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8.11 10:20
시원한 바다가 아주 간절한 요즘의 여름이다. 무더움이 지나칠 정도로 덮칠 때의 여름을 우리는 혹서(酷暑)라고 한다. 때로는 그런 무더움 자체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아주 무덥다. 조금만 걸어도 땀이 줄줄 흐른다. 올해 여름 더위가 특별하다. 그러니 혹서(酷暑)라는 말이 자연스레 따른다. 지독한 더위를 보이는 여름이라는 뜻이다. 두 글자 연원을 좇아보면 제법 흥미가 인다.

앞의 酷(혹)은 과거의 제례(祭禮)와 관련이 있다고 보인다. 술을 가리키는 酉(유) 부수에 제사 지낼 때의 동작을 지칭하는 告(고)가 합쳐졌다. 따라서 ‘제사에 올리는 술’이라는 의미를 얻었다는 설명이 있다. 제사에 올리는 술은 순도(純度)가 높다. 알코올 함량도 따라서 높았을 것이다.

그로써 번진 새김이 ‘높다’ ‘독하다’ ‘대단하다’일 테다. 무더워 견디기 힘든 여름을 혹서(酷暑)라고 적는 이유다. 혹염(酷炎)이라고 해도 마찬가지 맥락의 단어다. 혹열(酷熱)이라고 적어도 심한 더위가 닥친 여름을 가리킨다.

정도가 지나쳐 매우 나쁜 상황에 이르면 혹독(酷毒)이요, 가혹(苛酷)이다. 사람의 성품이 지나치게 차가워 대하기 어려우면 냉혹(冷酷), 그로부터 더 나아가면 잔혹(殘酷)이다. 남을 마구 부리는 행위는 혹사(酷使)다. 겨울에 닥치는 매우 강한 추위, 또는 그런 겨울은 혹한(酷寒)이다.

暑(서)는 해를 가리키는 日(일) 밑에 者(자)를 붙인 모양새다. 그러나 뒤의 者(자)를 煮(자)로 푸는 경우가 있다. 물을 끓여 무엇인가를 익히거나 삶는 일이다. 땡볕에 물을 끓이는 상황이면 그냥 더운 정도는 아니다. 그로부터 매우 더움, 또는 그런 계절인 여름을 가리키는 글자로 발전했다고 보인다.

여름을 지칭할 때 이 글자는 매우 빈번하게 등장한다. 무더운 여름을 가리키는 단어는 제법 풍부하다. 성서(盛暑)와 융서(隆暑)는 혹서(酷暑)와 거의 동렬에 있는 표현이다. 습기가 겹쳐 더위가 더욱 진하게 느껴지는 여름을 일컫는 단어들이다.

직접 계절을 가리키는 夏(하)도 빼놓을 수 없다. 성하(盛夏), 염하(炎夏)는 우리도 자주 입에 올리는 여름의 별칭이다. 뜨거운 태양을 표현하기 위해 주하(朱夏)로 적기도 한다. 더위를 더 두드러지게 표현하면 주화(朱火)다. 계절을 가리키는 서(序)를 더해 화서(火序), 염서(炎序)로도 일컫는다.

개념으로 여름을 볼 때의 글자는 성(盛)이다. 무성(茂盛)함을 가리키는 글자다. 식생이 싹을 틔워 줄곧 자라 무럭무럭 익어가는 상태를 말한다. 여름이 여름답게 더워야 곡식과 과일이 제대로 자라는 법이다.

그럼에도 더위가 지나치면 여러 면에서 좋지 않다. 극성(極盛)인 경우다. 극도로 치달을 정도로 무엇인가가 도를 넘어 마구 번지는 때다. 요즘 더위처럼 매미 소리가 극성이다. 그러나 차가운 기운이 닥치면 극성했던 매미의 울음소리는 뚝 그치고 만다.

더위를 물리는 차가운 기운은 마침내 다가온다. 한래서왕(寒來暑往)이라는 성어 표현은 그래서 등장한다. 계절의 추이, 시간의 흐름, 그로부터 느껴지는 덧없음을 다 품고 있는 말이다. 여름의 무더위가 제아무리 모질더라도 짜증으로 대할 일이 아니다. 언젠가 우리는 이 무더웠던 여름 또한 그리움으로 돌아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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