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5.11.05 09:39
중국 간쑤에서 신장위구르자치구로 통하는 곧고 넓게 뻗은 길이다. 세상의 길은 많지만 좁고 좁아 결국 장애로 작용하는 길을 애로라고 적는다. / 전 중앙일보 기자 조용철.

우리가 걷는 인생의 길에는 비바람이 자주 닥친다. 생각지 못했던 장애도 생기고, 큰물을 만나 망연해질 때도 있다. 그래서 길에 관한 사고는 퍽 발달해 있다. 한자 세계도 그 점은 마찬가지다. 오늘은 길에 관한 몇 가지 한자 표현을 살펴보자. 

대표적인 한자는 도로(道路)다. 앞의 道(도)는 조금 추상적이다. 사람의 머리를 가리키는 首(수)라는 글자가 들어 있다는 점을 눈여겨보는 사람이 제법 있다. ‘머리로 헤아리는 길’이라는 의미가 들어 있다는 주장이다. 그래서 이는 단순한 길이 아니다. 머리를 써서 헤아려야 하는 길이다. 

그래서 공자(孔子)와 노자(老子) 등 중국의 고대 사상가들이 종국적으로 닿아야 할 진리의 길을 道(도)라고 적었는지 모르겠다. 이에 비해 路(로)는 좀 구체적이다. 중국의 고대 사전(事典) <석명釋名>은 이 글자를 ‘드러내다’라는 새김을 지닌 한자 露(로)로 풀었다. 사람이 밟고 다녀 ‘드러난’ 흔적, 그런 의미에서의 ‘길’이라고 본 셈이다.

우선은 크고 넓은 길이 매력적이다. 통행이 자유롭고 사람 사이의 교류가 활발한 곳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대표적인 큰길은 탄탄대로(坦坦大路)다. 평탄하면서도 넓은 길이다. 성어 강구연월(康衢煙月)에 등장하는 康衢(강구)의 두 글자도 아주 큰 길이다. 사통팔달(四通八達)의 성어로 표현할 수 있는 사방팔방으로 통하는 길을 가리킨다. 

煙月(연월)은 은은하게 내(煙)가 끼어 있는 상태에서 비추는 달(月)빛을 표현했다. 성어는 크고 넓은 길, 은은하게 비치는 달을 가리킨다. 따라서 전쟁이 없어 평안한 상태라는 의미다. 衢(구)라는 글자에도 行(행)이 들어가 있는 점에 주목하자. 

街(가)도 매우 큰 길을 가리킨다. 行(행)과 圭(규)의 합성 글자인데, 사전적인 풀이에 따르면 行(행)은 ‘가다’라는 새김 외에 ‘네 갈래 길’의 의미가 있으며 圭(규)는 ‘평지’의 뜻이라고 한다. 평지에 네 갈래 길이 맞물려 있는 꼴이다. 일반적으로는 양옆에 민가와 상점 등이 즐비한 큰 거리를 가리킬 때 이 글자 街(가)를 썼다는 설명이다. 

이 行(행)이라는 글자가 부수로 작용하면서 만들어지는 글자가 여럿이다. 衝(충)이 그 한 예다. 앞에서도 소개한 내용이지만, 원래 이 글자는 고대 싸움터에 등장했던 전차 중에서 가장 큰 것에 속한다. 그런 거대한 전차가 때리는(擊) 일이 충격(衝擊), 그 전차 다닐 만큼 크면서 중요한 길이 요충(要衝)이다.
 
이런 큰 길 놔두고 험하면서 어렵고 위험한 길을 가는 경우가 있다. 그런 길을 애로(隘路)로 적을 수 있다. 좁은 길에 관한 한자 표현은 다음 기회에 소개할 작정이다. 우선 이 애로만을 언급한다. 이 말은 우리 생활에 깊이 들어와 있다. “애로사항 없어?”라고 물을 때다. 

우리는 이런 좁고 험한 길을 좋아하는 편인가보다. 넓은 길 놔두고 좁고 험한 길에 들어 사람을 피하거나 남을 해치는 심보도 적지 않은 듯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다반사처럼 불붙는 정쟁이 이렇듯 그악할 수 있을까.

국정교과서가 이제 다른 라운드로 접어들었다. 처음부터 강수를 둬 적지 않은 반발을 부른 정부의 모양이 좋지 않다. 앞뒤 가리지 않고 극단적인 정쟁으로 이를 몰고 가는 야당의 태도는 더 궁색하다. 문제를 해결하는 영역이 정치일진대, 정녕 미덥지가 않다. 

뿌연 기운이 내일도 하늘을 가릴까. 그 밤에 달빛 비추면 그것인 바로 연월(煙月)이겠으나, 보여야 할 강구(康衢)는 보이지 않을 듯. 애로만 첩첩이려니, 그 풍경이 바로 우리 정치권의 진짜 모습인가보다. 갈 길은 먼데 벌써 해는 지려나. 일모도원(日暮途遠)이라지?

<한자 풀이>
隘 (좁을 애, 막을 액): 좁다, 협소하다. 곤궁하다. 험하다. 가득 차다. 요해처(要害處). 막다, 저지하다(액). 방해하다(액). 제한하다(액).
坦 (평탄할 탄, 너그러울 탄): 평탄하다, 평평하다. 편하다, 마음의 평정을 얻다. 너그럽다, 자질구레한 데에서 벗어나다. 밝다, 뚜렷하다. 꾸밈이 없다. 드러내다, 노출하다. 크다.
康 (편안 강): 편안. 오거리. 편안하다. 편안히 하다. 온화해지다, 마음이 누그러지다, 정답게 지내다. 즐거워하다, 즐겁다. 탐닉하다, 열중하여 빠지다. 성하다. 풍년이 들다. 크다. 기리다, 칭송하다. 들다, 들어 올리다. 비다, 공허하다.
衢 (네거리 구, 갈 구): 네거리. 갈림길, 기로. 서로 엉킨 나뭇가지. 가다. 
衝 (찌를 충, 뒤얽힐 종): 찌르다, 치다. 부딪치다. 향하다. 움직이다. 돌다, 회전하다. 용솟음치다. 목, 요긴한 곳. 길, 통로. 거리. 수레의 이름. 뒤얽히다(종).   

<중국어&성어>
走投无(無)路 zǒu tóu wú lù: 가고(走) 몸 맡길(投) 데 없는 상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를 표현했다. 자주 쓴다. 
日暮途远 rì mù tú yuǎn: 날은 저무는데 갈 길은 멀다는 뜻의 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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