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16.08.16 10:14

덥다. 이글거리는 태양이 이토록 밉기는 처음이다. 그렇다고 에어컨을 시원하게 틀 수도 없다. 전기요금 누진제 폭탄이 무서워서다. 그렇다. 옛날에는 호환, 마마가 무서웠지만 지금은 전기요금이다. 누진제 공포는 소름이 아닌 짜증나는 땀띠로 다가온다. 이럴 땐 그저 더위를 이길 소름 돋는 귀신 이야기가 최고다.

포켓몬 고는 핸드폰을 가지고 하는 증강현실게임이다. 앱을 실행하고 카메라를 켜면 핸드폰 화면에 일상적인 사물과 더불어 곳곳에 포켓몬이 나타난다. 이런 포켓몬을 사냥하고 진화시키는 게임이다. 증강현실이라도 현실성은 있다. 누군가 보고, 듣고, 잡거나 혹은 게임에 집착해 속초로 몰려가고 심지어는 가택침입으로 고발당하는 한 포켓몬은 현실이다.

포켓몬은 일본의 풍부한 요괴 이미지를 재료로 탄생하였다. 몬스터를 사냥해 조련하며 대결하는 닌텐도 게임이었다. 최근에 유행했던 요괴워치도 이와 유사하게 괴물이나 요괴 혹은 귀신을 재료로 삼는다. 요괴가 재료이어서인지 포켓몬은 게임 출시 초기부터 황당한 괴담 여럿을 몰고 다녔다.

일본의 괴물이나 요괴가 다가 아니다. 포켓몬 고에 자극을 받은 중국도 유사한 게임에 도전장을 냈다. 중국이 작심하고 괴물, 요괴 그리고 귀신 이야기를 풀어내면 한도 끝도 없을 테다. 가장 오래된 <산해경(山海經)>부터 <요재지이(聊齋志異)>, <서유기(西遊記)>, <봉신연의(封神衍義)>에 나오는 괴물 요괴만 증강현실을 통해 길거리에 풀어 놓는다면 한동안 핸드폰을 손에서 떼어낼 수 없을 것이다.

편의점 천청을 날아다니는 천녀유혼(倩女幽魂)의 섭소천(聶小倩)이나 구미호(九尾狐), 예쁘게 변신하는 청사(靑蛇)가 신호등 앞에서 나를 기다릴 날이 머지않았다. 안타깝게도 우리에게는 이토록 강력한 흡인력을 지닌 괴물이나 요괴가 부족한 형편이다. 이 점 아쉽기 짝이 없다.

주목할 점으로는 포켓몬 고와 우리가 생각하는 귀신에는 상당히 유사 구석이 많다는 것이다. 먼저 포켓몬을 보려면 맨눈이 아닌 장비와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평범한 사람은 볼 수 없는 것을 보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보통사람과 안구(眼球)는 같을 것이나 무엇인가는 다른 점이 있기에 못 볼 것을 본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 바로 프로그램이다. 아마도 그들의 두뇌에는 포켓몬 고와 같이 귀신을 증강현실로 볼 수 있는 앱이 깔려있을 것이다. 귀신도 포켓몬과 마찬가지로 프로그램이나 앱이 있기에 보인다는 말이다.

보통 귀신이라 하면 돌아가신 분의 혼령이라 여기지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영험한 신부터 악귀까지 종류가 다양하다. 포켓몬도 마찬가지다. 온갖 성격의 괴물 요괴가 다 섞여있다. 포켓몬이나 귀신이나 대상이 거의 유사하다. 아니, 포켓몬은 귀신과 별 다를 바 없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지금 유사한 대상을 하나는 핸드폰의 증강현실 앱으로, 다른 한쪽은 두뇌의 프로그램을 통해 만나고 있는 것이다.

포켓몬 고 앱은 길거리 여기저기에 포켓몬이 널렸다는 것을 알려준다. 귀신을 보는 자들도 귀신이 여기저기에 있다고 한다. 귀신이나 포켓몬이나 서식지에 별 차이 없다는 말이다. 단지 귀신은 확인할 수 있는 앱이 보급되지 않았을 뿐이다.

포켓몬은 게임회사가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허상이고 귀신은 자연적 산물이기에 증강현실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현미경의 예로 반박할 수 있다. 증강현실은 단순한 핸드폰 기술발전의 산물이 아니다. 증강현실로 세상의 이면을 들여다보게 된 것도 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증강현실은 종종 사물이나 세상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계기를 주기도 했다.

현미경의 발명으로 병균을 발견하기 전에 마마는 어찌 할 수 없는 무서운 역신(疫神)이었다. 하지만 현미경을 통해 천연두(smallpox)가 그 병균임을 발견한다. 과학자들은 귀신이 아닌 현미경 속 천연두 균을 현실로 끄집어내어 예방과 치료를 할 수 있게 됐다. 현미경은 귀신의 세상을 병균이라는 관점으로 바꾸게 만들어 준 증강현실 도구였다. 즉, 증강현실 속 포켓몬이나 증강현실 속 마마별성신이 다를 바 없다는 말이다.

포켓몬 고와 귀신은 모두 괴물 요괴로서 우리 주변 도처에 널려있다. 어느 날 둘 사이의 차이를 뛰어 넘게 만들어 주는 앱을 개발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생각만으로도 짜릿하다. 귀신도 포켓몬 고와 같은 게임으로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아니 반대로 포켓몬이 귀신과 같은 오싹한 존재로 바뀔 수 있을까? 혹 현미경에서 보듯 귀신조차 현실로 꺼내 실생활에 이용하는 건 아닐까?

중음신으로 귀신이 구천을 맴돌 듯 이제는 포켓몬 고를 통해 괴물 요괴들이 우리 주변을 돌아다닐 것이다. 구글이 지도를 넘기는 날이 바로 요괴들 세상의 문이 열리는 날일 수도 있다. 언젠가 귀신과 같아진 포켓몬 고를 천도시키기 위한 푸닥거리를 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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