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8.01 11:30
구리로 만든 돈, 그를 우리는 동전(銅錢)으로 적는다. 한 때는 '화폐'의 대명사이기도 했다. 돈만 밝히는 사람에게는 "동취(銅臭)가 난다"고도 했다. 돈을 좇다가도 구리로 만든 동경(銅鏡)에 제 모습을 비춰보는 일도 필요하다.

주변에 있던 작은 구리 탄광, 그리고 그곳에서 캐냈던 구리 때문에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 역이 있는 곳은 부평의 십정동(十井洞)이다. ‘열 우물’의 순우리말이 있던 동네였을 텐데, 이런 지명이 역 이름 짓는 데서는 쓰이지 않았다는 점이 이상하다. 그럼에도 어느 땐가는 그 주변의 작은 구리 광산에서 값나가는 구리가 나왔으니 구리 동(銅)에 바위 암(巖)을 붙여 동암(銅巖)이라는 이름이 생겨났을 것이다.

이 구리는 아주 귀한 금속이었다. 지금도 각종 케이블을 만들 때 쓰이면서 제값을 하지만, 인류의 생활이 석기(石器)시대를 마감하고 서서히 암석 등에 묻혀 있는 금속재질에 주목하기 시작하면서 특히 몸값이 천정부지로 뛰었을 테다. 우리는 그런 무렵을 청동기(靑銅器) 시대라고 간주하면서 특별한 관심을 기울인다.

인류의 역사가 청동기시대에 접어들어서야 대량으로 인력을 동원해 무엇인가를 꾸미고 벌이는 큰 행사를 치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결국 사회조직의 확대를 의미했다. 혈연(血緣)을 기초로 이뤄진 가족, 나아가 씨족(氏族) 및 부족(部族)사회에서 그런 작은 단위들이 크게 합쳐지는 준(準) 국가 형태, 내지는 국가 초기 형태의 사회를 이뤘을 시기에 해당한다.

그런 무렵에 쓰였던 금속이 구리, 즉 청동(靑銅) 또는 그냥 동(銅)이다. 어림잡아 대개 지금으로부터 약 4000년 전의 상황이다. 이때 권력을 잡았던 그룹들이 썼던 각종 구리 그릇, 즉 동기(銅器)가 출현한다. 무기도 많이 나오는데 구리로 만든 검(劍)과 화살촉, 창 등이다. 아울러 각종 장신구도 보인다. 그런 구리는 뒤이어 나온 철(鐵)에 밀린다. 견고함에서 구리가 무쇠를 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구리는 나중에 아주 유용하게 쓰인다. 무쇠에 비해 형태를 빚을 수 있는 가소성(可塑性)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게 구리로 만든 돈이다. 우리는 이를 동전(銅錢)으로 적는다. 종이 화폐(貨幣)의 출현은 먼 뒷날의 일이다. 우선 구리로 만든 동전이 출현해 한동안 인류사회의 경제생활을 물 흐르는 것처럼 자연스레 흘러가게 만든다.

인류생활은 이 구리로 인해 윤택해졌다. 각종 상품 등을 일컫는 물화(物貨)를 서로 교환하는 데 이런 화폐가 등장했다는 점이 특기할 만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전의 출현은 인류 역사에서 그 시기와 뒤의 시기를 가르는 획기적(劃期的) 사건이었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모두 그런 돈만을 좇는 풍조가 문제다. 그렇게 만들어진 동전을 지나치게 추구하다 보면 생기는 게 동전 구린내다. 우리는 그를 동취(銅臭)라고 적는다. 구리(銅 )에 냄새 날 취(臭)를 엮었다. 돈만 알고, 돈만 바라며, 돈만 숭배하는 지독한 사람들을 비꼴 때 쓰는 단어다.

동경(銅鏡)은 운치가 있는 단어다. 구리로 만든 거울(鏡)이라는 뜻이다. 지금의 유리 거울은 역사가 일천하다. 그전의 동양사회에서는 대개 구리거울로 자신을 비췄다. 용모를 다듬을 때 사용한 경우가 대부분이겠지만, 옛사람들은 이를 자신을 성찰(省察)하는 도구로도 간주했다. 그래서 옛 문헌에는 자주 등장하는 단어다.

동인(銅人)이라는 단어도 관심을 끈다. 구리로 만든 사람이라는 뜻이다. 중국에 처음 통일 제국을 세운 진시황(秦始皇)이 당시의 많은 무기를 걷어 들여 녹인 뒤 12개의 어마어마하게 큰 사람 형상(十二銅人)을 세웠다는 얘기가 있다. 진시황 전에도 그런 기록이 보이는데, 대개는 쇠로 만든 사람이라는 뜻에서 금인(金人)으로 적었단다.

아무튼 진시황이 銅人(동인)을 만들어 세우면서 나중 들어선 왕조도 이를 따라했던 모양이다. 그런 전통이 지금까지 내려와 동상(銅像)으로 이어졌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어쨌든 사람 모습의 큰 구리 형상을 세우는 전통은 꽤 오래전에 나왔으리라는 추정은 가능하다.

구리는 그 밖에도 금속활자(活字)로 쓰이면서 인류 생활에 크게 기여했다. 우리는 그를 동활자(銅活字)라고 부르면서 최근까지 사용한 기억을 지니고 있다. 구리로 만든 판형을 동판(銅版)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컴퓨터를 이용한 인쇄가 활성화하기 전 많이 썼던 물건이다. 그런 구리가 나왔던 광산이 있어서 붙었던 이름이 銅巖(동암)이다. 그 구리에는 어쨌든 인류 역사의 발자취가 깊이 새겨 있다. 석기에서 청동기, 이어 철기에 이어 IT로 이어지는 광통신의 시대다. 나는 지금 어느 세월에 어떻게 실려 흘러가고 있는가. 그러면서 내 마음속 구리거울로 스스로를 슬쩍 비춰 볼 일이다.

저작권자 © 뉴스웍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