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8.11 10:41
중국 신장 위구르 지역의 넓은 평원 끝에 있는 붉은 산의 모습이다. 인천의 주안이라는 곳도 바다에서 볼 때 붉은 언덕으로 보여 붙은 이름이다. <사진=조용철 전 중앙일보 기자>

지금의 인천 남동구 만월산으로 추정하는데, 이곳 일대에는 붉은색의 흙이 돋보이는 산이 있었던 모양이다. 게다가 기러기 모습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붙은 이름이 주안(朱雁)이란다. 붉은색 朱(주)에 기러기 雁(안)이다. 인천 일대의 옛 지도를 보면 朱岸(주안)이라는 이름도 나온다.

붉은 색깔을 띠는 언덕(岸)이라는 뜻이다. ‘언덕’이라는 새김이기는 하지만 바다에서 볼 때 산의 모습이 그리 비쳤을 수도 있다. 어쨌든 인천 일대에서 ‘붉은색’이라는 새김의 朱(주)라는 글자가 들어가 있는 이름은 이 말고 없는 편인데, 이 주안의 한자 이름이 왜 지금의 朱安(주안)으로 정착했는지에 관한 설명은 없다.

기록에 따르면 이곳은 한반도 최초로 천일제염(天日製鹽)을 시도했던 곳이다. 바닷물을 끌어들여 햇빛에 말리면서 소금을 얻는 그런 방법 말이다. 일부 기록에는 그렇게 천일염을 시도한 연도가 1907년으로 나온다. 일본이 강제로 대한제국을 병합하기 얼마 전이다. 그래서 주안은 천일염의 첫 생산지로 유명하다.

한반도 최초의 철도인 경인(京仁)선 구간에서 주안이라는 역명이 버젓이 등장한다는 점을 볼 때 주안역은 한반도 철도역으로서 지닌 이름의 역사가 아주 오랜 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우선 역명의 한자에 주목할 일이다. 붉을 朱(주), 편안할 安(안)이라는 두 글자 말이다. 이 역에서는 우선 붉거나 빨간색의 朱(주)를 풀어보자.

먼저 朱(주)는 색깔을 가리킨다. 붉은색인데, 빨간색을 가리키는 紅(홍)과는 비슷하지만 달라 보인다. 아무래도 빨강의 깊이가 조금 더 하다는 정도? 때로는 주홍(朱紅)이라는 말을 써서 빨강 계통을 나타내기는 하지만, 그 빨강 자체보다는 조금 어두운 색이라고 보는 게 좋다. 주황(朱黃)은 빨강이면서도 누런색의 황(黃)이 덧대져 있는 색깔이다.

한자(漢字)에서 빨강을 표현하는 글자는 제법 많다. 대표적인 글자는 우선 赤(적)과 朱(주)다. 중국의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赤(적)은 紅(홍)과 같다. 그에 비해 朱(주)는 그보다 더 넓은 범위의 빨강을 표현한다고 본다. 그러나 이마저도 헛갈리기 쉽다. 많은 붉은색 계통의 글자들이 정확하게 어떤 색깔을 가리키는지 구분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도 우리 생활에서 쓰이는 붉은색 지칭용 한자는 알아둘 필요가 있겠다. 위의 글자 외에 그런 새김으로 쓰이는 글자는 丹(단)이 있다. 緋(비)도 역시 마찬가지다. 彤(동)이라는 글자도 붉은색 계통인데, 주홍색을 가리킨다는 설명이 붙어 있다. ‘빛이 난다’는 새김의 赫(혁)이라는 글자도 색깔을 말할 때는 ‘선명한 붉은색’의 뜻이다. 보라색을 가리키는 紫(자) 또한 빨강에 파랑이 스며든 색깔이다.

朱(주)라는 글자는 우선 성씨(姓氏)로도 이름이 높다. 한국에도 이 朱(주)씨 성을 가진 사람이 많다. 중국에서는 왕조(王朝)를 일으켰던 성씨라서 제법 세력이 크다. 명(明)나라를 세운 주원장(朱元璋)의 경우다. 조선 500년의 사상을 틀어쥐었던 사람이 주희(朱熹)다. 그를 최고로 높이는 주자(朱子)라는 호칭으로 유명하다.

그에 비해 赤(적)과 紅(홍)은 원래 색깔의 의미를 넘어서 대한민국과 악연(惡緣)을 맺은 컬러다. 둘은 한 이념의 상징이다. 60여 년 전 한반도에 피바람을 몰고 왔던 김일성의 남침 전쟁 6·25와 같은 열에 선 색깔이다. 그 둘은 공산주의(共産主義)가 표방하는 색이다. 프롤레타리아라는 계급의 피와 땀을 상징한다.

북한의 적위대(赤衛隊)가 있다. 이 명칭의 본래 뜻과는 상관없이 이제는 북한이 노동자와 농민 등을 엮어 만든 민병(民兵) 조직이다. 이른바 노농적위대(勞農赤衛隊)다. 공산당을 대변하는 깃발도 적기(赤旗)라고 한다. 공산당의 군대가 적군(赤軍)이다. 중국 공산당은 자신의 군대를 부르는 정식 명칭, 인민해방군(人民解放軍)의 이름 이전에 국민당과의 내전 기간 중 운용하던 부대를 홍군(紅軍)으로 통칭하곤 했다. 중국의 붉은 깃발을 홍기(紅旗)라고 부르며, 때로는 중국산 자동차에도 이 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赤紅(적홍)이라는 두 글자가 억울하다. 원래 색깔의 의미인데, 사람들이 거기에 덧칠을 심하게 가했기 때문이다. 빨강은 색깔로서 강력한 생명력을 상징한다. 붉은색의 피가 없으면 동물은 살아가지 못한다. 아울러 기쁨의 상징이기도 하다. 공산주의 중국 이전에 중국인들은 이 빨강을 기쁨과 생명의 의미로 사용했다. 전통 명절이나 축하 행사 등에 중국인이 내거는 색깔의 대부분이 이 빨강이다.

봉사와 헌신을 표방하는 국제적 기구인 적십자(赤十字), 예수의 고결함을 나타내는 red wine은 적포도주(赤葡萄酒)다. 적심(赤心)이라고 적으면 ‘정성스럽고 참된 마음’, 적자(赤子)라고 하면 갓난아이 또는 백성(百姓)을 가리킨다. 적자(赤字)는 결산에서 지출이 수입보다 많은 경우를 가리킨다.

紅(홍)의 조합도 무수하다. 녹차(綠茶)와 대비하는 홍차(紅茶), 예쁜 얼굴의 미인을 홍안(紅顔), 얼굴에 붉게 떠오르는 부끄러움 등을 홍조(紅潮), 붉게 물든 단풍잎을 홍엽(紅葉), 붉은 등을 홍등(紅燈), 그런 등이 켜진 유흥업소 거리를 홍등가(紅燈街), 빨갛게 산을 물들이는 꽃이 영산홍(映山紅), 붉은 꽃을 오래 피우는 게 백일홍(百日紅) 등이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명구가 있다. 빨강에 가까이 가면 빨개지고, 까만색을 가까이 하면 까매진다는 얘기다. 한자로는 ‘近朱者赤, 近墨者黑(근주자적, 근묵자흑)’이다. 굳이 구별하자면 여기서의 朱(주)는 긍정적 의미다. 정의롭고 좋은 것을 가까이 하면 그 사람도 좋아진다는 얘기다. 朱(주)와 赤(적)이 모두 밝고 건강한 의미로 쓰였다.

그에 비해 새카만 색깔의 먹을 가까이 하면 검게 변한다는 의미의 近墨者黑(근묵자흑)은 좋지 않은 의미다. 墨(묵)과 黑(흑) 모두 부정적 의미다. 나쁜 사람 가까이 하면 그 사람도 나빠진다는 뜻이다. 朱赤(주적)과는 반대다. 그러나 이 역시 사람의 비유에 불과하다. 색깔은 죄가 없다. 거기에 의미를 덧붙이는 사람의 인식이 문제일 뿐이다.

그러나 조심할 일은 있다. 적색(赤色)과 홍색(紅色) 자체야 죄가 없지만, 그를 이념의 상징으로 내세워 자유 대한민국을 위협하는 북한 공산당이 문제다. 그들은 대한민국을 붉게 물들이는 적화(赤化)의 야욕으로 눈이 붉게 달아오른 홍안(紅眼)의 상태다. 그에 대비하지 않으면 결국 우리가 맞이할 미래는 암담하다.

그런 정도에서 이 빨강을 정리하기로 하자. 붉은색의 언덕, 그런 색의 산, 그리고 그 색깔의 기러기에서 유래했다는 朱安(주안)역은 우리 생활의 편의를 돕는 그런 훌륭한 전철역이다. 그 색깔은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을 품는 따뜻하고 온화한 생명의 색깔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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