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8.17 16:58
6.25전쟁 당시 맥아더 장군의 전격적인 상륙작전이 벌어졌을 때의 모습. 제물포는 근대기의 한반도에 서양의 문물이 집중적으로 올라섰던 항구다.

인천항이 오늘날의 이름을 얻기 전까지 줄곧 쓰였던 항구 이름이다. 제물(濟物)이라는 이름 자체는 그 쓰임이 본래 있는 단어에 해당한다. 물을 건넌다는 뜻의 濟(제)와 사람 아닌 다른 일반 물건을 뜻하는 物(물)의 합성이다. 그러나 전통적인 한자 쓰임으로 볼 때 여기서 物(물)은 곧 ‘사람’을 가리키기도 한다. 따라서 濟物(제물)이라는 한자 단어 자체는 ‘사람과 일반 물자들을 모두 건너게 해주다’ 정도로 풀이할 수 있다.

제물포 일대는 본래 고구려 때 ‘미추홀’, 백제가 이곳을 점령했을 때는 ‘매소홀’의 이름으로 불렸다고 한다. 적어도 지금 남아 있는 한자 표기에 근거를 두고 볼 때는 그렇다는 얘기다. 그 뜻은 분명치 않지만, 언어학적인 추정으로는 ‘물에 둘러싸인 곳’ 등으로 풀이할 수 있다고 한다. 어쨌거나 고구려·백제 시대에는 이곳은 물과 뗄 수 없는 곳이었을 게다.

따라서 이곳은 한반도가 중국 대륙의 여러 곳을 상대로 물자를 건네고 또는 그곳의 물자를 받는 곳이었을 테다. 백제 때는 중국의 동진(東晋), 북위(北魏) 등과 물자를 주고받거나 사람이 왕래하는 포구였고, 고려 시대에 들어와서는 중국의 북송(北宋) 또는 남송(南宋)과 교역도 하면서 한반도 서남해안 지역 및 고려의 도읍 개성과도 이어지는 해상 교통의 요지였다고 한다.

고려 말기에는 왜구의 침입이 잦아지면서 이곳에 문학산성(文鶴山城)과 계양산성(桂陽山城)을 지었고, 조선 때 들어와서는 수군(水軍) 진영인 제물진(濟物鎭)을 설치해 해군 기지로도 삼았다고 한다. 아울러 경상과 전라, 충청의 삼남(三南)의 배들이 한강에 진입하기 전에 정박하는 주요 포구였다.

제국주의 세력이 진출하던 19세기 말에 조선이 그들과 강화조약 및 제물포조약을 체결하면서 급속히 발전하기 시작했다. 1883년에 일본 조계(租界)가 들어서고, 이어 청나라 조계 등이 뒤를 이어 만들어졌다. 1914년 조계지가 모두 없어지고 인천부(仁川府)가 들어서면서 제물포는 인천 관할하의 작은 지역 명칭으로 자리 잡았다.

濟物浦(제물포)의 앞 글자 濟(제)는 앞에서도 소개한 대로, 나루에서 배 등을 타고 물을 건넌다는 뜻이었다. 이 원래의 뜻이 발전해 ‘다른 이를 건너게 해주다’, 더 나아가 남을 ‘도와주다’ ‘구해주다’의 의미를 얻었다. 구제(救濟)라는 단어에서 드러나는 이 글자의 쓰임이 대표적인 용례다.

이 글자가 들어가 있으면서 우리에게 아주 친숙한 단어가 바로 경제(經濟)다. 우리 사회는 이 경제가 망가지면 힘없이 무너진다. 먹고 사는 일, 그에 수반하는 여러 조건들을 해결하고 나누며, 때로는 주고받는 모든 행위가 경제에 들어간다. 이 경제라는 낱말의 經(경)이라는 글자는 여기서 ‘운영하다’ ‘다루다’ 등의 의미다.

옷감을 짤 때 날줄과 씨줄이 있다. 날줄은 세로, 씨줄은 가로 방향이다. 이 두 줄을 겹쳐 놓으면서 직물(織物)을 짠다. 세로 방향으로 난 날줄을 일컫는 단어가 ‘경(經)’이고 씨줄이 ‘위(緯)’다. 지구를 경도(經度)와 위도(緯度)로 표시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거기에 ‘다른 이를 건너게 해주다’ ‘도와주다’의 濟(제)가 붙었다.

따라서 ‘經濟(경제)’의 원래 뜻은 지금의 그 ‘經濟(경제)’와는 어감이 다소 다를 수밖에 없다. 원래의 출발은 ‘경세제민(經世濟民)’ ‘경방제세(經邦濟世)’ ‘경국제세(經國濟世)’ 등이다. 세상(世)이나 나라(邦, 國)를 운영하면서(經), 백성(民) 등 세상 사람들을 편안케(濟) 하는 행위 등을 일컬었던 말이다.

동양의 고전에 등장하는 經濟(경제)라는 용어는 이 때문에 ‘나라와 사회를 이끄는 실천적인 일’ 등의 뜻을 담고 있다. 나라와 백성을 이끄는 구체적인 업무, 또는 그런 능력을 가리킨다. 모두 세상 사람을 도와 발전시키는 濟世(제세)의 의미를 담고 있으니 “공자왈…” 등을 읊조리며 공리공담(空理空談)만을 다뤘던 유생(儒生)들과는 조금 거리가 있던 용어에 해당할지 모른다.

우리가 잘 쓰는 용어이기는 하면서도 그 뜻을 잘 헤아리지 못하는 단어가 공제(共濟)다. ‘~공제회(共濟會)’ ‘~공제조합(共濟組合)’ 등의 이름에서 자주 등장하는 단어다. 이 단어의 어원은 동주공제(同舟共濟)라고 보인다.

같은(同) 배(舟)로 함께(共) 건넌다(濟)는 뜻이다. 병법을 다룬 <손자(孫子)>에 등장하는 성어다.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인 춘추시대 서로 원수와 같았던 오(吳)와 월(越)나라 사람이 같은 배를 타고 물을 건너는 상황을 이야기하고 있다. 서로 사이가 나빴지만 같은 배에서 거대한 풍랑을 만났을 때는 함께 협력할 수밖에 없었다는 내용의 이야기다.

그러나 이제는 ‘어려움을 함께 헤쳐 나간다’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우리의 共濟會(공제회)나 共濟組合(공제조합)의 취지도 마찬가지다. 조금씩 자신의 돈을 내놓아 구성원끼리 서로 도와가며 살자는 취지의 모임들이다. 개인이 경영하는 기업체 등에서 한때 이런 모임이 많았고, 지금의 각 정부 기관 등에서도 여전히 그런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

제빈(濟貧)이라고 적으면 ‘가난을 구제한다’의 뜻으로, 예전 왕조시대에 자주 등장하던 ‘가난한 사람들을 살린다’는 취지의 의적(義賊) 모임 활빈당(活貧黨)의 활빈(活貧)과 같은 뜻이다. 널리 중생을 구제한다는 뜻의 보제중생(普濟衆生)은 불교에서 자주 사용하는 말이다.

제도(濟度)라는 말도 불교 용어다. 불법을 가르쳐 중생을 미망(迷妄)의 세계에서 깨달음의 세계로 건너게 한다는 말이다. 건널 濟(제)에 같은 뜻의 건널 渡(도)를 쓰는데, 삼수변 없는 도(度)로 쓰기도 한다. 중생제도(衆生濟度) 또는 제도중생(濟度衆生)으로 다 쓴다.

濟物浦(제물포)의 다음 글자 物(물)의 쓰임새는 아주 많다. 무릇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해당하는 글자다. 물건(物件)이 그렇고, 만물(萬物)이 그렇다. 움직이는 그런 것은 동물(動物)이고, 그렇지 않으나 생명을 유지하며 열매나 꽃 등을 만드는 것은 식물(植物)이다. 동물이면서도 사람이면 인물(人物),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생물(生物), 그중에서 아주 별난 녀석이 괴물(怪物)이다. 생명체의 바탕을 이루는 유기물(有機物), 탄소를 품지 않아 그와는 다른 무기물(無機物), 사물의 바탕이 물질(物質), 그런 물건으로 사용하는 ‘자료’의 종합이 물자(物資)다.

문명이 이룬 물건을 문물(文物)로 적고, 방대한 가짓수와 종류의 물건을 일컬을 때는 박물(博物)이라고 한다. 원래는 고기 종류였으나 나중에는 단순하게 ‘남한테 좋은 뜻으로 주는 물건’으로 변한 단어가 선물(膳物)이다. 포물선(抛物線)은 뭘까. 그런 물건(物)을 공중에 휙 집어 던질(抛) 때 반원 모양으로 그어지는 선(線)이라는 뜻이다.

가족 등에게 남기고 떠나는 물건이 유물(遺物), 모든 세상은 물질적인 조건이 최우선이라고 주장하면 유물론(唯物論)이다. 먹는 물건이 식물(食物), 기름 종류의 물건은 유물(油物)이다. 곡식류의 물건이 곡물(穀物), 석탄과 금속 등 암석에서 캐내는 물건이 광물(鑛物)이다. 그런 물건의 가격이 물가(物價)다.

그런 物(물)의 행렬은 계속 이어질 수 있다. 그를 좇다 보면 우리가 내려야 할 역에서 제 때 내리지 못하니 이 정도에서 생략하고 다음 기회로 미루자. 濟物浦(제물포)의 다음 글자 浦(포)를 살펴야 할 때다. 浦(포)는 일반적인 물가, 또는 강물이 바다로 빠져나가는 길목의 물가를 가리킨다. 가장 대표적인 한자 단어가 포구(浦口)다. 배가 드나들 수 있는 물가의 어귀 또는 항구의 의미다.

우리 지명에 浦(포)라는 글자를 단 곳이 많다. 濟物浦(제물포)가 우선 그렇고, 예전 ‘삼개나루’라고 불렸던 마포(麻浦), 남해안의 삼천포(三千浦), 평양 근처의 남포(南浦), 전남의 목포(木浦), 강원도의 화진포(花津浦), 제철소로 유명한 포항(浦項) 등이다. 浦口(포구)도 사람이 만나고 헤어지는 장소다. 우리가 지나는 역처럼 수많은 사람들의 수많은 이별과 만남의 이야기가 그곳에 있다. 인생은 그렇게 많은 헤어짐과 상봉(相逢)을 주제로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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