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동우기자
  • 입력 2016.08.2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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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웍스=김동우기자] 리우 올림픽이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개회 전부터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브라질 리우에서 선수들은 유종의 미를 얻기 위해 마지막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1896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최초의 근대 올림픽이 개최되고 120년, 시대가 변함에 따라 올림픽의 양상도 많이 변했다. 금메달 집착에 시달리던 한국도 성적 지상주의를 떨치고 올림픽을 즐기는 모습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메달개수? 그게 뭣이 중헌디?

베트남 사격 국가대표 호앙 쑤안 빈은 이번 리우 올림픽에서 모국에 사상 첫 금메달을 안겼다. 베트남에서는 연일 호앙에 대한 기사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를 지도한 한국인 감독에게까지 스포트라이트가 맞춰질 정도다. 베트남 공영방송 VTV는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사격 대회에서 호앙이 베트남 역사상 가장 값진 메달을 목에 걸었다”며 대서특필했다.

베트남 국민들도 SNS를 이용해 시상식에서 베트남 국기가 게양되는 장면을 올리거나, 베트남이 상위에 오른 올림픽 메달 순위표를 올리며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76년 몬트리올 올림픽, 한국 레슬링 국가대표 양정모는 자유형 62kg급에서 한국에 첫 금메달을 선물했다. 귀국한 양정모는 카퍼레이드를 펼쳤고 나라 전체가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양정모. <사진제공=국가기록원>

그 시절 올림픽 금메달은 온 국민들의 자부심이었다. ‘한국이 이제 국제대회에 나가서 세계 1위를 한다’, ‘일본을 이겼다’라는 사실은 산업화에 한창 열을 올리던 한국 국민들에게 커다란 동기부여를 해줬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최근 열린 올림픽에서 한국은 꾸준히 10위권 안에 들고 있다. 04년 아테네에서는 금메달 9개로 9위, 08년 베이징에서는 금메달 13개로 7위, 12년 런던 올림픽에서는 금메달 13개로 5위를 차지했다. 양궁, 사격, 태권도 등 전통적으로 한국이 강한 종목들에서는 이제 메달이 나오는 것이 신기하지 않다.

이에 따라 올림픽을 보는 사람들의 시선도 많이 달라졌다. 예전처럼 날을 새가며 올림픽 경기를 보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리우 올림픽 중계 시청률은 방송 3사 모두 평균 6~7%대에 그치고 있다.

한 네티즌은 “이제 올림픽 메달개수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며 “4년 동안 고생한 선수들을 마음껏 응원해줬으면 된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네티즌도 “최선을 다한 선수들에게 너무 비난은 하지 말자”고 말했다.

◆축제를 즐기는 선수들

한 사진작가가 찍은 묘한 타이밍의 사진이 화제다. ‘세상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 우사인 볼트가 올림픽 3연패를 달성하던 날 찍힌 사진이다. 육상 남자 100m 준결승에서 조 1위로 결승선을 통과하기 직전, 볼트는 자신을 향한 카메라를 보고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여유 있게 웃고 있다.

이번 올림픽에서는 대회 그 자체를 즐기는 선수들의 모습이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국가대표라는 무게에 짓눌려 있던 과거와는 다른 모습이다.

‘할 수 있다’라는 주문으로 대 역전극을 펼치며 금메달을 획득한 펜싱의 박상영은 경기 후 가진 인터뷰에서 “이번만큼은 즐겁게 즐겼다”며 환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양궁의 구본찬도 마찬가지다. 그는 “한번 해보자, 놀아보자 이런 생각으로 자신감을 주면서 경기에 임했던 것 같아요”라며 경기를 소회했다.

과거 한국 대표 선수들은 대회 기간 내내 경직돼 있다가 시상식에서 눈물을 보이곤 했다. ‘태극전사’라고 불리며 국위선양에 대한 압박이 적지 않았던 데다, 개인적으로도 병역, 연금 등의 보상이 걸려 있었기에 만감이 교차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세계무대에서 당당히 실력을 겨루고, 대회를 즐기며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에 목표를 둔다. 양궁 준결승에서 예상치 못한 강풍으로 3점을 쏘고도 여유를 잃지 않았던 장혜진은 9점과 10점을 연속으로 쏘며 결국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장혜진은 경기 후 “게임을 즐겼다는 것에 정말 만족하고 그 즐김으로써 좋은 결과가 따라왔다는 것에 가슴이 벅차고 기뻐요”라고 말했다.

◆올림픽 정신

올림픽은 ‘축제’다. 이념과 종교, 국경을 초월한 세계인의 ‘평화와 화합’을 목표로 한다.

나치 독일은 ‘히틀러 올림픽’으로 불렸던 36년 베를린 올림픽을 통해 게르만 민족의 우수성을 세계에 과시하려 했다. 냉전시대에도 올림픽은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양 진경 간의 체제 우월성을 드러내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었다.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다. ‘올림픽에서 몇 위를 하는가’, ‘금메달을 몇 개나 획득했는가’는 그 나라의 국력이나 민족의 우월성을 전혀 대변해 주지 못한다. 12년 런던 올림픽에서 한국은 금메달 13개로 종합순위 5위의 성적을 거뒀다. 그러나 그렇다고 한국이 세계 5위의 강국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체조 선수 이은주와 북한의 체조 선수 홍은정이 셀피를 찍는 모습이 이번 올림픽에서 화제가 됐다. 이 모습을 본 주요 외신들은 “올림픽의 정신을 보여줬다“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유라시아그룹의 회장 이안 브레머는 트위터를 통해 ”이것이 우리가 올림픽을 하는 이유“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사진=트위터 캡쳐>

언론들도 순위보다는 선수들 개개인이 가진 스토리에 집중해서 보도를 하고 있다. 미국 CBS는 시리아, 남수단 등 내전으로 국가를 잃은 전 세계 난민 2100만명을 대표해 올림픽에 출전한 난민팀 10명에 대한 이야기를 주요뉴스로 보도했다.

또 다이빙 여자 3m 스프링보드 시상식에서 은메달 수상자 허쯔에게 프러포즈를 했던 중국 다이빙 대표 친카이의 이야기, 여자 육상 5000m 예선에서 넘어졌으나 결승선까지 함께 뛰었던 니키 햄블린과 애비 다고스티노의 이야기도 큰 관심을 끌었다.

스포츠의 세계에서는 항상 승자와 패자가 존재한다. 그러나 패자가 비난 받아야할 이유는 없다. 4년 전의 패자가 4년 뒤의 승자가 될 수도 있다. 메달색이나 순위는 중요하지 않다. 금메달은 세계 1위지만, 은메달도 세계 2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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