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8.15 11:30
일제 강점기 초반에 촬영한 종묘 정전의 모습이다. 일직선의 긴 지붕 설계가 삼가고 조심하는 근신(謹愼)의 마음가짐을 지니도록 만드는 건축이다.

근신(謹愼)이라는 이 말, 그저 잘못을 저지른 이에게 내리는 벌(罰) 정도의 의미로만 남았다. 사전 등에는 우선의 새김이 ‘조심’이라고 나오지만 이 낱말을 받아들이고 쓰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단지 ‘잘못을 저질러 받는 벌의 일종’ 정도의 뜻으로 새기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다.

낱말을 이루는 앞 글자 謹(근)은 말을 조심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말’을 가리키는 言(언)이라는 부수가 들어있고, ‘재앙’ ‘화근’ 등을 지칭하는 堇(근)이 있다. 따라서 제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사안을 앞에 두고 입조심을 하는 경우라는 뜻풀이가 일반적이다.

愼(신)은 여러 풀이가 가능하다. 그럼에도 ‘참다움’ ‘진정함’이라는 의미의 眞(진)이라는 글자와 ‘마음’을 뜻하는 부수가 합쳐져 ‘조심’ ‘신중함’의 의미로 발전했다는 게 정설이다. 眞(진)이라는 글자가 점복(占卜)을 주관하며 제의(祭儀)를 이끌던 옛 시절의 사제(司祭)인 貞(정)이라는 존재와 관련이 있다고 볼 때의 풀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근신(謹愼)이라는 낱말을 그저 잘못한 이에게 내리는 벌 정도의 풀이로 받아들여서는 곤란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이는 사물과 현상에서 늘 빚어지는 변화에 조심스레 대응하는 지혜(智慧)의 하나로 봐야 좋을 것이다.

審愼(심신)이라는 말도 있다. ‘살피다’ ‘헤아리다’는 뜻의 審(심)은 집을 가리키는 宀(면)에 番(번)이 덧붙여진 글자다. 番(번)은 위의 글자 요소가 동물의 발자국, 아래 田(전) 형태의 요소가 그런 동물의 자취가 찍힌 흔적이라는 풀이다. 따라서 본래 審(심)은 ‘집안(宀)에 들어온 동물의 발자국(番)’이라는 의미다.

그런 동물이 집안에 들어왔다면 우리는 우선 무엇을 해야 할까. 살피고 또 살펴야 한다. 들짐승이 집에 들어왔으니 가족 구성원의 생명에 우선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를 살피지 않는다면 엄청난 ‘직무유기’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이 글자와 ‘신중함’이라는 의미의 愼(신)이 합쳐지면 그야말로 자세하게 살피는 행위다.

그런 審(심)에 계산하다, 또는 따지다, 헤아리다 등의 의미를 지닌 計(계)를 붙이면 심계(審計)다. 지금의 감사원(監査院) 옛 명칭이 심계원(審計院)이었다는 점을 상기하면 좋다. 중국에서는 감사원 기능을 지닌 기구를 흔히 審計署(심계서)라고도 적는다.

심리(審理), 심문(審問), 심신(審訊), 심판(審判) 등이 다 그와 같은 맥락의 조어다. 근신(謹愼)이라는 단어의 조합도 흐름에서 볼 때 이와 같다. 조심하면서 무게를 지닌 채 행동하는 일이다. 신중(愼重)이 그 뒤를 따르는 단어임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듯하다.

삼가서 마음을 조심스레 단속하는 일은 늘 중요하다. 단기적인 이익, 즉흥적인 발상에 따라 마음을 풀어 놓으면 큰 틀의 계획이나 준비 등을 망칠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의 안보 영역이 특히 그렇다. 미사일 고고도 방어체계인 THAAD를 두고 우리가 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일 자체가 어쩌면 불행이다.

선뜻 중국에 나섰다가 조금의 성과도 내지 못한 채 귀국한 야당 의원들이 화제다. 안보에 관한 한 신중하고 무겁게 움직여야 하는 처지였음에도 불구하고 낮은 수준의 정치적 감각만 드러낸 채 귀국했다. 중국의 입장을 과하게 따지는 대신, 우리의 가장 중요한 안보 이해를 가볍게 여긴 결과다. 근신(謹愼)과 심신(審愼)의 지혜를 말하기에는 우리 수준이 너무 낮아진 사회일지 모른다.

 

<한자 풀이>

謹 (삼갈 근): 삼가다. 자성하다. 금하다. 엄금하다.

愼 (삼갈 신, 땅 이름 진): 삼가다. 근신하다. 두려워하다. 근심하다. 따르다. 삼감. 진실로.

審 (살필 심, 빙빙 돌 반): 살피다. 자세히 밝히다. 깨닫다. 듣다. 환히 알다, 밝게 알다. 조사하다. 묶다. 바루다, 바르게 하다. 정하다.

幽 (그윽할 유, 검을 유): 그윽하다. 멀다, 아득하다. 깊다. 조용하다, 고요하다. 어둡다, 밝지 아니하다. 가두다, 갇히다. 피하여 숨다. 검다. 귀신. 저승.

 

<중국어&성어>

小心谨慎(謹愼) xiǎo xīn jǐn shèn: 조심하면서 신중하게 구는 행위.

谨(謹)言慎(慎)行 jǐn yán shèn xíng: 언행(言行)을 신중히 하는 일이다. <예기>에 등장하는 말로 자주 쓰는 성어다.

谨小慎微 jǐn xiǎo shèn wēi: 작고(小) 보잘 것 없는 것(微)에도 전전긍긍하며 지나치게 조심하는 모습. 신중하고 조심함이 지나친 경우에 쓰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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