷과 장신구, 장식품 등을 만드는 기획이다.

실제로 너브스 시스템은 지난 2014년 처음으로 4D 프린팅을 활용해 드레스를 만들어냈다. 평면으로 인쇄하면 저절로 입체로 모양을 바꾸는 식이다. 최근에는 사용자가 직접 팔찌와 허리띠, 귀걸이 등을 디자인하고 주문하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에어버스’는 비행 환경에 따라 형태를 바꾸는 엔진 소재를 연구하고 있으며 독일의 다국적 화학 기업 ‘바스프(BASF)’도 바이오 프린팅 기술을 보유한 프랑스 스타트업 ‘포이에티스(Poietis)’와 공동으로 4D 프린팅 연구에 나섰다.

의학 분야에서도 4D 프린팅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특히 4D 프린팅을 활용하면 몸에 특정 물체를 삽입할 때 몸을 절개하는 등 까다로운 수술 절차를 건너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일정 시간이 지난 뒤 커지도록 설정한 인공조직을 아주 작게 인쇄해서 몸 안에 삽입하면 끝이다.

실제로 지난 2014년 존스홉킨스대는 몸속에서 스스로 조립해 암세포를 치료하는 마이크로 로봇을 개발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디자인 업체 너브스 시스템(Nervous System)이 4D 프린팅 기술로 만든 드레스. <사진제공=너브스 시스템>

◆4D 프린팅 시장은 ‘블루오션’…“적극적으로 투자해야”

현재 4D 프린팅 기술을 선도하는 곳은 미국이다. 그러나 기술 개발 자체가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수준이기 때문에 앞으로의 판세가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미국과학재단(NSF)은 4D 프린팅의 연구에 3000만달러(약 340억원)를 투자한 바 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도 4D 프린팅의 주요 기술을 확보하고 응용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또한 미 육군 연구국은 신소재 개발을 위해 피츠버그대, 하버드대, 일리노이대 등으로 이뤄진 공동 연구팀에 85만5000달러(약 9억원)를 지원했다.

호주 과학센터(ACES)도 4D 프린팅 기술개발에 성공했다. 이를 기반으로 뜨거운 물을 감지하면 자동으로 밸브를 차단하는 제품을 출력하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한편 한국에서는 지난해 9월 정부와 광주과학기술원이 함께 ‘4D프린팅사업단’을 출범한 바 있다. 3년간 19억원을 투입해 4D 프린팅 소프트웨어와 4D 스마트 소재 등을 개발한다는 목표로 설립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해당 사업 규모가 너무 미약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한 3년이라는 기한이 있기 때문에 연구개발이 지속적으로 이어지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3D 프린팅의 경우 한국은 초기 기술경쟁에서 밀렸기 때문에 시장 주도권을 잡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면서도 "4D 프린팅은 이제 막 개발이 시작한 ‘블루오션’이다. 또한 관련 시장이 오는 2025년에 5억5560만달러(약6390억원)까지 시장이 성장한다는 예측이 나올 정도로 유망하다. 3D 프린팅의 우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인 투자를 통해 시장경쟁에서 앞서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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