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이동연
  • 입력 2016.07.28 16:56

[뉴스웍스=이동연] 공직자의 부정한 청탁과 금품수수를 금지한 이른바 '김영란법'에 대해 28일 헌법재판소에서 합헌 결정이 내려지자 관련 업계가 “소비위축으로 직격탄을 맞을 것”이라며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특히 유통업계와 농수축산업계, 골프 등 레저스포츠업계, 호텔이나 외식업계 등은 “매출 감소는 물론 문을 닫을 지경으로 몰려 심각한 위기를 맞게 될 것”으로 보고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하지만 뾰족한 대안이 없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자영업자 죽는다”…소상공인 대책 촉구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당장 우리 경제 전반, 특히 내수 위축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식사는 3만원, 선물은 5만원, 경조사비는 10만원이 상한액이 되면서 식당이나 술집, 골프장 등의 업종은 물론 농축수산물과 화훼, 유통업계까지 직접적인 타격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중소기업계와 소상공인단체들의 반발이 커지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소상공인단체들은 김영란법에서 정하고 있는 금품 수수의 기준은 3만원에 불과하다는 점을 지적하며 금품의 범위와 기준 금액이 현실과 맞지 않다는 입장을 펼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정상적인 식사 대접과 선물을 금품 수수로 간주한 뒤 법으로 단속을 할 경우 중소기업, 소상공인들의 경영 피해가 눈덩이처럼 증가할 수 있고 결국 내수위축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중소기업계는 이날 논평을 통해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존중한다"면서도 "법 제정의 목적을 달성하되 우리 경제·사회 현실과 함께 직접적인 피해가 예상되는 소상공인, 농림축수산인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요구된다"고 밝혔다.

실제 호텔업계는 물론 단가가 비싼 한우를 판매하거나 한식당을 운영하는 소상공인들은 “손님이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3만원이라는 선까지 가격을 낮춰야 하는데 이마저도 쉽지 않다”면서 “매출 감소는 불가피한 것이고, 결국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농식품부가 최근 대통령 직속 규제개혁위원회에 제출한 의견서에 따르면 한국농촌경제연구원·수협중앙회·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공동 분석한 결과 김영란법이 원안대로 시행될 경우 연간 농축수산물의 선물 수요는 최대 2조3000억원, 음식점 수요는 최대 4조2000억원 줄어들 것으로 전망됐다.

“내수위축 불가피”…보완책 마련해야

경제계에서는 '김영란법'에 대한 존중의사를 보이면서도 내수경기 위축 등에 대한 우려를 내놓으며 대책마련을 촉구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이날 "헌법재판소의 결정 존중하며, 제도시행까지 남은 기간 동안 입법취지의 효과적 달성과 새 제도 도입충격의 최소화라는 두가지 목표를 조화시킬 방안을 깊이 고민해 주기 바란다"며 "특히 합법과 위법의 경계가 여전히 불분명해 자칫 정상적인 친목교류와 건전한 선물관행마저 위축될 것으로 우려되는 만큼 소비위축과 중소상공인 피해 등의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대안을 모색해 주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한국경영자총협회도 "좀처럼 경제회복 조짐이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경제현실을 감안할 때, 현행대로 법과 시행령이 시행될 경우 발생할 심각한 내수경기 위축 등 경제적인 타격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며 "경제‧사회 현실과 동떨어진 시행령 기준과 법 내용의 모호성으로 인한 혼란으로 선의의 일반국민까지도 피해를 입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는 만큼 법 시행에 따른 부작용 최소화 후속대책이 논의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역시 "법 시행에 따른 혼란을 줄이고 어려운 경제상황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주무부처인 국민권익위원회가 법 적용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부패방지 법률의 한계를 보완하고 공공부문의 신뢰향상을 기한다는 법 취지를 고려한 것으로 판단한다"면서도 "법 제정의 목적을 달성하되 우리 경제·사회 현실과 함께 직접적인 피해가 예상되는 소상공인, 농림축수산인에 대한 세심한 배려도 요구된다"고 밝혔다.

“시범사례로 걸리면 안된다”…몸사리는 재계

‘김영란법’ 시행이 다가오면서 각 기업들은 '첫 제재 사례'가 되지 않기 위해 '몸사리기'를 하고 있다. 특히 언론과 공무원을 상대로 접대행위 등을 해야 하는 기업 홍보‧대관부서들이 난감해 하고 있다.

이에 따라 대기업들은 최근 기존 홍보나 대관 관행을 다시 점검하는 것은 물론 김영란법 시행에 대비한 매뉴얼 개발에 착수했다.

재계 관계자는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민간 기업들의 정부 부처나 공공기관 등을 상대로 한 홍보‧대관방식도 달라져야 하기 때문에 대책마련이 불가피한 상황”이라며 “정부와 정치권이 내놓는 정책이나 언론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기업 입장에서 식사 자리 한번 하는 것까지 제한되는 것은 일을 하지 말라는 것과 똑같다"고 말했다.

문제는 뚜렷한 대안이 없고, 당분간 지켜볼 수밖에 없다는 데 있다. A기업 관계자는 "지금까지 사실상 대책이라고 할 게 없었다"며 "헌재 결정이 나온 만큼 시행까지 전까지 홍보·대관업무 담당자들에게 김영란법에 맞는 교육을 진행하고 관련 매뉴얼이나 지침을 마련해 시범케이스로 걸리지 않도록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B기업 관계자도 "기업 입장에서는 이건 해도 되는지, 할 수 없는 것인지 판단하기가 어려워 경영의 불확실성만 커질 수 있다"며 "법 시행 이후 첫 케이스가 무엇 때문에 어떤 법적 처벌을 받는 지를 지켜봐야 정확한 대응 전략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저작권자 © 뉴스웍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