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3.06.07 16:54
ㄳ심상정(왼쪽 세 번째) 정의당 의원이 7일 '세입자를 위한 전세제도 개혁방안' 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ㄳ심상정(왼쪽 세 번째) 정의당 의원이 7일 '세입자를 위한 전세제도 개혁방안' 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뉴스웍스=최승욱 편집인] "지구촌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1위로 선정되고 있는 비엔나는 시민의 50%가 시영주택이나 진흥기금지원주택으로 구성된 임대주택에 거주한다. 소득 분위 70%까지 시장 임대료를 부과하되 각 소득 수준에 따라 주거급여를 지원한다. 한국은 소득 수준에 따라 차등적인 임대주택과 임대료를 결정함으로써 공공임대주택의 슬럼화로 인해 공공임대주택의 이미지만 악화되고 있다." (김태근 세입자 114 운영위원장·변호사)  

7일 오전 국회의원회관 제9간담회실에서 '세입자를 위한 전세제도 개혁 방안' 긴급토론회에서 나온 발언이다. 전세사기와 깡통전세 피해를 근본적으로 막으려면 오스트리아처럼 도심에 소득 분위 70%까지 자유롭게 거주할 수 있는 공공임대주택을 충분히 공급할 필요가 있다. 서울처럼 국민소득에 비해 너무 비싼 집값으로 외곽에 거주하면서 장시간 고통스런 출퇴근에 시달려야 하는 곳이 살기 좋은 도시가 될 수 있겠는가.

2021년 9월 국토교통부는 "10년 이상 장기 공공임대주택 재고가 2020년말 기준 170만가구로 재고율이 8% 수준으로 추산된다"며 "OECD 회원국 중에서 상위권에 진입했다"고 자화자찬한 바 있다. 문제는 이 수치에 전세임대와 분양전환 아파트 등 민간이 소유권을 갖거나 일정기간이 지나면 민간으로 넘어갈 주택이 들어있다는 점이다. 재건축아파트 사업시행인가 과정에서 공공임대아파트를 일정비율 의무적으로 짓게 하고 있지만 공공임대주택비율이 10%를 넘는 선진국에 비해서는 턱없이 부족한 수치다.

김태근(왼쪽부터)변호사와 이강훈 변호사, 이광수 대표가 7일 '세입자를 위한 전세제도 개혁 방안' 토론회에서 심상정 의원의 인사말을 듣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김태근(왼쪽부터)변호사와 이강훈 변호사, 이광수 대표가 7일 '세입자를 위한 전세제도 개혁 방안' 토론회에서 심상정 의원의 인사말을 듣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김 변호사는 이날 "현재 부동산 자산의 불평등은 지하철 개통이나 공원 개발 등 도심내 토지의 개발이익을 개인이 사유화함으로 인해 발생한다"며 "무주택자들이 공유할 수 있는 사회적 자산 역할을 하는 공공임대주택을 도심에 공급하면 도심 집중 완화와 부동산 자산 불평등 해소라는 2가지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책담당자들이 귀담아들을 만한 주장이다.

공공부문이 임대주택을 공급할 여력이 전무했던 시절에는 전세의 유용성이 대단했다. 세입자가 대체로 2년 가량 주거하는 대가로 집주인에게 무이자로 목돈을 빌려주는 전세는 사금융의 영역에 속한다. 고도경제성장 당시 임대인은 집값 상승을 노리고 전세보증금을 낀 채 집을 매입했다. 임차인은 월세 부담없이 일정기간 거주한뒤 보증금을 반환받아 자신의 집을 구입하는데 보탤  수 있어 전셋집을 선호했다. 매년 집값이 오르다보니 전세는 임대인에게는 자본이익 실현 수단, 임차인에게는 주거사다리로서 기능했다.

역대 정권마다 전세의 '착한 기능'을 의식, 서민 주거 안정을 명분으로 전세대출금 지원에 나섰다. 이로 인해 2012년 23조원에 그쳤던 전세자금대출은 2022년 188조원으로 10년 만에 8.2배 급증했다. 시중은행은 주택도시보증공사나 서울보증보험 등으로부터 보증을 받고 전세금의 80%까지 빌려주며 아무런 위험 없이 금리 장사를 즐겼다. 서울 재건축 규제 등으로 2019년 하반기부터 수도권과 지방 대도시 주택이 급상승하면서 자신의 돈을 거의 들이지 않고 전세보증금으로 주택을 마구 사는 '갭투자'가 수도권을 중심으로 성행했다.  2021년 상반기까지 강세를 보였던 집값은 결국 약세로 돌아섰다. 입주물량 급증과 가파른 금리 인상으로 전세가격은 폭락했다. 제3기 신도시 청약 등을 노리고 주변 다세대 주택 등에 전세로 들어간 세입자들이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피해를 당했다.

7일 오전 국회의원회관 제9간담회실에서 '세입자를 위한 전세제도 개혁 방안' 긴급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7일 오전 국회의원회관 제9간담회실에서 '세입자를 위한 전세제도 개혁 방안' 긴급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이광수 광수네 복덕방 대표는 이날 '전세, 무엇이 문제인가' 발제문을 통해 "2015년부터 2022년까지 연평균 아파트 입주물량이 39만호였고 연립 다세대, 오피스텔 입주는 연평균 14만호로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며 "기준금리 대폭 상승으로 경기도를 기준으로 주택 20평형 전세보증금이 2년전보다 평균 5000만원 이상 떨어지는 등 유례없이 빨리 전세가격이 내렸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다른 이유로 ▲2018년부터 2023년 1월까지 서울 갭투자 비율 39%, 인천 28.7% 기록 ▲최근 5년간 243조원 늘어난 주택담보대출 ▲분양전환, 전세 임대 등을 제외할 경우 6% 미만의 낮은 공공임대주택 비율을 손꼽았다. 그는 "과도한 갭투자를 막기 위해 임대인 전세반환 보험 가입에 있어 금액별로 보험료를 차등하는 등 임대인 의무를 강화해야 한다"며 "전세 주택에 주택담보대출이 이뤄졌을 경우 자동후순위로 설정되면서 은행의 상환여력 심사도 강화돼야 한다. 공공부문의 매입임대주택을 늘리고 우량 기업임대를 육성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날 토론자로 참석한 안상미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장은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주택가격을 정상화하기보다는 공시지가의 150%까지 보장하며 보험 가입을 해주고 감정평가사를 이용해 더 큰 금액으로 시세 조작을 가능하게 하고 대출을 늘려줌으로써 주택가격 상승을 유도했고 임대인들의 세금감면까지 만들어 무자본 갭투기의 다주택자들을 양산했다"고 질타했다.이어 "이런 이유들로 전세사기가  양산돼 전대미문의 피해가 발생했음에도 정부는 책임전가와 비상식적인 명분들 뒤에 숨어 사회적 재난은 인정하지 않고 오로지 피해자들에게만 모든 피해와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전세보증금 피해로 4명이 극단적 선택을 한 데에는 정부 정책의 실패와 관련이 깊다. 6월부터 '전세사기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이 시행되었지만 후속대책 마련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포스터제공=심상정 의원실)
(포스터제공=심상정 의원실)

토론회를 주최한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인사말에서 "집값 상승기와 하락기에도 대출로 일관했던 주거정책, 역대 정부에 의해 무리하게 늘어났던 전세대출과 보증, 부실한 민간임대사업자 관리, 임차인에게 불리한 채로 오랫동안 굳어진 임대차 시장, 턱없이 부족한 공공임대주택 등에 대한 제대로 된 진단과 문재해결이 이뤄질 때까지 전세사기·깡통주택사태는 끝이 난 것이 아니다"라며 "특별법의 사각지대를 메우고 실효성을 높이는 보완입법 과제, 올해 하반기와 내년 상반기에 온다고 하는 깡통전세 대란 대책, 대출 및 보증제도 개선 방안 등을 풀어가야 한다”고 밝혔다. 전세사기로 인한 더 이상의 희생자가 나오지 않도록 전세대출과 전세보금증 제도의 개혁을 놓고 여러 이해당사자들이 합리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임대차보증금의 상한을 규제하되 장기적으로 단계적으로 접근하자는 제언도 신중히 검토될 만하다. 이강훈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민생경제위원장(변호사)은 이날 '전세 제도 개혁을 위한 입법 대안' 발제를 통해 "임차주택의 선순위 저당권부 채권이나 다른 임차인의 선순위 임차보증금 등 그 주택에 대한 선순위 채권 금액의 합계와 당해 임차인의 임차보증금 반환 채권의 합계가 주택 가격의 70%를 초과할 수 없도록 한다"는 원칙을 제기, 눈길을 끌었다. 그는 "법 시행후 주택을 새로 사는 임대인부터 주택 가격에 대한 임대차보증금 비율의 상한 제도를 단계적으로 적용하자"며 "이를 통해 임차인의 보증금 손실 위험을 낮추고 전세제도를 활용한 주택의 무자본 갭투기가 횡행하는 것을 방지하는 효과가 기대된다"고 주장했다. 다만 이처럼 전세가격을 규제한다면 도심 주택의 월세가 폭등할 우려가 있고 수요와 공급에 따라 오르고 내리고 있는 전세가격에 대한 직접적인 규제라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의 기준금리 인상 랠리가 중단된 가운데 향후 금리 인하가 시작되면 전세사기 사건에도 불구, 전세에 대한 수요가 다시 늘어날 수 있다. 서민 세입자가 전세보증금을 떼이는 일을 막기 위해 비등록 임대주택 중 5억원 이하의 전세에 대해 사전 보증보험 가입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김태근 변호사의 주장이 설득력을 갖는 시점이다.  제도 도입의 장·단점을 비롯해 보증보험료 부담 주체와 분담 비율 등을 놓고 논의가 시작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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