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벼리기자
  • 입력 2016.08.01 19:48
[뉴스웍스=김벼리기자] 누가 뭐래도 영화는 기본적으로 ‘영화’다.

기자는 영화의 가치를 논할 때 “얼마나 사실과 밀접한가?” 등 영화 외적인 물음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믿는 편이다. 창작물로서 영화는 아무리 역사적 사실에 기반을 둔다고 할지라도 감독의 시야에 갇힐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내달 3일 개봉하는 ‘덕혜옹주’를 둘러싸고 벌어진 ‘역사왜곡’ 문제에 기자가 별로 괘의치 않았던 까닭이기도 하다.

그리고 27일 언론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보면서 허진호 감독도 이 같은 자세로 연출에 임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영화 도입부에 ‘이 영화는 창작물’임을 강조하는 문구를 집어넣은 것에서 더 나아가 그는 적극적으로 '영친왕 상해 망명 작전'이라는 허구적 사건을 영화에 끌어오는 배짱까지 보였다.

‘8월의 크리스마스’(1998), ‘봄날은 간다’(2001) 등 한국 영화사에서 굵직굵직한 작품을 남긴 ‘베테랑 감독’의 뚝심이 묻어난 지점이다.

이렇게 영화적 상상력을 적극 끌어들였다는 점까지는 성공적이었다고 평할 부분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 과정에서 역사적 진실과 영화적 상상력 사이에 짙은 경계가 생겼다는 것이다. 허감독은 이 경계를 제거하는 데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시종일관 둘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다.

이런 점은 영화의 들쑥날쑥한 리듬에서 대표적으로 드러난다.

영화는 덕혜옹주(손예진)가 만 13세에 일본 강제유학길에 오른 뒤 1962년 귀국하기까지 그의 삶과 그를 둘러싼 역사적 사건들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어느 정도 병렬적인 서사 진행 구조는 예측할 수 있던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영화 초중반까지 이어지는 사건들의 백화점식 나열은 예상을 넘어 영화의 흐름 자체를 ‘뚝뚝’ 끊었다. 마치 루어낚시를 하듯, 하나의 사건을 제시한 뒤 재빨리 수습하고 다른 사건을 내던지는 느낌이었다. 어떤 강박 혹은 다급함.

그런 와중에 영화 중반부 나오는 ‘영친왕 상해 망명 작전’은 비유컨대 좁디좁은 통로를 재빨리 기어가다 마침내 탁 트인 황야를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자잘한 사건들을 연이어 ‘투척’하던 초중반부와는 달리 망명 작전부터 영화는 오랫동안 오롯이 이 사건에만 집중한다. 또한 이는 영화에서 가장 극적이며 긴장감을 돋우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망명 작전이 ‘완전히’ 허구라는 점이다.

한마디로 영화에서 가장 극적이고 비중이 큰 부분은 감독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내용이었다. 여기에 초점을 맞춰보면 망명 작전 이전의 장면에서 드러나는 왠지 모를 다급함을 이해할 수 있다.

기자가 멋대로 당시 상황을 재구성해보면 다음과 같다. 허감독은 덕혜옹주라는 역사적 인물을 도입하면서 동시에 영화의 드라마를 강조해야 하는 딜레마에 놓여있었다. 고민하던 찰나 그는 역사적 사실들을 앞에 몰아넣은 후 그 뒤로 상상력을 동원해 쓴 허구를 통해 본격적으로 극적 긴장감을 노리면 된다는 생각에 이른다. 가장 간편하면서도 단순한 방식을 떠올린 셈이다.

이렇게 보면 허감독에겐 망명 작전 이전의 사건은 일종의 의무였으며 재빨리 처리해야 할 과제쯤에 불과했다는 추측은 자연스럽다.

마치 풀로 갖다 붙이듯 도입한 허구적 사건으로 영화는 극적 긴장감을 어느 정도 확보할 수 있었을지는 모르지만, 영화의 전반적인 리듬은 고장난 기계가 내는 소리마냥 어지러워졌다.

뿐만 아니라 사실상 역사의 ‘주변인’이었던 덕혜옹주를 역사의 중심으로 끌어오는 과정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드러났다.

영화에서 덕혜옹주가 등장하는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에는 모두 그의 부모 즉 고종(백윤식)과 양귀인(박주미)이 있다. 이런 점이 암시하듯 실제로 영화 전반을 가로지르는 덕혜옹주의 정신세계에서 부모가 차지하는 비중은 압도적이다. 그러나 동시에 영화는 덕혜옹주를 ‘조선의 마지막 황녀’로서 조국을 대표하는 자리에 올려야 했다.

허감독은 이 두 가치 사이에서 고민하는 덕혜옹주의 모습을 강조했다. 이를테면 조선인 강제징용 노동자들 앞에서 일본어 연설을 한 뒤 부모를 만날 것이냐, 부모를 만나지 못하더라도 그걸 거부하느냐 하는 갈등이 그렇다.

따라서 ‘덕혜옹주가 저 딜레마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은 영화의 또 다른 관람 포인트였다. 그러나 이마저도 감독은 ‘양귀인의 죽음’으로 손쉽게 해결한다.

양귀인의 부고를 들은 뒤 한참 슬퍼하던 덕혜옹주. 바로 다음 장면에서 그는 그동안 좀처럼 나서지 못하던 망명 작전에 동참하겠다고 선언한다.

여기서도 드러나는 조급함 역시 역사적 주변인이라는 사실과 역사적 중심이라는 상상력 사이의 딜레마가 야기한 것이다. 망명작전을 통해 역사적 중심에 덕혜옹주를 집어넣으려고 했던 허감독에게 가장 큰 문제는 부모라는 존재였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부모를 없애고 그 자리에 조선, 즉 조국을 넣을까 고민했던 허감독은 이번에도 가장 간단한 방식, 즉 어머니의 죽음을 가볍게 조국이 대체한다는 식의 설정을 도입했다.

이로써 감독은 덕혜옹주를 성공적으로 역사적 중심에 올려놓았다. 그러나 영화는 정작 중요한 개연성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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