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7.26 17:31
조금은 물기를 머금은 구름일까, 아니면 순전한 흰구름일까.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은 많은 상상을 불러 일으키는 존재다. 1호선 백운(白雲)역 역명이 멋지다.

이름이 ‘흰 구름’을 뜻하는 백운(白雲)이다. 듣기에, 그리고 보기에 언뜻 좋다. “흰 구름 흘러가는 곳~”이라는 내용으로 나오는 노래도 있다. 흰 구름은 가벼운 구름이다. 물기가 많으면 그 구름의 색깔은 어둑어둑해진다. 흰색을 더할수록 구름은 가볍다. 따라서 습기 없는 날, 쾌청한 날에 하늘에 드리우는 구름이 흰 구름이다.

한자 역명 白雲(백운)은 이 지역의 특별한 장소와 상관은 없어 보인다. 사전 등의 설명에 따르면 그저 지하철 1호선을 개통하면서 주민들의 투표로 결정했다고 한다. 특별히 산지(山地)가 발달했으면 그 백운이라는 이름은 어울린다. 산봉우리에 자주 그런 구름이 드리우니 말이다.

그러나 백운역이 있는 곳에는 산지가 발달하지도 않았다. 따라서 어떤 연유에서 주민들이 투표로 역명을 그리 결정했는지가 궁금해진다. 지금이야 그를 자세히 파헤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백운은 보통의 구름보다 잘 떠다니는 가벼운 구름이다. 속도는 빨라 보이지는 않으나 그래도 우리의 곁을 말없이 스쳐 지나가는 세월처럼 구름도 그리 잘 흐르고 만다.

그러니 역명(驛名)에도 잘 어울린다. 가벼움과 흘러감, 정처 없음, 돌아다님 등 흰 구름이 지닌 이미지가 역을 지나치는 나그네와 닮았기 때문이다. 인생은 그렇게 흘러 지나간다. 인생뿐이겠는가. 모든 것이 세월처럼, 바람처럼, 연기처럼 곧 사라진다. 역명에 그렇게 구름의 이미지가 들어가 있다는 점은 투표에 나섰던 이곳 주민들의 정서가 보통이 아님을 말해주기도 한다.

구름 이야기가 나왔으니 한자로 구름을 가리키는 雲(운)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색깔이 다양하다. 흰 구름이 白雲(백운)이면 검은 구름은 黑雲(흑운)이다. 이 黑雲(흑운)은 한자로 적기 전 먹구름이라는 순우리말이 더 정겹다. 이 먹구름의 이미지는 별로 좋지 않다. 곧 비를 뿌리는 구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힘겨운 가뭄에 닿은 사람에겐 흰 구름보다 먹구름이 훨씬 반갑다.

먹구름은 검은 구름으로도 말한다. 다른 한자 단어로는 털색이 새카만 까마귀를 동원해서 烏雲(오운)이라고도 적는다. 기상적인 조건에서 먹구름이 좋다 나쁘다를 이야기하는 것은 사람의 편견이다. 비는 대지에 내려야 한다. 그 비를 뿌리는 구름이 까맣다고 해서 나쁘다는 것은 사람이 제 경우에서 이해관계를 따지기 때문일 뿐이다.

그럼에도 이 먹구름, 검은 구름은 어딘가 심상찮은 조짐도 이야기한다. 비 뿌리기 전의 먹구름을 전쟁의 기운으로 말하는 경우다. 우리는 전쟁의 조짐을 말할 때 흔히 전운(戰雲)이라는 단어를 쓴다. 전쟁의 먹구름이다. 먼 하늘에서 시커멓게 몰려오는 먹구름을 전쟁에 비유한 표현인데, 아주 그럴듯한 정감을 담고 있다.

그런 구름을 실제 자주 목격하는지는 분명치 않으나 우리는 청운(靑雲)이라는 말을 자주 쓴다. “청운(靑雲)의 뜻을 품고…”라면서 젊은이 등을 격려하거나 그 뜻을 칭찬할 때의 경우다. 한자 靑雲(청운)은 곧 ‘푸른 구름’이라는 뜻인데, 아무래도 흰 구름이면서도 파란 하늘 높이 떠있는 구름을 지칭했던 듯하다. 이는 나중에 ‘아주 높은 이상’ ‘퍽 높은 벼슬’ 등의 뜻으로 발전한다. ‘靑雲(청운)의 뜻’이라고 하면 높이 오르려는 사람의 의지라고 풀이할 수 있다.

여러 가지 빛깔을 담아 아름답게 비치는 구름이 彩雲(채운)이다. 노을 등에 의해 물든 구름을 가리킨다. 그런 다양한 빛깔의 구름을 五雲(오운)이라고도 한다. 다섯 가지 색깔이 아니라 여기서는 여러 종류의 색깔을 의미한다고 봐야 좋다. 보랏빛을 띤 구름을 紫雲(자운)이라고도 표기한다.

두둥실 정처 없이 떠다니는 구름을 이야기할 때는 부운(浮雲)이라고 적는다. 물이나 공기 등에 뜬다는 뜻의 한자가 浮(부)다. 구름이 공중을 떠다니니 모든 구름이 浮雲(부운)에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런 구름처럼 어느 한 곳에 얽매이지 않는 인생, 그런 사람 등을 일컬을 때 쓰는 말이다.

구름과 비는 거의 동의어다. 그러나 둘을 한자로 적는 운우(雲雨)는 색다른 의미를 지닌다. 남녀가 서로 사랑을 나누면서 합(合)을 이루는 행위를 이에 비유할 때가 많다. 그래서 남녀 둘이 나누는 ‘사랑’의 행위 또는 그런 정감을 ‘운우지정(雲雨之情)’이라고 적는다.

지나가는 구름이 행운(行雲)이고, 흐르는 물이 유수(流水)다. 행운유수(行雲流水)라고 적으면 그저 막힘없이 흘러 지나는 것을 가리킨다. 문장이나 말솜씨 등이 자연스레 펼쳐지는 모습을 표현할 때 쓸 수 있다. 그런 구름이 가득 모이는 형태는 운집(雲集)이라고 적는다. “관중이 구름같이 모인다”고 할 때 굳이 한자로 적으면 그 모양이 바로 雲集(운집)이다.

구름에 관한 한자 단어는 사실 더 많다. 그러나 여기서 다 풀 필요는 없다. 지하철 역명 어디에선가 다시 구름이 등장하면 그때 더 펼치기로 하자. 마지막으로 덧붙일 단어가 있다면 풍운(風雲)이다. 바람과 구름을 지칭하는 단어다. 그러나 바람과 구름을 가리키는 風雲(풍운)이라는 단어가 담고 있는 뜻은 좀 별나다.

먹구름처럼 무엇인가를 암시한다. 역시 거세게 닥칠 변화, 위험, 어려움 등을 가리킨다. 바람이 일고 구름이 가득 몰리는 상황이다. 그래서 ‘風雲(풍운)의 세월’이라고 적으면 평탄한 길이 아닌, 바람 불고 비 내리는 험한 인생의 길이다. 바람이 일으키는 물결, 풍파(風波)도 거의 같은 뜻이다. 바람 불고 서리 내리는 상황이면 풍상(風霜)이다. 모두 맑은 날씨, 쾌청한 하늘과 반대의 상황을 나타낸다.

그래서 흰 구름이 보이는 白雲(백운)의 날씨가 좋은가 모르겠다. 그런 흰 구름마저 없으면 더 좋겠다. 인생의 길은 그러나 바람 불고 비 내리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꿋꿋이 걸어가야 할 길이다. 불어대는 바람과 몰아치는 비, 그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말 일이다. 바람 멎고 비 그치면 반드시 저 먼 하늘에서 ‘툭’ 하며 밝은 빛은 터지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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